▲ 박성도 목사 /동부삼일교회
얼마 전에 발표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기혼 남녀의 80% 이상이 남편이나 아내 외에 따로 애인이 있다고 한다. 충격이다.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한 타락이 우리 시대에 팽배해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 우울하다.  

이런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는 불륜을 미화한 내용들이 허다하다. 심지어 유부녀나 유부남이 애인이 없으면 ‘6급 장애인’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그리스도인은 거룩해야 한다. 타락이 극심할수록 하나님은 거룩하게 살려는 ‘그 한 사람’을 찾으신다. 그래서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 “신앙은 타협이 없다”고 자주 역설한다. 

제자훈련을 하다 보면, 회식이나 모임에서 술을 마시지 않아 곤란을 겪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때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히 밝히고, 단호히 술을 거부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사람들로부터 ‘왕따’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처음에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오히려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찾고 있다. 자신들과 타협하지 않는다고 잠시 비아냥대고 불이익을 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이 인생의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면 ‘진짜 그리스도인’을 찾아 도움을 요청한다.

빛이 제대로 빛의 역할을 하면, 빛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경하기 마련이다. 빛의 신분을 망각할 때 세상은 온통 어둠이 지배하게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일을 위해, 승진을 위해, 화합 때문에' 모두 그렇고 그런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타협하는 순간, 빛의 빛 됨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생명력을 빼앗기는 것이다. 그 순간, 더 이상 소금이 아니다. 그때부터 세상의 노예로 전락한다.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권세가 있음을 망각해 버린다.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빛을 잃고 짠맛을 잃은 그리스도인들은 무익할 수밖에 없다(마 5:13).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사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믿는다. 설령, 성경 지식에 통달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데 열심이 있더라도, 삶이 타협으로 일관된다면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될 수 없다. 

 더불어, 온전한 주일성수가 매우 중요하다. 적어도 양육받은 제자들은, 주일에 친척이나 형제들의 결혼식이 있어도 가지 않는다. 물론, 당사자에게 미리 설명하여 지혜롭게 양해를 구하도록 가르친다.

축의금도 두 배 많이 하라고 알려준다. 이렇게 해서, 관계가 깨진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숭고한 신앙이다. 주일성수는 역사의 종말, 곧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이 땅에서 너무도 편하게 예수를 믿는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예수를 믿는다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거나 생계를 잃는 경우는 없다.

좋은 환경이 오히려 신앙을 편의주의에 물들게 만들고, 생명력 없는 신앙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예수는 생명을 걸고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의 타협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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