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구 교수
많은 이들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삶의 방향 전환을 이루었거나 하나님의 음성에 근거하여 인생길의 여러 가지 판단을 해 나간다고 말한다. 성경 계시 시대에 그러한 것이 있었기에 많은 그리스도인은 별 생각 없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현상이 있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또한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이들은 자신들이 일류(一流)가 못되는 이류(二流)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오해에 근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일이 많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태도를 취하고 나아가야 할 것인가?

먼저 이 문제에 대해서 ‘세 가지의 각기 다른 사유 방식과 태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 유형의 사유 방식과 태도는 ‘세 가지 다른 유형의 종교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자신들이 과연 어떤 유형의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 유형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셔서 놀라운 계시를 주시거나 인생의 방향을 이끌어 나가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성경 시대에 하나님께서 때때로 그의 백성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삶을 인도하셨던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주님께서는 동일하게 그의 계시의 도구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렇게 하여 인간들을 인도해 가신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직통 계시파’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이런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성경 계시와 우리 시대에 주시는 계시를 별로 구별하지 않고, 그 관계를 연속적으로 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때로는 음성으로, 때로는 꿈이나 환상으로, 또 때로는 내면적 깨달음으로 그의 뜻을 드러내어 주시는 계시적 활동을 지속하시므로 우리는 그렇게 계속되는 계시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결국 각각 다른 계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주관주의적 대립에로 나아가고 말거나, 아니면 우리들로 하여금 몇몇 종교적 엘리트에 의존하여 신앙생활을 하여 가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계시가 서로 대립하는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몇몇 사람이 받았다고 하는 새로운 계시에 의존해 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직통 계시파’는 결국 성경 계시에 새로운 계시를 덧붙여 나가는 일을 하지 말라는 성경의 금령을 깨고 지속적인 계시 수납을 시도하는 이단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이 첫째 유형은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에 속하지 않은 이단의 주장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이들은 대개 이런 유형에 가깝게 가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두 번째 유형은 ‘좀 온건한 직통 계시파’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논리적으로 철저하지 않은 입장을 보인다. 즉, 이 온건한 직통 계시의 주장은 한편에서는 성경 계시의 독특성과 종결성을 인정한다. 성경 계시와 같이 우리들의 구원에 대해 필수적인 계시는 이미 다 주어진 것이므로 그런 계시는 이제 더 이상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구원에 필수적인 성경 계시의 종결성을 인정하면서도, 오늘날에도 성도의 삶을 인도하시고 교회를 인도해 가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가 지속된다고 자신들의 종교 경험에 근거한 주장을 한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우리들은 구원을 위해서는 성경 계시로 만족해야 하지만, 지금도 우리의 삶을 인도해 나가시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개인적 계시가 있으므로, 우리는 그런 개인적 계시를 기다리면서 그런 계시로 주시는 바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고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일부 인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실 때 일상적으로는 (다음에 생각할) 세 번째 유형과 같이 하시나, 때때로 아주 특수한 경우에 주께서 직접적인 계시를 주시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유형은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임을 주장하는 유형의 입장이다. 이는 성령님께서 성경의 계시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바르게 적용하게 하시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께 순종하여 성경 전반의 뜻을 파악하여, 그것에 비추어서 주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을 사용하셔서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신다”는 주장이 된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은 성경 계시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또한 선지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계시의 도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해 주시기도 했으나, 성경 계시가 마쳐진 후에는 이 말씀 외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는 말씀을(계 22: 18, 19) 계시적인 뜻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제 성경 계시가 종결된 상황에서는 주께서 음성으로나 꿈으로나 이상(vision)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이미 주셔서 성문화하신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성령님의 조명을 따라서 자신들의 구체적인 정황 가운데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는 것인지를 깨닫게 하신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 말씀을 사용하셔서 은혜를 베푸시며 성도를 통치해 가신다”는 유형의 사유에 의하면 이제 성경 계시가 종결된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음성으로 들려오는 일은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그쳐진 것이다. 이것은 메마른 기독교의 주장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을 사용하셔서”(cum verbo) 우리를 통치하시며 인도하시며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가장 성경적으로 바르게 주장하는 기독교의 주장이며, 가장 건전한 성령파 기독교의 주장인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이 가장 성경적이고, 가장 성령적인 입장이 고래(古來)로부터 가장 건강하고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 온 입장이었다.

예를 들어, 17세기 영국에 살던 청교도들이 자신들의 신앙으로 고백하였으며, 한국의 가장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신앙 고백서로 받아들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 가운데서 제 1장, 1항 마지막에 있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지되어 버렸다”는 진술과 6항 중에 진술된 “이 성경에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 아니면 인간들의 전통에 의해서이든 아무 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가 없다”는 말을 생각해 보라. (1) 이와 같은 노선에서 성경적인 신학자들은 아주 온건한 형태의 예언 인정의 논의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하여 왔다.(2) 좋은 개혁신학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레이몬드 교수의 이런 문제에 대한 강한 입장을 들어 보라: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예언자들과 방언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그가 성경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으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오직 성경의 위대한 종교 개혁적 원리를 버려 버린 것이다.”(3) 그는 다른 개혁 신학자들과 함께 “신약 선지자들의 영감은 그쳐졌으므로, 선지자직도 그쳐졌고,” “선지자적 직임은 가르치는 직임 속으로 편입되어졌다”고 한다.(4) 한마디로 개혁파 신학에서는 오늘날에는 선지자(예언자)가 없고 성경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온 것이다.(5) 그러므로 이런 입장에서는 오늘날 음성으로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이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① 모든 점에서, 즉 신앙과 생활에 속한 모든 점에서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개연성이나 우리의 경험에 의존하지 말고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②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적용하게 하시는 말씀의 원리에 따라 매일 매일 매순간순간의 결단을 주의 백성답게 하여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성경을 존중해 가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건전하고 바른 방식으로 성령님께 의존하며 순종해 가지 않고서 이상하고 기괴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자신들이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 나간다고 주장하는 일이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게 된다. 또 그런 주장자들로 인해서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가는 바를 모른 채 결국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 가게 되는 것을 더 안타깝게 여긴다. 또한 많은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바르지 못한 주장으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바른 도리에서 멀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게 된다.

부디 우리네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변에서 난무하는 비정상적인 주장에서 벗어나서 성경이 가르쳐 왔고 과거에 가장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 온 바와 같이 성령님께서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통치하시는 대로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각주]
1.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I. 1, 1 & I. 1, 6.
2. Cf. Richard B. Gaffin, Jr., Perspectives on Pentecost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1979), 65-67; R. Fowler White, "Richard Gaffin and Wayne Grudem on I Cor. 13:10: A Comparison of Cessationist and Nocessationist Argumentation,"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35, no. 2 (1992): 173-81; idem, "Gaffin and Grudem on Ephesians 2L20: In Defense of Gaffin's Cessationist Exegesis,"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54 (Fall 1993): 303-20; O. Palmer Robertson, The Final Word (Carlislie, Pa.: Banner of Truth, 1993), 85-126; Edmund P. Clowney, The Church (Downers Grove, Ill.: IVP, 1995), 257-68.
3. Robert L.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Nashville, Tennessee: Thomas Nelson Publishers, 1998), 59.
4. Reymond, 84. Cf. David Clyde Jones, "The Gift of Prophecy Today," The Presbyterian Guardian (December 1974), 163-64.
5. John Murray, Collected Writings, 1:19-22.

(교회와신앙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