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하나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에 젊은 부인의 글을 읽었습니다. 부모님과 여행을 가게 되어 친정에서 하루 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엄마에게 선물했던 그릇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툭하면 남에게 무엇을 주기 좋아하는 엄마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다음날 엄마와 함께 여행을 가다가 과일과 빵을 사서 외할머니 댁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딸과 외손녀를 눈물로 반가워하던 외할머니께서 지나가던 이웃 분들에게 빵과 과일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것을 보자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화를 막 내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녀는 알게 모르게 부모를 닮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좋은 것을 누리지 않고 언제나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엄마가 때로 속상하지만, 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엄마를 닮아갑니다. 자신도 엄마처럼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은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 더 영향을 받습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부모로서, 목회자로서, 선생으로서 더 잘 살아야겠습니다.

딸이 엄마를 보고 화가 났던 이유는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딸은 사랑하는 엄마가 좋은 것을 누리기 바랍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엄마본인이 누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니 속이 상하는 것입니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에게 주든지 말든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화가 나고, 상처 받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모순이 많이 일어납니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 때문에는 크게 상처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정과 교회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가족이 사랑하면서, 성도들이 사랑하면서 험악한 나그네 인생길을 갈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과 교회를 좋아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간혹 우리는 가족과 성도들이 싫습니다. 남달리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하고, 상처도 받아서 그렇습니다. 그럴 때는 얼굴보기도 싫습니다. 헤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출을 하기도 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가정과 교회가 완전한 천국은 아닙니다. 때로는 심지어 지옥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가정과 교회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과정을 통해 성숙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때로 사랑의 상처를 통해 성숙합니다. 조개의 상처가 진주가 되듯이 말입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도 합니다. 사랑 때문에 쓰라립니다. 그런데 그 눈물이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아이들이 아프면서 자라듯이 어른인 우리의 신앙과 인격도 아픔 속에서 자랍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픕니다. 아프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아픔을 감당하며 성숙해갑니다. 그리고 결국은 사랑하는 가족과 성도들이 새삼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사랑하면서 상처받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받지 않고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상처를 받으면서도 사랑을 버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사랑! 좋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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