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1095년 11월, “이슬람이 지배하는 성지를 탈환하는 성스러운 원정에 참여하는 것은 신의 뜻이며, 전쟁에서 죽게 되면 천국에 간다”는 우르바누스 2세와 은둔자였던 피에르의 설교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피에르는 키가 작아 ‘작은 피에르’라고 불렸는데, 사제도 아니었다. 언제나 당나귀를 타고 다니면서 이슬람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꿈에 베드로가 나타나 성지를 정화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서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십자군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광신자였던 피에르를 앞세워 교묘하게 선동함에 따라 가난한 기사들, 농민들, 부랑자들, 어린이, 여자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나섰다. 피에르는 일반 민중들을 모아서 1096년 정식 십자군보다 먼저 출발했는데, 이를 “군중 십자군”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모두 상징으로 십자가를 지니고 어께에는 십자가 표지를 달았고 교황이 하사한 “하얀 삼베 십자가”를 어께에 메었다. 그런데 무리들이 갑자기 모집되었기 때문에 조직화되질 않았고 훈련도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다만 열광적인 신앙과 순수한 열정 하나로 떠났다.

  오합지졸의 비공식 십자군인 ’군중 십자군‘은 떠나면서부터 말썽을 일으켰다. 우선 그들은 어디를 가야 예루살렘인지도 몰랐다. 예루살렘이 동쪽에 있다고 하니 대략 동쪽을 향해 출발했다. 식량보급도 없이 출발했기에 먹고 마시는 문제가 심각하였다. 지나가는 도시에서 공급을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자기들이 가진 귀중품을 팔아서 식수와 식량을 구했다. 그나마 무리가 많아 쉽지 않았다. 결국 군중 십자군은 가는 곳마다 약탈을 자행하다가 헝가리 왕국 기병대와 베오그라드 기병대의 반격을 받고 떼죽음을 당했다. 이런 상황 속에 얼마가지 않아 1/4의 무리들이 죽고 말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피에르의 지도하에 1096년 7월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그러나 동로마 황제도 이렇게 무지하고 무질서한 무리들, 말이 십자군이지 거지 떼와 다름이 없는 이들을 수도에 머물게 할 수 없어 바로 보스포러스 해협 너머로 보내버렸다. 그곳에서 이슬람과 사우라는 뜻으로 비잔틴에서 떠밀어낸 것이었다. 그들은 결국 니케아에서 셀죽 터이키 술탄 킬리지 아르슬란 1세에게 전멸당해 기사 레이날도는 항복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 노예로 팔렸으며 피에르는 목숨만 건져 달아났다.

  피에르는 프랑스에서 활동했는데, 독실하고 검소하며 헌금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 백성들에게 신망이 높았다. 이런 그의 신앙심으로 보아 의도적으로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 것이다. 자기 딴에는 성스러운 신의 뜻을 따르며, 불쌍한 백성들에게 의의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에서 행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따랐던 수많은 생명들을 성지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게 하였다. 이슬람을 정복하러 간 자들을 이슬람의 노예가 되게 하였다. 우리는 신앙의 열심이라는 명목으로 가진 에너지와 시간과 물질을 무모하게 허비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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