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이 눈앞에 있고 총선도 멀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차기 정부의 요직에 기용될 사람들에 대한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정치 지망생들이 여기 저기 줄대기를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자기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에 사활을 걸기도 한다. 하기야 다 당연한 세상사이고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희생적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으로 본다면 그리 나쁠 것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정권창출 과정에서 혁혁한 공로를 만들었으니 그 대가를 기다림이 무리가 아닐 듯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출세와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군상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헛되고 헛되도다’를 읊었던 솔로몬의 신음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또한 공자가 말한 ‘군자는 성공하되 그 안에 머물지는 않는다’는 말도 들려주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면 자신과 이웃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었던 사울은 집권 초기 매우 현명하고 용맹한 통치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가 제사 문제와 전리품 처리 문제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사무엘과 갈등을 일으키더니 기어이 하나님으로부터 파면 선고를 들어야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 가운데 하나가 삼상15:12 말씀이다. ‘사울이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라는 말씀이다. 그가 변질되어가는 모습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자기 명예와 자기 기념을 염두에 둔 순간 벌써 타락과 변질은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진행되어 있었던 것이다.

레위기에는 여러 제사의 규칙을 잘 설명해 놓고 있다. 번제로 드려지는 제물은 철저히 자기 소멸 과정을 거쳐 연기와 냄새 그리고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린다. 우선 제물은 생명이 없어진다. 그리고 살을 각을 뜨고 나면 그 형체도 해체되어 원형이 없어진다. 그뿐 아니다.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고 나면 제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섬김과 봉사를 명하신다. 그래서 ‘너희 몸을…산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신다. 뭔가 흔적을 남긴 제사는 온전한 제사가 아니다. 그저 드려짐을 영광으로 여길 뿐 그 이상은 관심도 없어야 함이 제물의 기본 도리다.

세상 정치에서 이름 남기려 안간힘 쓰는 무리들을 보는 것은 그렇다고 하자. 우리 교회 안은 어떨까. 가끔 교회 안의 직원선거 후유증에 시달리는 교회들이 있다는 소식도 있고, 교단의 중요한 선거에는 온갖 세속의 방법들이 다 동원된다는 소리도 들린다. 연초에 교회 안의 각종 부서장을 임명한 뒤에도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시험에 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모습이 다 무엇인가.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사울을 하나님께서는 여지없이 버리시고 외면하셨다. 우리 모두가 ‘저는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를 진실로 고백할 뿐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우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겠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그러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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