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으로 사는 사람은 버릴 줄 안다. 전략적인 삶은 선택과 집중의 원리로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광야에 있는 에돔, 모압, 암몬을 건드리지 말고 그냥 통과하라고 말씀한다. 이스라엘의 목표는 가나안이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사람은 사소한 것을 차지하는 데 목숨 걸지 않는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라. 이 땅에 33년을 살았다. 그러나 공생애는 단 3년이다. 마가복음을 보면 16장 중에 마지막 일주일의 기록이 7장이다. 어찌보면, 예수님은 1주일을 위해서 사신 분이다. 좀더 확대하면 3년을 위해서 사신 분이다. 제자 훈련과 십자가를 위해 사신 전략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을 다 하지 않았다. 큰 교회를 세울 수 있었지만 세우지 않았다. 대형 집회를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학교를 세울 수 있었지만 세우지 않았다. 버릴 것과 잡을 것을 명확히 구분하셨다. 전략없는 사람은 일을 닥치는 대로 한다. 그러나 전략있는 사람은 일을 가려서 한다. 그 차이가 인생의 결과를 다르게 만들어 버린다.


서툰 석공은 돌을 다룰 때 망치부터 든다고 한다. 노련한 석공은 돌의 결부터 본다. 돌의 결을 보고, 정을 대고 내리쳐야 단박에 돌을 쪼갤 수 있다. 망치 들고 설치면 열심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열매는 없다. 분주하게 뛰는데 결과 없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의 결을 보는가? 시대의 결을 파악하고 있는가? 기도와 묵상은 결을 파악하는 시간이다. 핵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정을 대고 한번 내리치면 갈라지게 되어 있다. 그것이 무서운 전략적인 사람의 강력함이다.


유혹은 무엇인가? 핵심 아닌 것에 매달리게 만드는 것이다.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윗의 위대성은 그가 이룬 많은 업적에도 있지만 성전을 건축하지 않은 점에 있다. 다윗은 자신의 사명의 결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결에만 집중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어떤 일을 한 것만큼이나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기 전에 큰 형 엘리압의 유혹을 만나게 된다. 엘리압은 다윗을 비난하면서 전쟁을 구경하러 나왔다고 놀린다.


말도 안되는 소리에 분노할 수 있지만, 다윗은 엘리압에게 반응하지 않는다. 다만 목표인 골리앗에게만 집중한다. 골리앗을 죽이니 엘리압은 사라진다. 다윗은 버릴 줄 알았기에 얻을 수 있었다. 작은 것을 버리라. 작은 것에 손해보라. 바둑에서도 하수는 항상 단수 치고 따먹기 바쁘다. 결국 대마를 잡혀서 지고 만다. 소탐대실이다. 고수는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어서 승리하곤 한다. 중요한 것, 핵심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 전략이다.


아파트 수위 아저씨가 한 말이다. "아침에 일찍 나가는 차는 대부분 비싸고 좋은 차입니다." 나쁜 차일수록 늦게 나간다. 좋은 차는 일찍 나간다.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치고 게으른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하루를 잘 살기 원한다면 새벽을 잡아야 한다. 새벽이 핵심이다. 새벽에 깨면 기도하는 인생이 된다. 새벽에 깨면 공부하는 인생이 된다. 새벽에 깨면 주도권을 잡는 인생이 된다. 밤의 몽롱한 판단과 새벽의 명확한 판단은 비교할 수 없다. 새벽 하나를 붙잡으면 인생에 필요한 대부분의 변화를 맛보게 된다. 그것이 핵심이요 결이다. 밤이 주는 다른 유익들을 버리고 새벽에 집중해 보라. 삶 전체의 변화와 감당못할 열매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인생은 선택과 집중으로 살아야 한다. 인생은 전략적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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