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7:11,20-23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 글은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연동교회 예배당에서 열렸던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제4대 대표회장 김경원 목사 이임과 제5대 대표회장 이성구 목사 취임을 감사하는 예배에서 정주채 목사가 전한 설교문이다.

 

그 동안 대표회장으로 수고하신 김경원 목사님께 감사하고, 신임회장으로 취임하는 이성구 목사님에게 축하드린다.

우리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 그리고 갱신과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세 가지 목적 중에서도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보수주의자들은 성경의 일점일획까지도 아주 중시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의 영광에 충성된 교회임을 자부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의 크고 중요한 가르침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무관심이다. 심지어 연합과 일치운동을 불건전한 일로 여기기까지 하는 근본주의자들도 있다. 그들은 성경의 일점일획에는 아주 예민한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제사장으로서 유언처럼 남기신 그리스도의 기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심지어 아주 작은 교리 하나를 수호하기 위해 교회연합이라는 중요한 교리를 예사로 무시해 버린다. 멸치는 걸러 먹고 낙타는 통으로 삼킨다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예수님은 본문 11절에서 세상에 두고 가는 사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저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셨다. 그리고 20-22절에서는 사도들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게 될 사람들 곧 장차 세워질 교회가 또한 하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셨다. 이렇게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예수님의 가장 큰 기도제목이었다.

 

연합과 일치는 교회의 본질적인 속성이며 그 정체성(identity)이다.

교회의 본질적인 속성이 무엇인가? 이를 바로 이해하려면 정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대사회적인 복음전도와 봉사를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교회가 정부나 사회단체들에 대한 발언권을 제고시키기 위해, 혹은 타종교들과의 비교 우위를 위해서 교회가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이런 기능적인 필요 때문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노력은 교회의 본질과 정체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교회의 본질적 속성과 교회다움이 무엇인가? 이를 알려면 하나님의 형상과 창조사역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세 분이시지만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시다. 각각 온전한 인격을 가지신 분들로서 신적인 영광과 능력과 거룩함에서 동등하신 분들이시다. 그러면서도 일체를 이루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곧 하나님은 완전한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분이시오 모든 공동체의 원형이시다.

이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을 따라 인간(人間)을 창조하셨다. 보통 하나님의 형상을 지,정,의의 인격으로 좁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의 존재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창조에서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 다른 말로 완전하신 공동체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창 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여기 “우리”를 복수형 대명사로 볼 것이 아니라 “장엄 복수”(히브리 문학에서 장엄한 사물에 대해서는 단수라도 복수형을 쓴다는 것)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인간창조에 대한 말씀들과 다른 본문들을 연결시켜 보면 이것은 장엄 복수라기보다 삼위 하나님의 대명사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이 기도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인 자신을 말하는 복수 일인칭대명사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아담과 하와를 각각 온전한 인격자로 만드셨지만 동시에 공동체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창조하신 것은 인간의 기본 공동체인 가정이었다. 가정은 창조의 크라운이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시고 아담의 갈비뼈를 빼어 이브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아담에게 이끌어오셨을 때 아담은 그를 보자마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며 진한 사랑의 고백을 했다. 이 때 하나님은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4)라며 가정제도를 세우시고 기본공동체를 만들어주셨다.

 

깨어진 공동체와 회복된 공동체

그러나 인류조상의 범죄로 이 공동체가 깨어진다. “당신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던 아담은 범죄 후에 어떻게 변했나?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내가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그를 책망하셨을 때 그는 하나님과 하와에게 그 책임을 돌렸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한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이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아내와의 관계도 깨져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깨어진 관계는 다음 세대에서는 살인으로까지 악화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겨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 각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새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구원의 스케일은 우주적이며 그 내용은 하늘에 가득하다.

존 스토트는 하나님의 구원을 세 가지 차원으로 설명한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사회, 새로운 왕국이다. 그리고 새 생명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왕국 곧 하나님나라로 완성된다. 여기서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왕국이 바로 교회의 현재의 그림이요 미래의 비전이다.

이렇게 인간의 범죄로 공동체가 깨졌을 때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셨다. 교회는 재창조된 새 에덴의 공동체이다.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교회의 본질적인 속성이고 그 정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지체들의 연합이요, 지체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이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공동체적인 존재로 만드셨을까?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좋지 못하다는 말씀은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서의 삶의 풍성함에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씀이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혼자 사는 것보다도 훨씬 더 풍성한 삶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b) 생명을 얻게 하신다함은 죽은 자들에게 새 생명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생명을 더 풍성이 얻게 하신다. 이것은 공동체와 관계가 있다.

시 133편은 가정과 교회의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노래한 찬송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며 시작한다. 그리고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곳에 성령의 기름 부음심 -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 시온의 산들에 내린 헐몬의 이슬 - 이 있고, 거기에 하나님이 복을 정하여 주셨는데 그것이 곧 “영생”이라고 하였다.

영생을 시간적인 의미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시간적인 의미보다는 삶의 질과 연관돼 있다. 영생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풍성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샬롬 안에서 형제자매들이 동거하며 누리는 풍성한 삶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와 구원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도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은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동참하여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일일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는 은혜의 방편이다. 나아가 연합과 일치를 이룬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위대함과 그 영광을 만천하에 공포한다.

내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중요한 교리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교회의 본질적인 속성이요 우리가 고백해야 할 신앙이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회의 회복운동이다.

 

한목협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한목협이 오직 이것만을 위해 설립된 것은 아니지만 먼저 갈가리 찢긴 한국교회를 연합과 일치로 치유하고 함께 복음 운동에 매진하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설립목적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비록 그 열매가 괄목할 만큼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가장 순수한 연합운동기관으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 예장과 기장이 같이 만나고, 기감과 예감 그리고 기성과 예성이 같이 만난다. 세례파와 침례파가 한 자리에서 형제의 사랑과 교제를 나누고 있다.

나는 초대 회장이셨던 옥한흠 목사님이 한목협 수련회 자리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기장측 사람들의 머리에는 사탄의 뿔 같은 것이 달린 줄로 알았다.” 고신은 더 심했다. 고신은 에쿠메니칼 운동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때론 정죄하기까지 하였다. 내가 어릴 때 선친으로부터 자주 들은 말씀은 “칼측에 속한 교회는 이단이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고신에서 이번에 한목협의 대표회장이 나왔다. 만시지탄이나 한편으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고신의 많은 지도자들 중에는 연합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혹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십 수 년 전 이성구 목사가 “적어도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들과는 교제하며 연합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가 고신에서 잘릴 뻔했다.

이런 목사가 한목협의 대표가 되었으니 기대하는 바가 크다. 위하여 기도하고 열심히 협력하여 한국교회 연합의 대업을 이루게 하자. 지난 8월16일에는 한국기독교연합이 창립총회를 갖고 출발하였다. 한국교회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회가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한기연으로 새 출발한 것이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는 데는 보이지 않는 한목협의 노력이 컸다. 앞으로 한목협이 중재자가 되어 한기연이 한국교회협의회(KNCC)와도 통합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한국교회가 한국기독교라는 하나의 우산 아래 있을 날이 속이 이르길 기대해 마지않는다.

교회의 연합은 당연하고 귀한 일이다. 연합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만든다. 연합은 복음전도의 큰 문을 활짝 열어 줄 것이다. 세계복음화에 탁월한 기여를 하게 만들 것이다. 나아가 교회연합은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지킬 뿐 아니라 교회갱신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이룩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교회연합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한국사회를 선한 길로 견인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결언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자. “성삼위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우리를 사랑의 줄로 묶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연합하여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케 해주시고,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공동체임을 세상이 알게 해주시옵소서.”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며 한 마디 더 덧붙이고 싶다. 한국교회는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해야 한다. 전쟁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대화의 통신선은 완전히 절단돼 있다. 이때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다. 교회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회개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를 긍휼이 여겨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지켜주시고 세상에 희망을 주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모두 엎드려 기도하자. 아멘

(한목협 대표회장 이취임식에서 2017. 9. 5.)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