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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목사에 대한 예우를 논한다은퇴 예우 문제, 하나님 의지하고 교회에 다 맡기는 것 백익무해(百益無害), 그 반대는 백해무익
정주채/향상교회 은퇴목사

몇몇 목사 장로들의 부탁을 받고 이 글을 쓴다. 담임 목사의 은퇴할 때가 다가오면 교회도, 은퇴할 당사자도 긴장한다. 적어도 두 가지 큰 과제가 목전에 다가오기 때문이다. 후임목사를 청빙하는 일이 그 첫째 과제요, 둘째는 은퇴하는 목사에게 어떻게 예우를 해야 할 것인가가 당장의 문제다. 후임의 문제는 교회에 따라 다르지만 전임자가 은퇴하기 전에 청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인수인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은혜롭다.

일의 경중에서 보면 후임목사 청빙이 훨씬 더 커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은 은퇴목사에 대한 예우문제에 더 민감하다. 특히 은퇴목사가 해당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를 했을 경우 원로목사로 청빙하는 일의 여부와 함께 노후를 위해 얼마나 예우를 해야 할 것인지가 첨예한 논란꺼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는 중에 은퇴하는 목사와 교인들이 서로에게서 마음을 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갈등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그리고 누구라도 은퇴할 때 노후생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려고 만든 제도가 은급제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목사들의 노후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다. 교회가 평소에 교역자들을 위해 은급금을 납입하여 노후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원로목사나 은퇴목사나 차별 없는 예우가 가능하다.

그러나 은급금마저 납입하기 힘든 교회들도 많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이를 해결하려면 은급금을 납부할 여력이 없는 교회에서 은퇴하는 목사들에 대한 대책은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자립한 교회들이 도와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공평한 나라인데 원로목사라고 생활보장을 해주고 미자립교회에서 은퇴하는 목사들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것은 하나님나라의 통치이념인 공의와 사랑의 정신에 전혀 맞지 않은 일이다. 감리교의 경우를 보면 납부하는 은급금의 다소는 교회의 재정규모에 따라 정하여 내지만 일단 은퇴하는 목사는 누구나 동일한 은급금을 받도록 하고 있어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자립교회에서 은퇴하는 목사들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으면서도 원로목사의 예우 문제에는 관심들이 많다. 2010년의 헌법개정위원회에서는 한 때 “원로목사”의 명칭을 없애자는 의견에 대체적인 합의를 했으나 원로목사회에서 그리고 많은 목사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아쉬운 부분이다.

“원로”라는 명칭을 없애자고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 명칭이 은퇴목사들을 차별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평생을 헌신하고 은퇴하는 다 같은 목사들인데 노후 대책에서 차별을 받는 것도 서러운데 명칭마저 차별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원로라는 말이 “어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피로 세운 교회”요 “오직 그리스도만이 주시라”고 하는 교회에서 ‘원로’니 ‘공로’니 하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도 역시 불경스러운 일이다. 거기다 입으로는 ‘나의 나 된 것도 또 내가 수고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왜 은퇴할 때는 공로를 따지고 명예로운 명칭을 얻고자 하는지 의문이다.

원로목사의 과도한 은퇴금 요구로 갈등에 휩싸인 교회 문제를 보도하는 CBS 뉴스 캡처,.

거기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원로목사의 노후대책 문제로 목사와 교회가 줄다리기를 하며 갈등하는 것이다. 교회는 가능한 적은 금액으로 예우하려고 하고 은퇴하는 목사는 가능한 많이 받으려고 하는 것 때문이다. 어떤 원로목사는 기대 밖의 교회 예우에 충격을 받고 병이 나기도 하고, 또 어떤 원로목사는 거주할 집과 생활비는 물론 법정 퇴직금에다 공로금까지 요구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존경하며 따랐던 목사가 결국 삯군 목사였다며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20년 이상을 서로 받들고 섬기며 지나왔는데 왜 막판에 와서 서로 마음을 상하면서 헤어져야 하는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과연 예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여기서 명확한 어떤 기준을 정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여러 예들을 참고하여 나름대로 어떤 기준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일단 원리는, 교회는 가능한 후하게 드리려고 노력하고 목사는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본다. 구체적인 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본다.

첫째는 처음부터 은급재단에 가입하여 기본생활비가 확보된 경우라면 별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만 교회 형편에 따라 약간의 위로금을 드리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은급에 가입한 연한이 짧아 은급금이 기본생활비에 미치지 못할 경우는 교회가 보충하여 드림이 옳다고 본다.

둘째로 은급재단에 가입하지 않아서 은퇴 후 생활비 전체를 교회가 감당해야 할 경우는 대개 후임목사 사례금의 7-80%로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사역비(목회비와 수당)를 포함한 전체 사례금을 기준으로 하느냐 아니면 순수 사례금을 기준으로 하느냐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교회가 형편을 따라 정할 일이지만, 사리로만 말한다면 사역비는 제외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셋째로 법적으로는 원로목사가 될 수 없는 경우라도 교회가 가능만 하다면 은퇴목사에게 매달 기본생활비를 드리는 것이 선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서 시무를 했던 평생 복음을 위해 헌신한 종이라면 그가 누구든 교회가 대접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목사들에게 권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은퇴할 때 예우문제로 교회와 다투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회에 다 맡기는 것이 백익무해(百益無害)하고 그 반대는 백해무익하다. 목사로 나설 때 “헌신”을 다짐했고, 사역을 하는 동안에는 “주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한다는 믿음으로 하였으며, 사역을 마치면서는 “오직 은혜”였다고 감사할 수 있다면 존귀와 영광은 그날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기독교보에 기고된 것으로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정주채  juchai2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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