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시인이 이런 시 한 구절을 남겼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 대단한 통찰이다. 한 사람이 없을 뿐인데도 도시가 텅 비어버린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바람을 일으키며 도시를 헤집고 다녀도 그 한 사람만 떠나고 나면 도시는 텅 빈 도시일 뿐이다.

'사순절의 기쁨'이란 책에는 이런 질문이 등장한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누구와 함께 있어야 행복한가?" 그리고 "그것을 가졌더라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 또는 그것을 잃어버리거나 빼놓으면 '지금의 나'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

신앙인에게 이런 질문은 그들의 삶 속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이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와 함께 있으면 행복한가? 누가 사라지면 내 인생의 도시는 텅 비어 버리는가? 그것을 빼놓으면 도저히 '지금의 나'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그것이 아닌 그 사람이 누구인가?

우리의 입술을 통해 흐르는 찬송가의 한 구절을 기억해 불러보자. "주 떠나가시면 내 인생 헛되네." 헛된 인생이 무엇인가? 텅 비어버렸다는 것 아닌가. 모든 것을 채워놓아도 그것이 몸서리칠 광야라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고백을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나도 써내려가고 싶다. '주님 떠나시면 안됩니다. 주님 외에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성도들의 지극한 사랑의 고백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주제는 결국 '주님 사랑'이다. '예수 사랑'이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일 수도 있고, 우리가 주께 고백하는 그 사랑일 수도 있다. 하나로 묶인 사랑의 하모니가 신앙인의 주제가다. 목회자인 나의 인생은 그분 없이 안된다. 그분 떠나시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도 눈물로 찬양 드린다. "주 떠나가시면 내 인생 헛되네."

그런데 순간마다 이런 고백을 드리지 못하는 내게도 주님은 여전히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해 주신다. '너는 내 것이라'고 속삭여주신다. 한 시인의 사랑노래보다 못한 고백을 드려도 그분은 나를 안아주신다.

김남조 시인이 '설일(雪日)'에서 고백한 노래가 그렇기에 바로 나의 기도이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 모두 혼자는 아니다. 외톨이로 서는 삶의 돌층계에도 그분은 은총으로, 놀라운 섭리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으로부터 숨고 싶은 날에도, 부끄러움으로 내가 나를 떠나고 싶어도 그분이 나를 찾으시며 애태우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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