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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선교
KPM 국내 이주민선교부와 국제다문화사회연구소가 공동주관한 “고신 이주민 세계 선교 컨퍼런스”가 지난 10월 20일 거제교회당에서 열렸다. “이주민 선교, 세계 선교의 기회”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이병수 교수(고신대 선교학)는 “종교개혁과 선교” 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종교개혁과 선교

 

이병수(고신대 국제문화 선교학과)

서론

발표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 금년‘종교 개혁과 선교’의 관계를 발표하는 것은 시의적절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에 대한 과거의 역사가 오늘날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의 선교 현장과 선교학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적용과 현재성에 대한 연구의 중요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개혁신학을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하고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 개혁주의 신학, 루터와 칼빈의 신학에 기초해서 세워진 한국 개신교회라고 한다면 선교의 이론과 실천에도 그것들에 기초한 선교학과 선교현장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이론적·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적 타당성은 지난 수 십 년의 한국교회, 목회, 신학 및 국내외 선교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개혁신학에 기초한 한국 개신교 장로교라고 하지만 목회와 신학과 선교현장에서 개혁신학에 기초한 목회, 신학 및 선교학의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았던 것이 한국교회, 선교신학과 선교현장의 현실이다. 예를 들면 풀러 신학교의 선교학 특히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McGavran)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회성장학 및 그 외 선교학이 교회와 선교의 현장에 끼친 가치와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한계와 오류를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풀러신학교의 교수진은 다양한 성격을 가진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나중에 다루겠지만 랄프 윈터(Ralph D. Winter)와 같이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를 부정하는 입장과 개혁신학에 기초한 네델란드계 멕시코 선교사로 활동했고 현재는 선교신학의 교수로 일하는 찰스 E. 벤 엥겐(Charles E. Van Engen)도 있다. 하지만 존 윔버(John Wimber),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그리고 찰스 크라프트(Charls Kraft)와 같이 ‘능력 대결’이라는 주제로 한국 목회 및 선교현장과 신학에 끼친 부정적 요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수 십 년간 한국교회와 선교현장과 신학에서는 이런 영향 가운데 이루어진 선교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성경과 개혁신학에 기초한 개혁주의 선교학을 연구 발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과 선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은 그동안 종교개혁과 선교의 주제로 국내외 학자들이 많은 논문들과 책으로 발표하였기 때문에 이 주제로 발표한다는 것이 새롭지 않고 잘못하면 기존 연구의 중복에 불과 할 수 있지 않는냐 하는 것이다. 즉 이 주제와 관련해서 어떤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자료에 근거해서 기존의 이론을 뒤집고 새로운 이론을 내놓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발표자가 이 논문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첫째, 기존 연구의 중복을 최대한 피하면서 그 동안 국내외에서 이루어진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역사적·연대기적으로 정리하고 평가하고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를 많은 학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부정적으로 보는 학자들의 입장도 객관적으로 최대한 고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발표자가 주목하는 것은 종교개혁과 선교에 대해 부정과 긍정의 양쪽 입장에 있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개혁자들의 후세대에 선교적 신학과 실천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역사적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개혁자들의 후세대에 선교신학적 개념과 실천이 나타났고 그것을 누구나 공통적으로 인정한다고 한다면 종교개혁 특히 칼빈의 신학에 기초해서 선교학적 이론을 구체적으로 펼쳐나가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을 역사신학, 조직신학과 선교학 학자들과 공동의 노력으로 그것을 학문적으로 시도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학문세계에서 무엇보다도 긴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융합과 통섭, 학문 간의 소통과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해서 학문 활동하는 학자들의 시대적 소명과 책무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 세 가지 순서에 따라 전개될 것이다.

 

2. 종교개혁과 선교에 대한 부정과 긍정의 학문적 입장

2.1.국내학자의 입장

그동안 ‘종교개혁과 선교’, ‘루터와 선교’, ‘칼빈과 선교’와 그 외의 종교개혁자들과 선교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적으로 많이 이루어져 왔다. 이 주제에 대한 국내학자들의 논문과 책을 발표자의 제한된 범위내의 조사에 의하면 국내 학자들의 논문 및 책은 약 25편에 이른다. 이 중 23편은 논문이고 2편은 단행본 책들이다. 이 논문과 책들의 대부분은 역사학자, 조직신학자 그리고 선교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중 장신대 최윤배 교수의 “마르틴 부처의 종교개혁과 선교”, 변창욱 교수의 “종교개혁자들의 이슬람 이해”라는 논문을 통해서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부처와 선교의 관계, 루터와 칼빈의 이슬람 이해를 다룬 점이고 예외적으로 장신대 김철홍 교수의 논문은 신약학자임에도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선교의 관계성을 연구한 것이다.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에 대한 논문과 책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부정적 입장과 긍정적 입장으로 분류된다. 부정적 입장은 이상규 교수의“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선교”논문이다. 이상규 교수의 논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논문과 책들이 종교개혁과 선교 특히 칼빈과 선교의 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긍정적 입장은 대부분 해외 학자들 특히 미국의 칼빈주의 입장의 역사신학자, 조직신학 및 선교학자들의 논문을 지지하는 가운데 긍정적 입장을 따르고 있고 종교개혁자들의 1차 자료에 근거해서 종교개혁과 선교의 상관성을 차별성 있게 보여주는 학자들의 연구도 있다.

하지만 국내의 종교개혁과 선교 특히 칼빈과 선교의 관계에 대한 논문들이 영어권 논문들에 매우 의존하고 있는데 비해 황대우 교수의 논문은 네덜란드 학자들의 화란어 자료를 참고한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학문적 경향과 일치하는 바 미국학문에 너무 경도된 모습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유럽과 다양한 학문적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학문 접근의 다양성과 균형의 측면에서 기여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황대우 교수는 칼빈의 1차 자료인 그의 주석과 설교를 참고하는 가운데 라틴어 원전을 취급했다는 장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최윤배 교수의 부처와 선교의 관련성 논문도 1차 자료를 참고해서 연구한 점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정적 입장의 이상규 교수의 견해를 먼저 살펴보자. 이상규 교수의 논문이 기여하는 바는 종교개혁과 선교의 상관성을 철저하게 객관적 사실과 역사적 실체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정확성과 엄밀성에 대한 깊은 학자적 태도로 볼 수 있다. 그 동안 칼빈 연구자에 대한 다른 신학적 입장의 학자들의 비판적 시각 중의 하나는 칼빈주의자들이 칼빈에 대한 ‘무조건적 존경과 경의’ 가운데 모든 학문 분야를 칼빈과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결부해서 접근하려는 ‘칼빈 만능주의’에 경도되지 않았는가하는 의구심에서 기인한 것도 있다. 만약 칼빈주의자가 그런 태도로 접근했다고 한다면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칼빈도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위대한 어거스틴의 잘못된 신학적 입장에 대해 매우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칼빈에 대한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고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서 접근하는 태도는 학자적 양심에 매우 바람직한 태도이다.

이상규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 견해들과 긍정적 견해들로 두 가지로 분류한다. 긍정적 입장을 취하는 서구 학자들의 태도에 대해 여러 가지 점을 들어 그는 개혁주의와 선교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 견해의 입장이다. “개혁자들에게는 선교사상이 있었다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개혁자들이 오늘날과 같은 선교사 파송에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이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 종교개혁과 선교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하고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상황때문이라고 종교개혁자들의 선교관에 대해 변호하는 학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이다.

그것에 대한 이교수의 입장은 개혁자들이 물리적 상황 때문에 선교사역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그들의 신학이 선교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서 개혁자들의 선교 사상에서 헤아리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구스타브 바르넥(Gustav Warnek)을 인용하면서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 교회가 자기들의 교회가 사도적 계승을 주장하는데 대한 반론을 강조하는 나머지 원천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교회의 선교적 사명의 연속성을 부인하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마 28장의 예수님의 지상명령도 사도시대에 국한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선교에 대한 의식과 신학이 부재하게 되었다는 바르넥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개혁자들의 선교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에게는 선교사상이 결여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후대 학자들 간에 논쟁이 없지 않지만 개혁자들은 오늘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선교나 선교사상이, 선교실천이 없거나 부족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결론 짓는다.

이상규 교수가 종교개혁과 선교의 견해에 국내 학자들 가운데 부정적 입장의 대표적 교회사학자라고 한다면 긍정적 입장의 교회사학자는 장신대 박경수 교수이다. 그는 종교 개혁자들과 선교의 관계에 대해 학자들의 입장에 대해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종교개혁자들에게 선교가 없었다는 견해, 둘째, 선교가 약했다는 견해, 마지막으로 선교가 있었다는 견해로 설명한다. 그는 종교개혁자 특히 칼빈의 선교의 실천의 세 가지 예 제네바 선교, 프랑스 선교, 그리고 유럽지역의 선교를 언급하면서 칼빈과 선교의 관계를 신학과 실천에 있어서 매우 깊은 상관성을 가지는 것으로 결론짓는다.“깔뱅에게서 선교에 대한 사상과 활동을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깔뱅의 글과 삶에 대해 너무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거나, 아니면 선교를 아주 먼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종교개혁과 선교에 대한 두 학자의 이런 상반된 입장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둘 중의 한 가지를 정량적 숫자로 결정한다면 25:1에 해당한다. 따라서 국내학자들의 정량적 연구 통계로 본다면 종교개혁과 선교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지지 할 수 있다. 이것은 최근 이루어진 국외 학자들 가운데 이루어진 종교개혁과 선교 및 칼빈과 선교의 긍정적 입장의 상당한 연구를 볼 때 긍정적 입장이 주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칼빈과 선교에 대해 부정적 견해냐 긍정적 견해냐 하는 것이 숫자에 따라 결정되기 보다는 종교개혁자들의 1차 자료에 근거한 학문적 정확성과 객관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위해서 종교개혁자들의 1차 자료를 종합적으로 다양하게 면밀하게 연구할 책무가 이 분야의 관심있는 학자들에게 있다. 발표자는 본 논문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는 못했고 기회가 되면 그러한 시도를 차후에 감당하기로 하고 현재는 발표자의 입장에 볼 때 가장 안전하고 누구나 동의 할 수 있는 공통 영역인 종교개혁 후세대에 나타나는 선교이론과 실천에 주목하자는 입장이다. 이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제 3의 길이라고 볼 수도 있다.

 

2.2. 국외 학자의 입장

2.2.1.부정적 견해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천주교 신학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7세기 천주교 신학자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누스(Robertus Bellarminus, 1542-1621)로서 개신교도들이“이교도들이나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회심시켰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천주교 신학자 조셉 쉬미들린은 1933년 “천주교 선교역사”(Catholic Mission History에서 종교개혁자들 즉 루터, 쯔빙글리, 멜랑흐톤, 그리고 칼빈이 선교적 개념을 의식하지 못했고 어떤 선교적 활동도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확산시키는데는 개신교 선교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19세기 독일 선교학자 구스타프 바르넥(Gustav Warneck)의 역할이 매우 컸다. 미국의 교회사가 라토렛(Kenneth Scott Latorette)도 교회역사를 교회의 확장사 즉 선교역사와 동일시하여 선교의 관점에서 교회의 역사를 서술한, 총 7권으로 된 대작 “기독교 확장의 역사”라는 책에서 16세기에 소수의 개신교도들이 자신들의 신앙양식을 새롭게 발견된 신대륙에 전파하려는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1500년부터 1800년까지 선교에 대한 개신교의 활동은 확실히 로마교에 비해 매우 빈약한 것으로 평가한다.

성공회 출신 선교역사학자 스티븐 니일(Stephen Neill)도 동일한 입장이었다. 개혁자들의 선교관에 관한 니일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물론 개혁자들이 주변에 있는 비기독교 세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루터는 유대인과 투르크인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어떤 때는 상당히 친근한 감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 분명히 세계에 복음을 꾸준히 전파하며 나아간다는 사상을 루터에게서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온갖 유리한 말을 다하고 개혁자들의 글에서 모든 가능한 증거를 다 모은다 해도 그것은 너무나 적은 양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흐름은 북미의 역사학자 호그(William R. Hog)에 의해 1961년에 출간된 그의 책 「개신교 관심의 부흥」(The Rise of Protestant Concern, 1517-1924)에서도 나타난다. 그에 의하면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선교적 차원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압도적이며, 거의 이구동성으로 일치하는 증거로 보여진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추세는 미국의 선교학자 허버트 케인도 1978년 그의 책 세계선교역사에서도 나타났고, 네덜란드의 선교학자 요하네스 베르카일(Johannes Verkuyl)과 미국의 역사학자 루스 터커(Ruth A. Tucker)도 칼빈의 브라질 선교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만 대부분 칼빈주의자들이 선교적이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루스 터커는 개신교의 선교는 경건주의 운동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진젠도르프(Nicholas Ludwig von Zinsendorf, 1700-1760)를 ‘개신교 여명의 선교사’로 생각한다. 이런 입장은 풀러신학교의 대표적 선교학자인 랄프 윈터(Ralph D. Winter) 교수의 글에서도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은“해외 선교에 대해서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다고”비판한다.

 

2.2.2.긍정적 견해

이러한 비난에 대한 반론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이 선교와 관련 있음을 주장한 첫째 반론은 1882년 맥펠트리지(McFetridge)가 “복음화의 능력으로 칼빈주의”라는 논문(Calvinism as an Evangelizing Force)이다. 둘째, 쉴라트(Schlatter)가 1909년 “칼빈과 선교”(Calvin und die Mission)라는 논문, 셋째, 같은 해에 콕스(Kochs)가 거의 동일한 제목으로 “칼빈과 선교”의 논문, 넷째, 피스터러(Pfisterer)가 1934년“칼빈의 선교적 사고”의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앞의 세 논문들은 독일어로 기고되었고 특히 피스터러는 칼빈에게는 교회의 선교적 책임에 관한 이론과 실천 모두가 분명히 있었다고 주장한다. 다섯째, 에드워즈(Edwards)가 1936년에 칼빈과 선교의 논문에서 긍정적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종교개혁 그 자체가 선교 운동이었고, 대규모 국제적 스케일의 수준이었다”고 주장했다

루터 연구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일으킨 루터 연구의 대가 칼 홀(Karl Holl)이 1924년에 발표한 글 “루터와 선교”는 루터에게 선교 개념이 없다는 당대의 일반적인 견해를 반박했다. 홀에 이어 월트 홀스턴(Walter Holsten)이 1953년 “종교개혁과 선교”, 벤너 엘럿(Wener Elert)이 1962년 “루터파의 구조”, 한스 베르너 겐지헨(Hans-Werner Gensichen)과 미국의 선교학자 J. A. 쉐러(J.A.Scherer)등이 종교개혁자들 특히 루터와 선교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선교학자 베르카일은 홀스턴과 엘럿이 루터가 세계선교를 위한 비전을 가졌음을 증명하기 위한 시도들은 상당히 무리라고 비판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루터의 선교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지지하기에는 루터의 주장들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선교학 교수 겐지헨(D.H.W. Gensichen)은 종교개혁과 선교의 상관성을 강조하면서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칼빈이 브라질에 선교사를 보낸 선교실천의 사례를 강조한다. 결론적으로“어쨋든 개혁자들을 언급하지 않고는 선교역사를 논할 수 없고, 또 개혁자들의 선교신학을 언급하지 않고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기술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에 대한 긍정적 입장의 국외 연구는 발표자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 파악된 자료를 일별하면 주목할 만한 자료는 최근 칼빈 탄생(1509-1564) 500주년을 기념하는 2009년 전 토마스 쉬르마헤르크(Thomas Schirrmacherrk)교수가 편집하여 출판한 「칼빈과 세계선교」(Calvin and World Mission)이다. 쉬르마헤르크 교수가 편집한 이 책은 1882년부터 2002년 까지 약 120년 동안 칼빈과 선교에 대한 여러 학술지들에서 기고된 논문들을 한권으로 편집한 것이다. 그 책에는 약 16편의 논문들이 있고 독일어권 영미권 학자들의 논문들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그 책은 다양한 신학저널에서 발표되었던 중요한 많은 논문들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표자는 그 책에서 수록되지 않은 영어권 및 네델란드어권 12편의 논문을 포함하여 총 28편으로 작성하였다.최근 영어권에서 발표된 칼빈과 선교의 논문과 책을 보면 주목할 점은 그 동안 국내에서 칼빈과 선교의 관계를 연구하는 가운데 국내학자들이 언급하거나 다루지 않은 새로운 자료가 많다는 것과 그 주제의 연구물들이 계속해서 발표되고 출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2.2.1.국내선교의 관점

 

여러 학자들이 칼빈과 선교의 관계를 오늘날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케리의 해외선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지나친 요구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 학자는 데빗 B. 칼훈(David B. Calhoun)이다. 그는 그의 논문 “존 칼빈 선교사의 영웅인가 실패자인가?”(John Calvin: Missionary Hero or Missionary Failure)라는 도전적 제목을 가지고 칼빈과 선교의 관계를 칼빈의 선교신학적 가르침과 선교적 실천을 수행으로 그의 신학과 실천이 선교적임을 강력하게 옹호한다. 그는 먼저 선교의 정의를 설명하는데 그 당시 종교개혁자들의 선교란 오늘날 교회내의 특별한 선교기구와 기관을 통해서 해외선교를 수행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교회가 행하는 모든 것을 선교로 여겼기 때문에 국내선교와 해외선교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교회를 개혁하고 거짓된 믿음 가운데 있는 자들을 참된 믿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선교였고 또한 그 당시 개혁자들의 일차적 관심은 유럽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행한 모든 사역을 선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혁자들의 사역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해외선교와 국내선교라는 것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개혁자들의 사역도 국내선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을 선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 시리아, 남수단 그리고 미얀마 난민을 위한 국내 난민사역자를 난민 선교라고 한다면 그 당시 제네바에 있는 수많은 난민을 위한 칼빈의 사역을 선교사역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칼빈은 스텐포드 리드가 표현했듯이 제네바가 선교의 본부이고 칼빈이 제네바가 선교본부라고 한다면 본부장(Missionary Director)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2.3. 종교개혁 후 세대에 나타나는 칼빈주의 선교신학

 

발표자의 자료 수집과 분석에 의하면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국외 학자들의 연구물들을 3가지 입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종교개혁자와 선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둘째, 종교개혁자와 선교는 관련이 있다. 이 두 가지 입장에서 남아공화국의 선교학자 데이비드 J. 보쉬(David J. Bosch, 1929-1992)는 두 가지 입장을 취한다고 발표자는 판단한다. 그런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보쉬는 종교개혁 이후 2세기 동안 선교사역이 거의 없었다는 점과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자들과는 달리 동일한 상황에서 동시대의 재세례파에서는 선교에 대해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나는데 첫째는 재세례파에서는 선교 이론적으로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선교의 대위임 명령이 그 당시에도 유효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점이고 두 번째는 재세례파가 그 당시 현실에서 종교개혁자들과 동일한 외부상황에서도 재세례파는 주목할 만한 선교사역에 참여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세 번째 입장은 종교개혁과 선교의 상관성에 대하여 종교개혁자들과 선교의 직접적 관련성 보다는 종교개혁 후대의 학자들에서 선교의 관계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적 선교학자는 네덜란드계의 칼빈주의 선교학자 반덴 베르그(Vanden Berg)와 요하네스 베르카일(Johannes Verkuyl) 이다. 베르카일에 의하면 “우리는 선교와 선교이론에 대한 자극이 종교개혁과 함께가 아니고 후기 종교개혁과 신구 경건주의에서 시작되었음을 지적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 기초해서 베르카일은 후기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종교개혁과 선교에 관여한 대표적 인물들을 예로 드는데 첫째, 하드리아누스 사라비아(Hadrianus Saravia 1513-1613), 둘째, 저스투스 유르니우스(Justus Heurnisu 1587-1651, 셋째, 발래우스(Antonius Walaeus, 1573-1639), 넷째, 기스베르트스 보에티우스(Gisbertus Voetius, 1589-1676),그리고 요한네스 호른베크(Johanes Hoornbeck, 1617-1666)이다. 여기서 두 명의 주요한 학자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첫째, 사라비아 경우는 덴마크 할레 선교부, 개혁주의 선교학 기초에 중요한 공헌을 한 보에티우스와 영국의 청교도 중 미국의 인디안 선교사로 활동했던 존 엘리어트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보에티우스는 칼빈 신학에 기초해서 선교학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는데 그는 선교의 삼중목적을 주장하였고 첫째는 이방인의 회심, 둘째는 교회 개척, 마지막으로 하나님에 대한 영광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에 충실하게 따랐던 칼빈주의 선교학자는 네델란드의 J. H.바빙크(J.H. Bavinck, 1895-1964)이다. 그는 네델란드, 미국과 한국에서 오랫동안 선교학의 교재로 사용되었던 「선교학 개론」의 저자이고 그는 그 책의 서론 부분에서 보에티우스의 선교의 삼중적 목표를 그의 선교의 목표로 삼는다. 한국에서 번역된 그의 대표적 세권의 책 「선교학 개론」, 「선교적 변증학」, 그리고 「기독교 선교와 세계문화」에서 그의 선교학을 철저하게 칼빈주의적 신학에서 구현한다. 그 책들에서 그는 오늘날 선교학의 중요한 개념인 칼빈의 일반은총론,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의 개념과 거의 일치하는 선교의 ‘포괄적 접근’(Comprehensive Approach)과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을 강조하고 그것을 선교학에 적용한다.

독일의 루터의 영향 하에 경건주의 운동의 대표적 인물 스페너(Philip Jacob Spener, 1635-1705)와 프랑케(Aupust Herman Franke, 1633-1727)의 영향가운데 발생한 진젠도르프(Nicholas Ludwig von Zinsendorf, 1700-1760)로 말미암아 개신교 선교의 시작이 되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베르카일의 입장이다. 이런 입장은 루스 터커의 저술에서도 명백하게 나타난다.

위의 학자들이 종교개혁 후세대의 영향을 받은 유럽 특히 네덜란드와 독일의 학자들이라고 한다면 칼빈의 영향이 가장 잘 나타난 영국의 청교도들에 의한 미국 인디언 선교사 존 엘리어트(John Eliot, 1604-1690)와 칼빈의 신학 영향 가운데 나타난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나단 에드워즈의 두 가지 주요한 저작들은 현대선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 대표적 저술로 「이 땅에 신앙부흥과 그리스도 왕국의 발전을 위한 분명한 합의와 특별기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간의 가시적 통일성을 가져오기 위한 겸손한 시도」(A Humble Attempt to Promote Explicit Agreement and Visible Union Among God’s People in Extraordinary Prayer for the Revival of Religion and the Advancement of Christ’s Kingdom on Earth)와, 「마지막 때에 관한 성경의 약속과 예언연구」(Pursuit to Scripture Promises and Prophicies concerning the Last Time)이다.

또한 칼빈주의 신학이 현대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엄 케리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것도 칼빈과 선교, 칼빈주의와 선교의 상관성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되는데 그것을 사르간트(N. Carr Sargant)가 그의 논문에서 잘 설명한다. 윌리엄 케리의 친구인 앤드류 풀러(Andrew Fuller 1754-1815)는 케리에게 선교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풀러의 신학은 1785년에 출판된 그의 주요한 저작 「The Gospel Worthy of All Acceptation」을 통해 잘 나타나는데 이것이 윌리엄 케리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선교의 범위가 전 세계적으로 나아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런 신학적 영향 가운데 윌리엄 케리는 선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를 하였고 그의 설교 본문은 이사야 54:2-3절에 기초해서 제목은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것을 시도하십시오”(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였다. 이 설교 후 “그 다음날 그의 설교에 감동을 받은 목사들이 새로운 선교회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침례교 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였다”. 이 신학이 전달되는 과정 가운데 칼빈주의가 현대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케리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사르간트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발표자는 종교개혁과 선교의 관계를 루터와 칼빈의 영향을 받은 후기 신학자들이 선교에 어떻게 영향을 받고 어떻게 선교에 영향을 끼쳤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 판단한다. 이유는 후기 루터주의자와 칼빈주의자 학자들 안에서 선교의 이론과 실천이 구체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3. 칼빈신학에 나타나는 선교적 함의와 신학

앞에서 고찰한 대로 후대 칼빈신학자들에게서 칼빈 신학의 선교적 요소가 분명하게 나타났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에 기초한 칼빈주의적 선교학을 확립할 수 있는 신학적 원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케잇 콜멘(Keith Coleman)은 최근 그의 짧은 논문에서 벤자민 워필드의 “칼빈주의”(Calvinism)라는 글에서 칼빈주의 신학이 가지는 선교적 성격을 명쾌하게 인용한다. “칼빈주의는 모든 선교사역 국내 선교와 해외선교에서 탁월한 자극제가 되었음을 입증하였다.”

이런 신학에 기초해서 칼빈신학에 나타나는 선교적 개념을 찾는 학자들을 여기서 언급할 수 있다. 살펴볼 첫 번째 학자는 사무엘 즈베머(Samuel M. Zwemer)이다. 그가 좋은 표본이 되는 이유는 칼빈주의자임과 동시에 무슬림 선교사요 학자요 선교학 교수로서 오랫동안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는“칼빈주의와 선교적 시도”(Calvinism and the Missionary Enterprise)라는 논문에서 칼빈 신학이 선교학에 끼치는 공헌을 몇 가지 설명했다. 첫째, 이론과 실제에 있어서 교회의 선교적 책무를 강조했다. 이것을 오늘날 선교신학에 적용한다면 선교적 교회론에 적용할 수 있다. 둘째,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개념이 선교현장에 끼칠 수 있는 측면을 강조한다. 칼빈 연구자들이 잘 아는 대로 칼빈은 어느 신학자보다 세상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었다. 특히 이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의 극장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고 그들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예배하고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왕국은 내적만 아니라 외적으로 확장되어야 하는데 그리스도의 왕국의 확장이 온 세계에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넷째, 칼빈의 인간론과 일반은총론이 선교학에 매우 중요한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칼빈주의 선교학자인 바빙크의 저술들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즈베머와 바빙크는 두 사람 다 칼 바르트가 일반은총론을 거의 부정하는 것에 반해 칼빈은 일반은총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이고 따라서 일반은총을 통해 선교적 접촉점에 기초를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칼빈 신학이 선교학에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을 주장한다. 둘째, 루터의 이슬람에 대한 과격한 표현과 부정적 생각들이 칼빈에게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그는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신학이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이슬람의 강력한 신성과 선교적 도전에 가장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신학이 됨을 천명하고 있다. 그는 칼빈주의가 오늘날 현대 선교에 주는 중요한 세 가지 의미로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선교의 기초로,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선교의 목표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선교의 동기로 보았다는 점이다.

두 번째 학자는 반덴 베르그(J.Vanden Berg)이다. 그는 그의 논문 “칼빈의 선교적 메시지”(Calvin’s Missionary)에서 칼빈신학의 두 가지 특징은 하나는 영혼구원에 대한 열망으로서 구원론적 성격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선교에 영향을 끼치는 가를 설명한다. 특히 선교 사역은 구원론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칼빈신학의 구원론적 성격은 선교에 매우 부합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찰스 차니(Charles Chaney)는 그의 논문에서 칼빈 신학에 나타나는 선교적 원리와 선교적 영향을 설명한다. 첫째, 선교적 원리로 이방인을 부르심, 왕국의 확장, 교회를 모으심, 개인적 책임을 다룬다. 둘째, 칼빈 신학의 선교적 영향을 세 가지로 서술하는데 칼빈의 선택론, 종말론, 하나님의 영광이다.

네 째로 스탠포드 리드(W. Stanford Reid)는 그의 논문에서 칼빈의 선교적 실천을 거의 대부분 다루지만 그의 논문의 앞부분에서 칼빈주의적 선교의 동인을 6가지로 설명하는데 창조론, 선택론, 소명, 종말론, 주변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려는 부름으로 본다. 특히 칼빈에게서 창조론은 주권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의 것이고 또한 창조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 소외가 일어났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 창조를 하나님께 바로 돌려드리는 것이 인간의 책임이다. 그리고 인간의 책임을 주님께서 영광중 재림 때 까지 수행하기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을 교회의 선교로 본다.

다섯 째로 살펴볼 사람은 앞에서 언급한 칼훈이다. 그는 칼빈과 선교의 관계를 옹호하면서 그의 논문을 두가지로 접근한다. 첫째, 칼빈의 선교적 가르침, 둘째, 칼빈의 선교적 실천이다. 본 논문에서는 칼빈의 선교적 가르침을 살펴볼 것이다. 칼훈에 의하면 칼빈의 선교적 가르침들 중 첫째, 전 세계를 통한 그리스도 왕국의 승리와 보편성을 주장한다. 칼빈에게서 기본적 생각은 전 세상이 그리스도의 왕국에 속하고 그의 구속의 영역하에 있고 그리스도의 승리가 모든 민족들 가운데 곳곳에서 구현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이 생각은 매우 선교적 동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그는 칼빈은 선교적 사역의 어려움을 매우 정확하게 직시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강력한 장애물에 직면하고서도 칼빈은 성경적 실재주의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주창했다. 이것은 오늘날 선교현장에서 직면하는 모든 선교사들에게 선교현장의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전능성을 바라보는 가운데 선교사들에게 엄청난 믿음과 힘과 용기를 주는 중요한 선교 신학적 기초가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의 흐름 가운데 칼빈신학이 가지는 선교적 함의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칼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를 중심한 조직신학 역사신학 선교학의 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시도들은 오늘날의 표현에 의하면 학문의 융합적 접근의 시도이다. 조직신학을 선교적 관점에서 보는 시도. 칼빈신학교에서 칼빈과 선교의 관계성을 연구하는 시도에서 칼빈주의 조직신학자, 역사신학자 그리고 선교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972년 칼빈 신학교에서 발행되는 칼빈신학저널(Calvin Theological Journal)에서 그 학교의 여러 조직신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되었다. 그 중 레커 교수(R. Recker)의 “벨직 신앙고백서의 선교적 강조의 분석”(An analysis of the Belgic Confession as to its Mission Focus), 클루스터(Fred H. Klooster)교수의“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서(Missions- The Heidelberg Catechism)를 선교적 관점에서 연구”, 후크마(Anthony A. Hoekema) 교수의 “돌트 신경의 선교적 강조점”(The Missionary of Focus of the Canons of Dort) 연구에 잘 나타나 있다. 돌트 신경의 선교적 중요성은 그것을 작성하는 돌트 회의(1618-1619) 과정에 종교개혁의 후세대의 대표적 칼빈주의 선교학자 보에티우스가 깊이 관여했다. 후크마 교수는 그의 개혁주의 인간론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가지는 선교적 함의를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후크마 교수는 돌트 신경에 나타나는‘인간의 비참함’이 타락한 인간에게 구세주를 필요로 하고 따라서 복음전파와 선교사의 역할이 중요한가를 설명하면서 돌트 신경의 선교적 함의를 강조한다. 레커 교수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과 칼빈 세미너리에서 선교안에서 개념”(The Concept of The Missio Dei and Instruction in Mission At Calvin Seminary)이라는 논문에서 칼빈주의 신학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적 성격을 잘 설명한다.

이런 흐름 가운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장신대의 신약학 전공 김철웅 교수는,“깔뱅의 5대 강령을 통해 본 선교신학: TULIP Missiology의 가능성 모색,”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대해 고신대 황대우 교수의 표현대로 “이 논문은 칼빈주의를 통한 선교신학의 가능성을 주권 사상에서 발견한 좋은 글”로 평가 받고 있다.

 

4.결론

발표자는 지금까지 종교개혁과 선교, 칼빈과 선교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에서 후대의 칼빈주의자들에게서 칼빈과 선교의 긍정적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칼빈신학의 선교적 가르침도 여러 학자들의 자료에서 보여주였다. 그러면 칼빈주의 신학에 기초한 선교학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가 남은 과제이다.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칼빈주의 선교학자였던 사무엘 즈베머(Samuel M. Zwemer)를 오늘날 선교현장을 고려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칼빈주의와 선교적 시도”라는 논문에서 칼빈 신학이 선교학에 끼치는 공헌을 몇 가지 설명했다. 그 중 주목할 내용은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신학이다.

그는 이슬람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신학적 체계를 칼빈주의 특히 하나님의 주권의 신학으로 보았다.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이슬람의 도전에 가장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신학이 칼빈주의 신학임을 그는 그의 논문에서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칼빈주의적 선교학을 구성하기 위해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는데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선교의 기초로,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선교의 목표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선교의 동기로 보았다.

발표자는 무슬림 사역의 현장에 사역하는 선교사들로부터 받는 질문 가운데 이 강력한 이슬람을 오늘날 그 현장의 선교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발표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슬람의 세력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믿음과 신앙은 더 강하기 때문에 우리 선교사들이 이슬람을 극복하고 그들을 하나님께 굴복시킬 수 있음을 강조한 바가 있다. 어느 역사학자가 적절하게 표현한 것처럼 기독교인의 역사관은 ‘비관적 낙관주의“라고.

오늘날 목회와 선교현장의 현실은 너무나 힘들고 어렵고 비관적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너무나 강력하시기 때문에 선교현장에서 낙관적 자세와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바로 여기에 칼빈주의 신학, 하나님의 주권, 칼빈의 신 중심적 신학이 선교현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따라서 한국교회와 선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신학,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학에 입각한 신중심적 선교의 중요성이 필요하다. 그동안 선교학계에서 논의되었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 삼위일체적 선교 그리고 칼빈이 사역했던 제네바를 선교 센터로 볼 뿐 만아니라 도시선교의 모델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상황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기초가 되는 칼빈 신학과 칼빈과 선교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국외학자들의 연구에 이어 국내학자들의 연구도 많이 이루어져 왔고 최근 국외학자의 연구도 많이 이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자가 새로운 연구와 발표를 하게 된 이유는 칼빈과 선교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여론이 이런 연구를 통해서 긍정적 견해로 되었다면 종교개혁 특히 칼빈의 신학에 근거해서 개혁주의 선교학을 펼쳐야 하는 시대적 중요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해 성경신학자, 역사신학자, 조직신학자와 선교학자가 함께 자리를 하여 종합적이고 장기적이고 기획적인 개혁주의 선교학이 이루는데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칼빈과 선교의 연구에서 학제간 통섭 및 융합 소통과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오늘 이 발표는 이런 학제간 소통과 대화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1) 발표자는 개신교의 다른 교단들 예를 들면서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와 오순절 교단들이 개신교 신학에서 차지하는 그 중요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대부분이 장로교인점을 고려하는 범위 내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다.

2) 최근 국내 연구로는 1.전호진, “종교개혁과 선교”(1980), 2.이병수, “칼빈과 선교”(1997), 3.“하나님의 주권과 선교”(1998), 4.박영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1483~1546)와 선교”(1998), 5.「칼빈의 선교사상」, 최정만(1999), 6.김성욱, “John Calvin과 선교론,”(2002), 7.이상규,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선교”(2004), 8. 김은홍, “종교 개혁자, 루터와 칼뱅의 선교”, (2008), 9.김성현, “깔뱅의 생애에 대한 선교학적 조명”(2008), 10.박경수, “깔뱅의 종교개혁과 선교(2008), 11.최윤배, “마르틴 부처의 종교개혁과 선교: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2008), 12. 변창욱,“루터와 깔뱅의 선교 사상과 사역”(2009), 13. 장훈태, “칼빈과 선교,”(2009), 14. 김철웅, “깔뱅의 5대 강령을 통해 본 선교신학 : TULIP Missiology의 가능성 모색“(2008), 15. 김종희, “깔뱅의 예정론과 선교”(2009), 16. 황대우, 깔뱅의 교회론과 선교(2009), 17. 이정숙, “깔뱅의 목회와 선교”(2009), 18. 이오갑, “깔뱅의 사회 선교”(2009), 19. 김형길, “종교개혁자들의 선교활동에 관한 연구”(2011), 20. 최윤배, “깔뱅의 선교신학과 활동”(2014), 21. 황영익, 「레슬리 뉴비긴과 칼빈의 선교적 대화」(2015), 22. 김성운, 「종교개혁과 선교」(2016), 23.변창욱, “종교개혁자들의 이슬람 이해”, (2017). 24. 최형근, “종교개혁과 한국선교신학”(2017), 25.한국일, “루터의 소명론에 대한 선교적 해석과 적용: 선교적 그리스도인”(2017)

 

3) 이상규,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선교” 「고신신학」, vol.6(2004).69.

4) Ibid.,70.

5) Ibid.

6) 박경수, “깔뱅의 종교개혁과 선교” 「선교와 신학」 21집: 2008: 121-122.

7) Stephen Neill, 「기독교 선교사」, 278.

8) Samuel M. Zwemer, “Calvinism and the Missionary Enterprise” (1950), 206.

9) Stephen Neill, 278-279.

10) 김은홍에서 재인용.

11) Herbert Kane, 「세계선교 역사」, 97이하.

12) J.Verkuyl, 「현대선교신학 개론」, 39.

13) 루스 터커 지음/박해근 역, 「선교사 열전」,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81.

14) Ibid., 81-83.

15) Ralph D. Winter, “The Kingdom Strikes Back”, in 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Pasadena:William Carey Library, 1992), B-18.

16) Edwards: Calvin and Mission (1936),47.

17) J.Verkuyl, Ibid.

18) Gensichen Were the Reformers Indifferent to Missions?(1960). 127.

19) 대부분 영어권이었고 독일어 사용권에서 출판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칼빈 자신의 모국인 프랑스어권의 자료가 없다. 이 책에는 16명의 학자들의 칼빈과 선교에 대한 논문들이 수록되어있다. 1. McFetridge: Calvinism as an Evangelizing Force (1882) 2. Schlatter: Calvin und die Mission (1909), 3. Kochs: Calvin und die Mission (1909), 4. Pfisterer: Der Missionsgedanke bei Kalvin (1934), 5. Edwards: Calvin and Mission (1936), 6. Zwemer: Calvinism and the Missionary Enterprise (1950), 7. Vanden Berg: Calvin’s Missionary Message: Some Remarks aboutthe relation between Calvinism and Missions (1950), N. Carr Sargant, “Calvinism, Arminianism and Missions,” London Quarterly and Holborn Review 176 (1951): 340–44. 8.Vanden Berg:Calvin and Missions(1959). 9.Gensichen: Were the Reformers Indifferent to Missions?(1960). 9. Chaney: The Missionary Dynamic in the Theology of John Calvin(1964). 10. Hughes: John Calvin: Director of Missions(1966). 11. Beaver:The Genevan Mission to Brazil(1967). 12. Anthony Hoekema, “The Missionary Focus of the Canons of Dordt,” CTJ 7 (1972): 209–20. 13. Clowney:The Missionary Flame of Reformed Theology (1976). 14.W. F. Dankbaar, “Het apostolaat bij Calvijn,” in Hervormers en Humanisten (Amsterdam: Ton Bolland, 1978. 13. Calhoun: John Calvin: Missionary Hero or Missionary Failure(1979). 14. Reid: Calvin’s Geneva: A Missionary Centre(1983). 15. Pogson: Calvin’s Missionary Thought and Practice (1990). 16. Nicholls: The Theology of William Carey (1993). 17. Hulse: John Calvin and his Missionary Enterprise (1998).18. Van Neste: John Calvin on Evangelism and Missions (1998). 19. James, III: Calvin the Evangelist(2001).20. Beeke: John Calvin –Teacher and Practitioner of Evangelism (2001). 21.Simmons: John Calvin and Missions: A Historical Study (2002). 22. Keith Coleman, Calvin and Missions, (2009), 23. Don Fanning, Calvinism and Missions(2009). 24. John Starke, John Calvin, Missionary and Church Planter, (2012), 25. Michael Haykin, John Calvin on Missions(2013), 26. Shawn Wright, John Calvin and Mission: That God gather churches from all parts of Earth(2017) 27. To the Ends of the Earth: Calvin's Missional Vision and Legacy, By Michael A. G. Haykin, Jeff Robinson Sr.

20)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상규 교수는 두 가지 견해 종교개혁과 선교에 대해 부정적 견해와 긍정적 견해, 박경수 교수는 세 가지 견해 즉 종교개혁과 선교는 관련이 없었다.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신학과 선교의 실천이 있었다. 발표자는 3가지 입장을 취하는데 부정적 견해와 긍정적 견해 그리고 종교개혁자 후세대에 나타나는 것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21) 16세기 혹은 17세기의 카톨릭 신학자 로베르트 벨라르미네(Robert Cardinal Bellarmine), 개신교 독일 선교학자 구스타브 바르넥(Gustav Warneck)과 에리히 쉭(Erich Schick), 영국의 선교사 윌리엄 케리(William Carey)와 선교 역사학자 스티븐 니일(Stephen Neill), 미국의 교회사학자 케네스 스코트 라토렛(Kenneth Scott Latourette)과 네덜란드의 선교학자 요하네스 베르카일(Johannes Verkuyl)와 미국의 선교역사학자 루스 터커(Ruth A. Tucker).

22)독일 선교학자 칼 홀(Karl Holl), 월트 홀스턴(Walter Holsten), 벤너 엘럿(Wener Elert), 한스 베르너 겐지헨(Hans-Werner Gensichen)과 미국의 선교학자 J. A. 쉐러(J.A.Scherer)

23) Bosch, David J.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 NY: OribisBooks. 1991. 244-246.

 

24) Ibid., 245-246.

25) 독일 신학자 W. 쉐우펠레(Wolfgang Schaufele)와 미국의 메노나이트 신학자 J. H. 요더(J. H. Yoder).

26) Vanden Berg, “Calvin and Missions”172-178(1959)

27) J. Verkuyl, 39.

28) Ibid., 41.

29) H.Bavinck, 「선교학 개론」, 30.

30) Ibid., 122-123.

31) 루스 터커 지음/박해근 역, 「선교사 열전」,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81-82.

32) N. Carr Sargant, “Calvinism, Arminianism and Missions,” London Quarterly and Holborn Review 176 (1951): 339–44.

33) 루스 터커 지음/박해근 역, 「선교사 열전」,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43-144.

34) Ibid.

35) B. B. Warfield, “Calvinism,” Selected Shorter Writings, ed. by John E. Meeter (reprinted; Phillipsburg, N.J.: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73), 2:447. One final quote from B. B. Warfield’s article on Calvinism: “Calvinism has been proved an eminent incentive to all missionary enterprises, domestic and foreign. It is of course acknowledged that several Christian bodies not characterized by what are generally regarded as the peculiarities of Calvinism have been in the highest degree distinguished by missionary zeal and efficiency…. The charter of the Society of the Gospel in Foreign Parts was granted by the Calvinistic Prince, William III. It is to the Calvinistic Baptists that the impulse to modern Protestant missions is to be traced, and the Calvinistic churches are today behind none in their zeal for a success in missionary work.

 

36) Samuel M.Zwemer, 214.

37) Calvin’s Missionary: Some remarks about the relation between Calvinism and Missions 1950,

38) Charles Chaney, “The Missionary Dynamic in the Theology of John Calvin,” in Articles on Calvin and Calvinism, Reformed Review 17 (1963-64), 24-38;

 

39) W. Stanford Reid, “Calvin's Geneva: A Missionary Centre,” in Articles on Calvin and Calvinism, Vol. 3: Calvin's Work in Geneva, Richard C. Gamble (New York & London: Garland Publishing, 1992), 279-288. = Reformed Theological Review 42 (1983), 65-74;

40) David Bosch, 257.

41) Anthony A.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143.

42) 「선교와 신학」 제21집, 163-191에 발표했다.

43) 214.

 

 

이병수  bs2lee@kos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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