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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한국 장로교회, 이대로 좋은가?종교개혁 500주년에 장로교회를 논하다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장, 미포사무총장)

장로교회는 종교개혁의 열매이다. 장로교회는 역사적으로 교황과 감독 개인에 의한 정치를 회의체에 의한 정치로 바꾸어서 대의정치가 되었다. 그리고 직분간의 동등성을 주장함으로 교황 혹은 감독의 수위권을 부정하면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장로교회의 특징은 회의체에 의한 정치이며, 직분간의 동등성이다.

장로교 정치제도는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 그리고 독일의 팔츠 지역과 헝가리, 루마니아, 스위스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한국 땅에서도 열매를 맺고 있다. 이런 장로교회의 대의 정치가 점차 민주화되어 가면서 대중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오늘 장로교회는 한국을 제외하고 어느 곳에서도 주류 교회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왜 이런 현실이 되었을까? 나아가 한국에서 장로교회는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가? 미래에 장로교회가 작동을 할 것인가? 이런 원칙적인 질문거리를 살펴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장로교의 꽃이며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장로 직분 자체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상 제도와 체면 문화의 산물이 교회에서 장로 제도를 훼손시킨다는 비판은 오래되었다.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와 다스리는 장로의 구별과 더불어서 목사와 장로는 일선 교회에서 협력과 섬김이 아니라 반목과 갈등의 상징물로 인식되고 있다. 목사 장로로 구성된 치리회인 당회는 성도를 돌아보고 양육하며 권징하는 기관이 아니라, 행정적인 결정을 하는 기관이 되었다. 제직회의 고유 업무인 재정까지 다루면서 당회가 돈까지 장악하고 있다.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들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장로교의 기본인 직분자간의 동등성은 목사와 부목사의 위계질서? 로 파괴되었다. 목사와 부목사가 직분상 동등이란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담임 목사가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부목사들 위에 군림하는 이런 체제가 장로교회일 수 있는가?

나아가 목사와 장로들이 하는 기능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다. 목사와 장로의 피택은 회중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당회의 권한은 회중에게로부터 나오고 회중으로 인해서 유지되고 회중에게 치리의 유익이 가야한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회의 당회와 장로의 역할이 회중을 돌보는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 심방이 없는 장로들, 돌봄과 권징이 없는 당회가 그것이다.

그리고 당회는 전체 교회를 보는 안목을 상실했다. 그저 자신들의 개교회 중심주의로 그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총회 상정안을 기초하는 최초의 자리는 당회이어야 하는데, 당회가 안건을 의논해서 총회 상정 안건을 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실이다. 치리회의 근간인 당회의 결의 없이 노회원들이 안건을 만들어 상정하는 현실이다. 치리회로서 노회가 당회의 요청을 다루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가치들이 외면되고 있다.

목사와 장로들의 회라고 하는 노회도 위기이다. 교회들을 잘 다스리면서 위임해서 교회를 섬기는 목사들의 영적 건강함을 담보해야 할 노회는 행정적인 결정 기구에 불과한 현실이다. 목사 후보생을 추천하고, 검증하며, 목사를 임직하는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장로를 임직하는 일을 잘 감독하고 있는가? 개교회가 장로의 임직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살피고 있는가? 노회가 당회를 살피고, 교회를 시찰하는 일들에 얼마나 열심인가? 바른 복음과 교리가 전달되고 있는지를 얼마나 시찰하고 격려하는가? 이를 위해서 목사들이 함께 모여서 친목과 교제의 수순을 넘어서 전해야 할 복음의 말씀을 얼마나 연구하고 씨름하고 있는가?

종교개혁기에 목사들의 모임은 어느 도시에든지 성경공부하고 서로를 권면하는 모임들이 있었다. 제네바, 취리히, 스트라스부르, 영국 청교도 등은 장날에 거의 모든 도시에 목사들의 성경공부 모임으로 모였다. 이들이 신학교의 전신으로 역할을 하면서 종교 개혁을 견인해갔다. 오늘날 목사들의 모임이 너무 세속적으로 전락하고 있다. 운동과 밥 먹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건강한 육체를 넘어서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 목사들이 함께 무엇을 하고 있는가? 노회, 시찰회를 반성하는 지점이다.

총회적인 관점에서는, 총회장이 파회 이후에 교회를 대표하는 교단장으로서의 역할을 함으로서 상시 감독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다른 교회들과의 관계, 대 사회적 역할, 총회 재산관리의 책임을 맡은 유지재단 이사장의 역할 등으로 인해서 상시 대표성을 현실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총회장이 권력이 되고, 이를 얻기 위해서 선거 부정과 돈이 춤을 추는 현실이다.

왜 섬김의 무거운 자리가 권력과 누림의 상징이 되었을까? 장로교회의 총회장이 감독교회의 감독과 무엇이 다른가? 왜 유지재단 이사장이 총회장이 되어야 하는가? 상시 교회의 일을 보도록 총무나 사무총장을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 나아가 총회 임원회가 총회로부터 위임되지 않은 일들을 스스로 만들어서 행하고 있다. 행정적인 상위 기관과 총회의 이사회쯤으로 이해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장로 자체의 문제, 직분간의 동등성이 훼손, 각급 치리회의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고 조직 관리에 머무는 현실 등을 짚어보면서 한국 장로교회를 반성하고 미래를 점검해 보려고 한다. 장로교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산다. 장로교의 개혁 없이 한국교회의 개혁도 없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네 분의 귀한 강사를 모시고 장로교 정치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시고 한국 장로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세령  leesr6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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