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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5백주년 축하행사에 적폐 현상 도사리고 있다<샬롬나비 선언문, 5백주년 종교개혁일에 한국교회에 고한다>

한국교회는 세속주의, 물질주의, 성장 성공주의, 번영주의, 개교회주의 우상에서 나와야 한다.

자기 탐욕을 죽이고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종교개혁의 십자가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선교 13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교회사에 유래없는 제1종교(개신교도 967만명)가 된 성공적 정착에도 불구하고 양적 팽창에 따르는 부작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경에 대한 무시, 강단의 세속화, 교권주의, 공명(功名)주의, 분파주의, 미신적 사고, 교회의 기업화, 성적 스캔달, 목회자의 독선, 물신(物神) 숭배 그리고 지나친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로 인해 한국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외형적으로 교단과 연합회 차원의 각종 거창한 모임과 세미나와 부흥회 등으로 5백주년을 축하하는 한국교회 안에 세속주의, 물질주의, 성장 성공주의, 번영주의, 이기주의, 자교회주의, 회개없는 강단, 대형교회 세습, 자교단 독선주의 등 내면적 위기의 요인이자 극복해야 할 적폐 현상이 도사리고 있다.

샬롬나비는 한국교회의 내실적 자기 갱신을 촉구하면서 다음같이 선언한다.

1. 한국교회는 세속주의의 물결에서 돌아서야 한다.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일그러진 모습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할 당시 성직매매, 면죄부 판매를 한 로마가톨릭과 같은 처지라는 지적이 들리고 있다. 대부분 한국교회는 물질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유해진 교회는 이웃에 대한 선교보다는 교회 자체의 부(富)를 축적하는 데 여념이 없고, 일부 목회자들에게는 청빈이나 가난의 모습은 찾기 힘들 정도이다. 교회 내부에서 변형된 형태의 성직 매매, 변형된 세습이 횡행하고, 원로 후임 간의 주도권 투쟁이 심각한 실정이다. 그리하여 본래는 오로지 헌신하고 섬기기 위하여 생겨난 교회의 직분들(총회장, 노회장, 지방회장, 당회장,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은 오늘날 계급 내지 명예의 자리로 변질되고 있다. 그리하여 일부 목사들의 목표는 총회장과 감독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40대에 노회장과 감리사 우상, 50대에 대회장과 감독우상, 60대에 총회장과 감독 회장의 우상에 묶여있다”고 하는 양심있는 목회자들의 탄식이 들리고 있다.

2. 한국교회는 물질주의 세태에서 나와서 자기 갱신해야 한다.

교회 선거와 관련한 논란은 사회이슈로 등장한 지 오래다. 큰 교단의 교단 대표 선거와 관련 “3억 쓰면 낙선하고 5억 쓰면 당선된다”는 3락5당은 과거 사례가 되었다. 이제는 “10당 5락”을 훨씬 뛰어 넘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정치와 사회에 대하여 예언자적 비판을 할 수 있으며, 도덕적 윤리적 권위를 가질 수 있겠는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담임목사직을 세습받는 것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강남의 대형교회에서만 세습이 이루어졌으나 오늘날에는 너무 일반화되어 있으며, 오늘날 감리교의 경우에는 대형교회치고는 세습하지 아니한 교회가 없을 지경이다. 신학대 총장직도 이들을 선출하는 재단 이사들로부터 학교 발전기금을 내라는 금품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교단 총대들의 거마비와 식사비를 수차례 지불해서 총장 선거 낙선 후 생활고에 시달리는 교수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교회직분을 맡는 것은 신성한 부름인데 직분을 감당할 믿음보다는 직분에 해당하는 헌금 능력 여부가 결정한다. 장로(2천만원), 권사(5백만원), 안수집사(3백만원)의 직분 등에는 드려야할 헌금이 정해져 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는 주님의 경고를 들어야 할 상황에 이른 것이다(요2:16). 종교적 상업주의 관행은 혁파되어야 한다.

3. 한국교회는 성장 성공주의 우상과 세습관행을 혁파해야 한다.

기독교 왕국을 이루려는 번영주의적 꿈이 대형교회를 지배하면서, 교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보다 위에 놓는 시도가 만연하였다. 지금 한국교회는 설교자의 권위가 성경보다 높다. 설교자의 목소리가 하나님 말씀인 성경 자체의 목소리보다 커졌다. 목회자의 성경 해석과 결정이 총회의 결정보다 더 크게 되고 있다. 김삼환 목사는 처음에는 머슴의 정신으로 출발했으나 초대형교회를 이룩한 뒤에 교회 황제로 군림하여 총회가 결정한 세습금지법을 무시하고 개교회 우선 명목으로 세습을 단행했다. 명성교회의 세습은 많은 이들의 선한 기대를 저버리고 성공주의 자기 우상화의 전형이라는 비난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수욕이 아닐 수 없다. 성직자는 공직자보다 높은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뼈를 깎는 자기 성찰, 자기 부정이 요청된다. 교회에서도 돈이 권력이 되어 돈으로 원하는 것을 다 성취하는 현실은 중세말기 교회와 다를 바 없다. 루터는 93조항에서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십자가 십자가라고 말하는 모든 그 예언자들은 훌륭하게 행하는 것이나, 정작 (그에게) 십자가는 없다”고 비판하면서 95항에서 “평화의 안전을 통해서보다 많은 환란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확신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4. 한국교회는 개인 기복, 단체 기복 번영주의에서 나와야 한다.

오늘날 일부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여 세상의 동성애 물결, 종교다원주의 등 세상의 풍조에 거슬리기 보다는 승리자 예수 신앙에 의거하여 직장에서의 승진, 사업에서의 성공, 세상의 번영을 신앙의 척도요 기도의 응답으로 간주하는 기복적 복음주의에 경도되고 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시집 장가 잘 가게 되고, 직장에서 진급이 잘 된다고 외치고 있다. 일부 교회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와 이 세상의 통치자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기보다는 신자들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늘날 일부 교회는 수능, 입시, 취직, 각종 소원 성취를 위주로 기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는 합리적 성경적 방식과는 다르다.

5. 회개없는 강단은 진정한 회개를 선포하는 강단이 되어 회개의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부흥사들과 기복주의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영적 은혜를 물질적 육신적 현세적 복으로 환산하여 설명하고, 교회당이 커지고 교인수가 많아지는 것,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얻은 온갖 물질적 및 세상적인 번영과 형통을 은혜와 복이라고 설교하고 있다. 기복 번영주의가 한국교회 강단의 설교를 지배하고 있다. 회개의 선포 없는 설교가 십자가의 복음을 “번영, 일등, 제일, 축복, 평안, 큰 꿈” 등의 수식어가 붙은 값싸고 천한 기복종교로 만들고 있다. 기복강단은 평신도들을 세상에서 평안하게 잘 살고 먹고 잘 사기 위한 기복의 종교인으로 만들고 있다. 죄의 회개와 이에 걸맞는 신자의 삶을 선포하는 강단이 회복되어야 한다.

6. 한국교회는 사회의 고통외면에서 돌이켜 지극히 작은 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오늘날 일부 한국교회는 자체의 성장과 부흥에만 열중하면서 교회 밖의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중국 등 타국에서 떠돌이 생활하는 탈북자들,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 어렵게 적응하여 외롭게 살아가는 새터민들, 교회 주변의 빈민촌 사람들, 여러 가지 사회악에 희생되고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타자를 위한 삶과 희생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랑과 실천의 경건은 망각되고 개교회들과 개 교파들의 자기 확장과 신자들의 자기애가 중심이 된 개교회주의를 초래하여, 사회로부터 비난받고 있다. 이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마 5:13)이요 세상의 빛(마 5:14)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는 교회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려고 사회복지를 시작하였다.

7. 십자가의 복음이 강조되고 목회자와 신자들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종교개혁 오백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압축성장한 부작용으로 당시 중세교회의 그릇된 세속주의 풍조가 들어와 있는 것을 깊이 반성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이 내건 개혁의 목표인 하나님 말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목회자들은 오늘날 세상풍조를 따라가는 동성애 허용, 종교다원주의, 열광적 체험주의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마음 속에 인격적인 조명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종교개혁자들과 후예자 청교도들처럼 무릎꿇고 회개하고 자기를 비우는 마음에 들려 주시는 인격적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번영의 복음은 추방되고 고난 속에서라도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살아가려는 십자가 복음이 강조되고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개인구원을 넘어 사회구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2017년 10월 31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샬롬나비  shalomnab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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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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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구 2017-11-03 15:49:33

    젊은 시절 비판이 최상의 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부정적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이제 신물나게 들은 일반화된 용어들을 동원하기보다는 건강한교회들의 건강한 모습들을 많이 드러나게 하여 교회와 세상을 맑게하는 일을 해야 한다.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은 뼈를 깍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의 근원을 찾고 그것을 뿌리부터 해결한 방책을 찾아 함께 노력할 방향을 모색할 때가 아닌가 한다. 한국교회를 비틀고 뭉개는 .일은 절제가 필요한 때이다.   삭제

    • 이성구 2017-11-03 15:45:40

      샬롬나비의 모든 주장은 반박을 불러올 수 있는 문장들로 메워져 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40대에 노회장과 감리사 우상, 50대에 대회장과 감독우상, 60대에 총회장과 감독 회장의 우상'에 묶여있다” 교회연합에 깊이 관심을 갖고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인 나는 아직 이런 말을 고신교단이나 다른 교단들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식으로 교회전체를 매도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 오백주년인 금년에 기념하는 대형집회는 없었다. 세미나나 포럼은 그야말로 교회의 자기반성에 집중하였다. 거창한 이벤트는 이상하리만큼 없었다.   삭제

      • 이성구 2017-11-03 15:37:11

        샬롬나비라는 이름 안에 누가 감추어져 있는지 알 수 없으나... 틀린 소리는 별로 없는 것 같으나 어쩐지 자신은 빼고 남에게만 적용시키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너무나 직설적으로 전체 한국교회를 매도하는 태도는 역겨울 정도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설교자의 권위가 성경보다 높다. 설교자의 목소리가 하나님 말씀인 성경 자체의 목소리보다 커졌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단정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목사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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