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보 1276호(2017.10.22.) 사설 유감

※기독교보 1278호에 실린 글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이성구 목사(고려신학대학원 교수역임, 시온성교회 담임, 한목협 대표회장)

사설의 성격

신문의 사설(社說)은 그 신문의 얼굴이다. 사설은 그 신문이 지향하는 바를 분명하게 밝히는 글이다. 그래서 신문들의 사설은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사설은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논단 성격의 글이나, 자기의 감정이나 주장을 바탕으로 쏟아놓는 감상문이 아니다. 분명한 사실에 근거하여 그 신문이 지향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문장들로 이루어진다. 종종 정부와 국민 모두를 향하여 단도직입적인 요구를 한다. 따라서 사설은 읽기가 쉽다. 논조가 분명하다. 설득이 아니라 주장을 던지기 때문에 긴 글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매일 발행하는 신문들도 그 날의 사설에 대개 세 개의 꼭지를 가진다. 한 꼭지에 한 가지 주장만을 담기 때문에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다. 따라서 어떤 신문이든지 사설을 읽으면 그 신문의 성격을 금방 알 수 있다.

 

기독교보 사설은 수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한다면 최근 수년간 기독교보의 사설은 사설이 아니라 에세이로 변질된 느낌을 받아왔다. 매주 발간되는 신문임에도 다루는 주제는 하나뿐이다. 그러다 보니 한 주제가 지나치게 길게 늘어진다. 때로 잡다한 내용이 함께 뒤섞이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긴 글을 단 한 개의 중간 제목이나 요약도 없이 써내려가기 때문에 전체를 읽기 전에는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다. 한 눈에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짧게 쓰든지, 아니면 중간 제목들을 달아 이해를 돕든지 해야 한다.

주간 단위로 발행하는 신문이 한 가지 주제만 다루는 것은 너무 느슨한 태도가 아닌가. 교회내의 문제와 교회 밖에서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나라건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성경적 평가를 담아 성도들에게 세상을 보는 일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금년 한 해 동안 기독교보 사설에서 사회적 문제를 언급한 것은 3월 15일자 단 한 차례뿐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내부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한 주간에 한 가지 문제만 다루다 보니 자연히 시선은 교회에 멈추고 만 것이다.

 

사설은 문장부터 정확해야 한다

사설이 신뢰성을 가지려면 문장이 아주 정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장 자체도 신뢰를 얻기 어려워진다. 지난 주간(10.22) 사설에 틀린 문장이 눈에 띈다. “의견수렴 과정에 정당한 절차를 무시되었던 모든 발언과 행동은 이제 자성하고 버려야 한다.” ‘절차를 무시되었던..’이라는 표현은 문법적으로 틀렸다. ‘절차를 무시했던’이라고 해야 맞다. ‘행동은 이제 자성하고...’ 행동이 자성하다의 주어가 될 수 없다. 특히 사설의 제목 “총회 결의는 연속성 있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표현은 어색하다. 총회 결의가 앞선 결의들과 연속성을 가지는 것은 맞지만 총회 결의의 시행은 ‘연속성’보다는 ‘일관성’을 갖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사설의 내용은 어떤 것에 대한 일관성이나 지속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

 

사설은 공정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의 내용이다. 사설은 더욱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런데 1276호 사설은 사실에 비추어 매우 공정치 못한 내용을 담고 있다.

1. 우선 총회임원 선거 문제를 다루면서 매우 편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상대가 있는 선거가 이루어지기 직전에 분명히 한 쪽 편의 흠집을 잡기 위하여 다른 편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일반선거에서도 선거일에는 0시부터 일절 선거운동에 준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선거직전 총회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상대를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위법적인 행동이다. 선거직전에는 절차에 관한 문제가 아니면 발언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입후보자의 자격에 문제가 있으면 사전에 판단이 끝나야 한다. 그것을 위해 선관위가 존재한다. 따라서 선관위가 문제없다고 선언하면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만약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문제라면 선관위가 사전에 양측을 불러 결정을 전달하고 현장에서는 발언할 수 없음을 알렸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자는 수차례 발언이 계속되도록 허락하여 철저하게 편향적으로 행동하였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두고서도 사설은 마치 문제를 제기한 노회가 고도의 도덕성을 갖추어 부인할 수 없는 자료가 있음에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미화하였고 사회자인 총회장은 마치 해당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신중하게 판단하고 배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와는 전혀 다른 어이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후보자에 대한 의문을 선거현장에서 계속 제기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허락한 행위는 모두 사전에 기획된 것이었고 (투표 수 시간 전에 그런 계획이 있음이 sns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사회자가 허락한 것은 고도의 편향된 정치적 행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2. 더욱이 사설은 ‘노회는 상세한 정보와 자료까지 확보했지만..’이라는 주장을 담아 마치 선관위가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그렇다면 사설을 쓴 사람은 상세한 정보와 자료를 본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세한 정보와 자료를 선관위에는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선관위는 그런 자료를 확보하고서도 진실을 덮었다는 주장이 된다. 사실인가? 이것은 진리를 외쳐온 고신의 역사적 전통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밝혀야할 사안이다. 그냥 이대로 지나가서는 안 될 일이다. 기독교보는 사설로 주장한 바이니까 반드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기왕에 벌어진 사안인 만큼, 그리고 우리 교단이 인터콥에 대하여 징벌적 결정을 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진실을 밝혀 사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징계까지 고려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만약 사설의 주장이 허위라면 기독교보는 폐간에 준하는 조치를 받아야 한다. 거짓말을 보도도 아닌 사설(社說)로 표현한 것은 고신교회 전체를 매도하는 매우 악한 일이기 때문이다.

3. 졀정적으로 이번 사설은 이런 선거과정을 통하여 억울하게 패배한 후보를 완전히 매장시키는 이중적 피해를 입혔다. 실컷 선거판을 다 어지럽혀 놓고서는 마치 동정을 베풀어 선거를 하게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역사적 사명에 민감하라

교단지 사설은 매우 공정해야 한다. 교단지의 사설은 고신의 신학과 신앙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고신 교단지의 사설은 고신교회가 맡아야 할 역사적 사명을 잊지 않도록 촉구하고, 교회를 해치려는 악을 드러내며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을 물리치도록 격려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물론 단지 사흘간 열리고 파회(罷會)하는 총회장 뽑는 일에 스며든 어처구니없는 불의를 지적하고 하나님 앞에 서도록 경고하는 일도 해야 제대로 된 고신 교회 교단지의 사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편향적 태도를 드러내어 고신교회를 어둡게 만드는 일을 사설을 통해 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맹렬이 반성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기독교보 1276호(2017.10.22.)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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