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안교육 칼럼3>
자녀가 변화되길 원하십니까?


‘어떻게 잘못된 점만 닮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탄식하며 내뱉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이 자라던 시절, 부끄러웠던 언행을 그대로 하는 것을 보며 놀라워하는 것은 아비들의 공통된 경험이라 여겨집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의 기대와는 다른 길로 내달릴 때 부모는 무너지는 심정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사랑과 격려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초등학교 4,5학년까지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아이는 우리의 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분명히 잘 못된 것을 지적했는데 얼굴을 싸악 돌리면서 외면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많은 부모는 절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큰 소리를 지르게 되고 자극적인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게 됩니다. 이런 충돌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듭하여 반복되면서 잔소리는 길어지고 목소리는 높아집니다. 그래도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아이들이 부모님의 말을 이해하고 온전히 따르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고 사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고 자아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때 부모가 조급하게 재촉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격려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친구가 자기편이 아니라 부모가 진정한 자기편임을 확신케해야 합니다.

   둘째는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야 합니다. 부모가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자녀 자신의 감정이 기준이 되어버리고 친구들의 말이 기준이 되어 버립니다. 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이냐?’ 학생들은 신나게 대답하였습니다. ‘아이스크림 실컷 먹는거요’. 선생님께서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잘 사는 것은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내가 하나 먹고 친구 하나 주는 것이란다.’ 정말로 세상은 혼돈 속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참 사랑이나 나눔을 알지 못한 채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부모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올바른 기준을 찾아서 정리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배우게 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된 우리에게서 배우게 해야 합니다.

   셋째, 성실한 점검과 체벌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면서 제일 안되는 부분이 바로 이점입니다. 한 번씩 북받치는 감정과 열정으로 잔소리는 해댈 수 있지만 지속적인 점검은 잘 안됩니다. 여러 번 다짐을 해보지만 아이들에 대한 우선순위는 생각보다 많이 밀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녀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과 상반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분명히 사랑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 시대의 사랑이 그렇듯이 그 사랑이 삶 속에서 인내와 헌신으로 지속되고 있지는 못한 것입니다. 독수리학교에서는 ‘빨간 스티커’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하면 하나씩 붙이게 되어 있고 일정한 개수가 넘어가면 상담도 하고 벌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은 이 빨간스티커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래도 빨간 스티커는 결코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바뀌지 않는 한 어김없이 빨간 스티커는 올라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것이나 준비물을 가져오는 것이나 순종하는 삶에 있어서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결국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한 번의 자극적인 잔소리가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변화되길 원합니다. 내가 부족해도 아이는 그렇지 않길 원합니다. 확신하건대 분명히 우리 아이는 변화될 수 있고, 부모된 우리보다 훨씬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혜롭게 교육할 때 가능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세상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과 격려, 분명한 기준, 성실한 점검으로 양육하시면 우리 아이는 신뢰와 존경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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