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은 사유화하고 손해는 전체 교회로 떠넘기는 대형교회 해악의 전형이다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장, 미포사무총장)

김병연 교수(서울대 경제학)가 한목협이 주관한 2012년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의 의의 및 평가를 하는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하였다. 김교수는 경제 붕괴론을 연구한다. 어떤 나라의 경제가 붕괴하는가?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익과 손실을 같이 가지고 가다가 붕괴했다. 그리고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국가가 지게 만드는 나라들이 위험하다. 책임을 적게 지는 구조는 각종 문제들이 계속 일어나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 조직이나 사회, 국가가 붕괴할 가능성이 많다. 한국교회가 이런 현실이다. 대형교회들이 유익은 제일 많이 보면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손실은 한국교회 전체에 준다. 문제가 일어나도 대형교회들 스스로 별로 손실이 없고, 책임도 크게 지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계속해서 사고를 칠 확률이 높다. 자신들이 사고를 쳐도 별로 가시적인 손해가 당장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구조는 이익과 손실을 같이 보면서 공공재를 많이 생산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주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대형교회들 중심의 한국교회 현실

전병욱, 오정현, 김삼환, 김하나로 이어지는 한국 대형교회들의 스캔들은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김교수의 분석과 같이 대형교회들은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도시화의 최대의 수혜자들이다. 농촌과 중소 도시들이 길러놓은 성도들을 젊은이들을 통해서 성장한 것이 한국의 대형교회들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정 능력이 없는 대형교회들이 세습이란 치졸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면서 그 이익을 유지하려고 한다.

대형교회들은 이미 공적인 공교회이기를 포기했다. 그곳에 신실한 성도들이 있다는 말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기로 스스로 구조화하였다. 대형교회는 본질적으로 영적인 공동체가 아니다. 죄를 다스리는 못하는 아닌 교회(성찬과 치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는 다부제 예배를 통해서 성도간의 하나됨을 시공간적으로 단절시켰다. 그리고 이명증 없는 수평이동을 통해서 공교회성을 파괴했다. 그래서 대형교회는 공교회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모든 자양분을 다 받으면서도 모든 해악들을 한국교회 전체에 미치고 있다. 명성교회 세습건을 보라. 내부에서는 아무 일도 없다고 소속 교회 당회원이 인터뷰를 한다. 그런데 외부에서는 그리고 다른 교회들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보지 못하고 있다.

명성교회 세습의 본질

명성교회 세습은 수의 많음과 재산의 많음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인 약함을 짓밟은 사건이다. 복음이 가진 가난함의 명분도 버렸다. 그리고 교회 질서도 수를 통해서 짓밟았다. 내부적인 부르짖음을 수의 많음으로 철저하게 짓밟았다. 부와 권력의 승계를 위해서 많음이 봉사를 했다.

전도서가 말하는 헛됨의 프레임은 지혜와 지식, 사업과 부가 모두 크게 되고, 많아지는 덧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전1:16-18, 2:4,7,8,11) 크게 되고 많아짐을 추구하는 헛된 세상의 질서는 의와 공평이 있어야 할 곳에 악과 학대가 존재하게 한다(전3:16, 5:8, 4:1). 그래서 헛된 세상이 되고 만다. 명성교회는 많음과 큼을 추구하면서 학대와 악을 저질렀다. 그래서 헛된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곳이 교회임을 세상에 알린 해악을 저질렀다.

복음의 외침: 일인시위 행렬

지난 11월 27일부터 교회세습반대연합이 주도하여 기윤실과 함께 명성교회 세습이 불법임을 알리는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시위를 하는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교회의 문제는 복음으로 해결해야 한다. 과연 1인 시위가 복음적 해결책인가?

교회가 불법을 저질렀다. 노회에서 일어난 불법이 있다. 총회법을 뒤집은 현실이다. 불법은 복음을 배반한다. 복음을 짓밟았다. 수와 많음이 주는 힘으로 적법과 바른 질서를 짓밟았다. 이제 이런 현실에서 그 손실을 감당할 성도들이 이것이 불법이라고 그 집단에게 항거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온 교회에 해악이 미친다고 말한다. 이것이 복음적인 부르짖음이다. 십만을 헤아리는 수와 비교해서 아주 작은 약함이지만 한명 한명이 부르짖는다. 교회가 듣도록 말이다. 다행히 통합측 교회의 목회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작고 약한 외침이야말로 철저하게 복음적이다. 하나님 나라의 의가 바르게 집행되도록 외치는 작은 선지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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