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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은 샬롬이다<샬롬나비, 2017년 성탄절 메시지>

한국교회는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를 섬김으로써 사회공동체의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념,세대,사회계층,남녀,지역 등의 양극화 분열 위기에서 사회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아기 예수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것은 사람들이 평화(샬롬)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평화는 오늘날 한국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한다. 나라마다 자국 이익 중심의 정책을 피고 있고, 북한 김정은 정권이 무도하게 핵무기를 개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계속 발사하여 한반도의 전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IS의 무참한 테러 사건이 터지고 있어 생명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평화는 전쟁이나 폭력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개인적이면서 공동체적인 삶의 적극적인 향유이다.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성탄은 이러한 평화를 이루기 위한 행동과 삶을 촉구한다. 이에 샬롬나비는 오늘의 상황에서 그러한 평화를 이루기 위한 실제적 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함으로써 성탄의 뜻을 되새기고자 한다.

1. 오늘의 사회 현실은 암울하나 새 희망을 가져야 한다.

세계는 이성에 바탕을 둔 문명을 자랑하면서도 세계 질서는 보편가치가 아니라 정치·군사·경제의 힘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전쟁, 테러, 각종 형태의 재난과 질병 및 빈곤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세월호 침몰 사건의 악몽과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주와 포항의 지진과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건으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 어두운 현실에서 사람들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아기 예수님의 성탄은 희망을 갖게 한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삶의 자리에 찾아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은 어떠한 절망의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2. 현실이 무겁드라도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켜가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삶의 짐이 너무 무거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각종 형태의 사회 문제는 바르고 힘찬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람으로서 갖는 존재가치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은 사람이 창조주와 바른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참된 생명을 누리게 한다. 그것은 생명의 원천이신 창조주 앞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러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가치와 사람으로서 갖는 존엄성이 인정되고 삶의 기쁨과 행복으로 나타난다.

3. 기본적 도덕 규범이 무시된 사회에서 도덕 질서를 바로 세워가야 한다.

오늘날 사회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정당한 권위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바른 윤리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아기 예수님의 성탄과 더불어 누리게 된 평화는 개인 삶의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영역에까지 이른다. 사람은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윤리와 도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질서로서 창조주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중요한 수단이다. 도덕 질서는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와 행동양식이며 어떠한 형태의 특권도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4.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어 가야 한다.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적폐 청산’을 정책의 우선 과제의 하나로 삼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들을 정당화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약속하는 평화는 정의를 잃어버릴 때 깨어진다. 깨어진 평화는 그것을 바로 잡는 행위가 있어야 회복된다. 정의로운 사회는 굳건한 법질서가 확립될 때 실현된다. 법질서는 사람이 가진 기본권을 지키는 길이고,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다.

5. 이념,세대,사회계층,남녀,지역 등의 양극화 분열 위기에서 사회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처해 있는. 양극화가 끼치는 영향은 단지 개인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삶에까지 이른다. 특히 빈부의 양극화는 사회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약속한 평화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고 소외 받는 사람이 없게 될 때 실현된다. 이것은 나와 생각과 뜻 및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함께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어떤 특정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런 평화는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영역이 정의를 넘어서서 자기희생의 사랑에 지배받을 때 실현된다. 그것은 모든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서 섬기고 나누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아기 예수님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은 다른 사람 특히 죄인, 장애자, 가난한 사람, 사회로부터 소외 받고 불이익을 당한 사람 등과 함께 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함이었다. 경제적 측면에서 사회통합을 이루려면 재물에 대한 청지기 의식의 고취, 바른 경제 윤리의식, 나눔의 실천 및 경제 정의 실천제도와 장치마련 등이 요구된다.

6. 아직도 불공정한 우리 사회에 삶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가야 한다.

한국사회는 일제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난 지 70여년 만에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수립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율보다는 억압과 강제에 길들여져 있고 조화보다는 획일성과 극한 대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권리를 주장하는 데는 앞뒤 가리지 않으나 의무를 행하는 데는 교묘한 방식으로 빠져나간다. ‘금수저’는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갑질’의 횡포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사회규범과 공중질서를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안이한 태도가 남을 존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사회의식이 발동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갖다주는 평화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제도상의 민주주의에 그치지 않고 삶의 민주주의를 포함한다. 그것은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 질서다. 그것은 사람마다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균등한 기회를 가지며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함으로써 공동체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7. 창조주의 뜻에 따라 자연을 잘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 받았고, 에덴동산에서 다른 피조물들과 더불어 살도록 지음 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본질에 있어서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은 비록 환경적 조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독특성이 있다. 그것은 자연을 창조주의 뜻대로 관리하고 보존하는 책임이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가져다 준 평화는 모든 창조세계와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폭력뿐만 아니라 창조 질서에 있는 모든 폭력도 제거되는 것이다.

8. 한국교회는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를 서김으로써 사회공동체의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

생명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선포하며 교회가 성경말씀에 따른 공동체가 되어 한국교회는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들, 특히 이국땅까지 와서 갖은 굴욕을 참아 가며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무의탁 노인들,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 땅의 수많은 딸들에게 따듯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2017년 12월 21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샬롬나비  shalomnab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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