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목사

미국 남부지역 한 교회 목사인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The Best Life Now)’이라는 책이 2005년 미국에서 한창 기세를 부리는 듯 하더니 지금은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모양이다. 1970년대 로버트 슐러 목사가 수정교회를 지으며 비슷한 메시지로 엄청난 영향을 끼친 적이 있고, 조용기 목사가 그 뒤를 따라 폭발적인 교회성장과 그에 따른 국제적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근 40년이 지나가는 시점에 다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을 개발하는 것이 마치 성공의 지름길인양 주장하는 글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것을 보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40년은 어떤 면에서 완전히 한 세대가 바뀌는 시점인데, 이 때 동일한 주제가 반복되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지금 미국 경제가 요동을 치고 있다. 그린스펀이라는, 한 때 미국의 경제정책을 주름잡던 경제전문가는 미국이 완전히 경제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단언할 정도다. 미국은 사실 오랫동안 경제에 문제를 안고 있었다. 세계의 대국을 자처하느라 무조건 빚을 얻어 국가를 운영해 왔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나라가 건물 땅을 사들이며 투자를 계속하여 부채대국 미국을 살아있게 하고 있다.

갚지도 못하면서도 돈을 빌려 집을 사는 무지한 일들을 행하여 지금 미국 금융기관은 죽을 맛이다. 은행이 무너지면 경제 질서가 통째로 파괴될 위험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그런 시간을 경험하였지만 동일한 세계 속에 있는 형편이라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수가 없다. 위기는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긍정의 힘’이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역시 인간의 삶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 자체이고,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삶 도처에 낙심할 거리가 늘려있다. 무엇 하나 신통하지 않다.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정부에 대하여 벌써부터 긁어대는 소리들이 적지 않다. 물론 정권을 잃은 세력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좌절감을 달래기도 할 겸 마구 찔러대는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지난 5년간 집권세력으로 큰 소리를 쳤던 무리들은 원래가 인터넷으로 살아온 터라, 바로 그 인터넷을 통하여 다시 부정적 여론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사람이라는 게 원래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일으킬 인간적 실수를 미리 예상하고 공격을 시작하는 느낌까지 든다. 이런 상황에서 숭례문 전소사태까지 벌어지니 어째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긍정의 힘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자신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을 낙천적으로 보고 늘 도전적인 자세로 사는 것도 필요하다. 공연히 주눅이 들 이유가 없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세상이라 어떤 증명서를 가졌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여 자신이 증명서가 가진 남들이 별로 알아주지 않는 것이고 부끄러움을 느낄 이유가 없다. 나대로의 꿈을 꾸고, 나대로의 계획으로 나대로의 실력을 쌓아 가면 된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내가 나를 책임지면 그만이다. 물론 오스틴이 목사인 만큼 ‘하나님 안에서’라는 기본적 원리를 벗어난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내가 나를 긍정적으로 보아도 그건 얼마든지 구름이 뜬 이야기일 수 있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으며 세상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전히 세상은 철저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움직이고, 사람들은 끼리끼리 놀며, 당장 손에 쥔 것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 한다. 세상은 철저하게 비인격적으로, 물질중심으로, 세속적 성공중심으로 나아간다. 세월이 가도 별로 달라질 수 없다.

‘긍정의 힘’이 아니라 ‘긍휼의 힘’을 입어야 한다. 죄 된 인생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 그 힘을 덧입어야 세상에 기죽지 않고 세상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만들어내는 긍정보다 주님이 주시는 긍휼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좋은 언어보다는 훨씬 더 좋은 성경적 언어를 익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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