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다.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해마다 천문학적 수치의 돈이 들어간다. 기독교는 고난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이다. 십자가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것은 '고난받는 종'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성경 인물들을 비롯해 동서고금을 통틀어 무수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당했다. 오늘날에는 북한과 일부 이슬람 국가들의 그리스도인들이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있다.

기독교는 고난을 거부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또한 고난은 우리가 수용해야 할 구원의 방편도 아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기독교 신앙은 고난이 항상 좋지 않은 것이라는, 따라서 피해야 할 것이라는 물질주의적 견해를 거부한다. 그리스도인은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기도 한다.

로마서 8장 17∼24절에 따르면 고난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유가 회복되기까지 존재할 필연적 요소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모든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 노릇'을 하며 '해산의 고통을 당하듯' 신음한다. 우리도 속으로 탄식하며 피조물과 함께 만유의 회복을 고대한다. 해산의 고통을 당하는 어머니처럼 우리는 고난 중에도 소망을 품는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와 함께 고난 중에 소망을 품는다면 우리의 고난도 구속(救贖)에 기여하는 한 요소가 될 것이다.

존 웨슬리는 고난에 관해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고난은 신비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드러나도록 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특히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세상의 구속을 완수하신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고난을(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고난을) 자신의 구속 계획 안에 엮어 넣으신다.

웨슬리는 모든 피조물의 고난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바다나 공중이나 지상에 다른 생물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는 자기 목숨을 보존할 수 없는 생물들이 얼마나 많은가…하찮게 보이더라도 한 아버지의 소생이며, 동일한 사랑의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다!" 그러나 고난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자신의 피조물을 완벽히 치유하실 것이다(사 11:9).

고난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役事)의 한 요소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욱 닮을 수 있으며 세계의 가난한 자들과 억압당하는 자들과 더 깊은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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