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최고의 교양인이자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니토베 이나조'다. 일본 5000엔권 화폐에 초상이 실려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할 때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은 훌륭한 분이므로 아무리 훌륭한 물건도 당신에 대한 선물로는 보잘 것 없습니다. 하지만 물건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저의 정성을 보아서 받아 주십시오. 아무리 훌륭한 물건이라도 당신에게 꼭 맞는 선물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을 모욕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만일 일본인들이 정말 이런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받는다면 선물을 통해 너무도 아름다운 향기가 번져가겠다. 아무리 멋진 선물을 드린다 해도 상대방의 훌륭함에 비할 수 없다는 마음, 아무리 훌륭한 선물이라도 당신의 격에 꼭 맞는 선물이라 말한다면 오히려 당신을 모욕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일본인의 사려 깊음은 정말 부럽다.

그것에 반해 서양인들의 선물에 대한 태도는 이렇게 비교 설명한다. "이건 대단히 좋은 물건입니다. 좋은 물건이 아니라면 당신에게 드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좋지 않은 물건을 드리는 것은 당신을 모욕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사람보다 물건이다.

좋은 물건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선물을 받는 그 사람의 가치를 강조하는가를 선명하게 대비해 놓았다. 그의 분석이 옳고 그름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드리는 일에 대한 마음가짐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선물을 받아도 왠지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 반면에 하찮은 것이라 말할 수 있는 물건임에도 왠지 가슴이 찡한 감동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신앙인은 늘 바치는 존재이다.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 우리의 것을 내어놓는다. 사실은 우리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느 것 하나 그 분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기에 시간이면 시간, 물질이면 물질, 재능이면 재능, 어느 것 하나 주저함 없이 드리는 신앙인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보다 신앙인들의 삶은 드리는 일에 익숙해 있고, 드림이 아까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의 섬김, 나의 헌신, 나의 바침의 삶을 다시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 드리고 또 바치지만 나의 섬김과 헌신이 하나님의 위대함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분의 은혜에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보라. 드린 후에 목이 뻣뻣하게 곧아지고 내 신앙의 이력서에 덧붙일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헌신은 더 이상 아름다운 향기가 아니다. 조금만 열심을 내고 헌신하면 하나님 앞에서 왠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얄팍한 신앙에 니토베 이나조는 큰 망치를 들이댄다. 이렇게 고백하라고! "제가 당신께 드리는 것은 아무리 훌륭해도 당신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제가 드리는 어떠한 헌신도 주님께는 보잘 것 없습니다. 하나님만 위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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