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품교회 이종수목사

이종수 목사 (주님의품교회 담임/ 청소년전문사역자 / 저서 : 학원을 정복하라, 청소년전문교사 메이킹 등.)

한국기독교가 여러 이슈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칭의와 성화와의 단절로 인한 칭의 논쟁으로 뜨거우며, 교리주의와 신비주의로 지성과 정서로 양분되어 있고, 대형교회와 소형교회는 서로를 반목질시하며, 한쪽에서는 좌파와 우파 논리로 대결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양극단에서 각자 자신의 것이 아니면 기독교가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력을 다하고 있다. 자기 확신이 강한 만큼 우월의식을 가지고 반대편의 생각을 죄악시하며 정죄한다.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려는 열정은 분명 귀하고 필요하며 평생 식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렇게 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 변화는 보기 어려우며, 늘어나는 것은 가나안 교인이다. 왜 일까?

칭의 논쟁은 성도들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교리가 너무 중요하지만 지식에만 머문다면 메마르고 피상적이며 교만할 수 있다. 신비주의에 빠지는 순간 성경중심의 신앙에서 멀어지기 쉽다. 교회의 정체성은 크고 작음이 아니라 복음이며 거룩이고 사랑이다. 과연 기독교 안에 이념적인 좌파와 우파가 존재할까? 예수님은 이렇게 나누어지는 분일까? 아니면 이들 중에 어느 한쪽만의 예수님이실까?

사람들은 다 눈이 밖에 있어서 외부는 잘 보지만 자신은 잘 보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모두 성경적이고 균형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구원을 주장하는 진보기독교가 출현한 까닭은 보수기독교가 개인구원에만 치우치고 사회구원에는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는 한 선교학 교수의 말처럼 예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모두 조금씩 한쪽에 치우쳐 있지는 않을까? 자신의 부분적인 지식으로 광대하신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 나 혼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장 바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아합의 시대에도 엘리야만이 아니라 7,000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또한 하나님을 위한 열정으로 교회를 박해했던 사울을 통해 하나님을 위한 열정도 잘못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성도들도 이러한 논쟁들에 질릴 것 같다. 관심을 기울여 보아도 쉽게 답이 없음에 피로할 것 같다. 더욱이 서로를 찔러가며 분열되는 모습은 혐오스럽기까지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논쟁이 소모적이고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이슈들로 몸살을 앓는 것은 현대기독교가 스스로 정화하기에는 불가능할 만큼 여러 오물들로 혼합되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래서 바른 기독교를 세워가기 위해 논쟁은 더 필수적이며 진리를 파수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개혁신앙인들에게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런 시간이 지속된다면 전도의 문이 더 막힐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된다면 새가족이나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견디기 힘들 것 같다.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입고 개혁의 불기둥이 되려면 공의로 선지자적인 선포를 하고, 반드시 긍휼로 제사장적인 기도가 겸비되어야 하고, 먼저 모범으로 왕적인 (순종과 섬김의) 삶이 따라야 한다. 내가 개혁되어야만 우리의 외침이 소음이 아니라 권위 있는 가르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외치는 메시지를 가장 먼저 들어야 할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개혁하려는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단군상 설치나 동성애 같이 명백한 사회적 죄에 대해서는 연합해서 대처하면 된다. 이단이라면 단호하게 정죄하고 관계를 단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면, 우리의 차이가 기독교의 본질 문제가 아니라면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은사가 발휘될 수 있도록 격려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각자 하나님 앞에서 부르심에 충성하며 자기의 신앙양심을 지켜 가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칭의 논쟁을 통해 종교개혁에 버금가는 바른 교리가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한국교회가 값싼 복음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바른 복음이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그 복음이 지식적인 이해에 머물지 않고 십자가의 예수님과 만남으로 인도하는 살아 있는 복음이 되기를 더욱 간절히 기도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이기에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나라의 법을 실천하도록 변화시키는 거룩한 사랑의 삶으로 나타나기도 기도한다. (이상 3가지 모두 성령의 은혜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자) 신앙은 전인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으로만 아는 것도,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도, 정서적으로 느끼기만 하는 것도, 행동하기만 하는 것도 온전하지 못하다. 바른 교리에 근거한 복음전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고백! 십자가의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경험! 십자가 정신으로 살아내는 삶! 이것이 통합적으로 담겨져야 건강한 신앙일 것이다.

먼저 자신에게 질문하자! 나는 성경으로 하나님나라와 예수복음을 이해하고 가르치는가?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성경을 배우고 있는가? 나는 십자가의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있었는가? 그 감격이 있는가? 하나님을 목말라하는 거룩한 열망이 있는가? 나는 주님의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며 이웃을 섬기는 삶이 있는가? 불신자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복음을 위한 고난이 있는가? 그리고 겸허히 균형 잡힌 신앙이 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자

그리고 또 질문해보자! 이 시대가 왜 기독교에 침을 뱉을까? 저 형제는 왜 나에게 비판적인 얘기를 할까? 다른 형제가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백성답지 않아서가 아닐까? 자신에게 성경지식이 부족한 지, 기도가 부족한 지, 삶이 부족한 지를 스스로 알 것이다. 자신이 아는 것보다 타인은 나를 더 잘 알 것이다. 사람이 아는 것보다 하나님은 더 잘 아실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골방에 들어가 가슴을 치며 회개하자!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학자적인 열정으로 성경을 연구하자! 동시에 그 지식이 가슴을 불태우도록 간절히 기도하자! 뿐만 아니라 복음이 나의 삶으로 드러나도록 사랑으로 희생하자!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형제들을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되 상대의 보물도 존중하면서 온유함으로 서로의 좋은 것들을 배우려고 하자! 그래서 나만 옳다며 다른 형제들을 무너뜨리는 돌멩이가 아니라 서로를 세워가는 도움의 돌이 되자!

이것이 그저 순진한 목사의 타령이 아니기를 소원하고 먼저 자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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