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진리의 수난시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진리를 환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를 독선이라는 동전의 뒷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왜곡된 관용주의의 영향으로 '너도 옳고 나도 옳다' 식으로 진리의 남발이 성행하고 있다. 산(진리)을 오르는 길은 인구 수 만큼이나 많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생각이다. 오늘날 교회는 진리를 독선의 아류로 생각해 닿는 즉시 손가락으로 튕겨 내거나 혹은 푼돈만 내면 언제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상점의 껌처럼 씹다가 아무데나 뱉어버리는 세상에 포위되어 있다.

진리 부재 혹은 진리 남발의 시대는 위험하다. 그 어느 편이든 간에 결과적으로 진리에 대한 치명적인 무관심을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대한 복음주의 수호자였던 프란시스 셰퍼는 도덕적인 타락보다도 진리이신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 세속 사회의 근본 위기라고 갈파한 것이다.

진리에 대한 무관심 내지 불감증은 바이러스처럼 교회로까지 전염되고 있다. 성경은 더 이상 진리이신 하나님을 찾는 문이 아니라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서가 돼버렸다. 천국과 지옥,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값을 치르는 제자도의 삶은 성경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강단에서 성경이 성경으로 가르쳐지지 않을 때 오는 무서운 위기를 지금은 텅 비어버린 스코틀랜드 교회가 산 역사로 보여주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장로교의 본산이다. 16세기 중반에 불꽃같은 설교자였던 존 낙스를 통해서 일어난 부흥의 불길은 영국의 전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태동이 됐다. 그런데 반세기 전만 해도 성도들로 가득찼던 스코틀랜드 교회를 지금 가보면 나이 많은 교인들 외에는 찾는 이가 없을 정도로 텅 비어 있다. 고든 콘웰 신학교 교수로 있는 이문장 교수의 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스코틀랜드 교회에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곳의 젊은 목회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데 실패한 것이 가장 뼈 아픈 실수'"라고 지적한다. 교회가 차고 넘치던 시기에 말씀을 가르치는 수준을 높이고 예수님의 제자도를 뿌리 내리도록 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사적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교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시기는 유럽의 신학계가 비평적 성경연구에서 괄목할만한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던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이성만을 앞세운 성경비평이 교회의 삶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뒤바뀌면 사도 베드로의 경고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하는' 영적인 패가망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1949년 샌버나디노 산에서 열린 기독교 대회에 빌리 그레이엄이 참석했다. 당시 열병처럼 퍼졌던 성경비평에 물든 친구로부터 도전을 받고 성경이 모두 옳다는 믿음이 흔들렸던 그레이엄 목사는 숲 속에 들어가 나무 그루터기에 성경을 올려놓고 그 유명한 기도를 했다. "주여, 이 성경 말씀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고 모두 설명하지도 못하지만 모두 당신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때부터 빌리 그레이엄의 사역 전성기가 시작되었음은 불문가지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변증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선포하라는 것이다. "성경은 마치 동물의 왕 사자와 같다. 누가 사자를 변호하고 보호해준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자는 풀어놓으면 스스로 자신을 능히 지킨다. 성경 말씀도 이와 같다." 우리가 성경을 고고학적으로, 변증학적으로 변호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선포하기만 하면 말씀 자체가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스코틀랜드 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는 비결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고 선포하는 데 있다. 말씀의 사자를 풀어놓아라, 이것이 한국 교회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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