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토큰 앞에서  /송길원

성도의 모임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복음을 순수하게 선포하고 성례전을 바르게 집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들리는 말씀’(설교)은 있는데 ‘보이는 말씀’(성찬)이 사라졌다. 문맹자들 앞에서 어려운 라틴어로 메시지를 전하던 중세나 아예 희귀한 성찬이 되어버린 현세 사이에는 무슨 간극(間隙)이 있는 것일까?

17세기 스코틀랜드 교회, 성찬식은 아주 각별했다. 장로들은 성도들 가정을 심방해 확인했다. 바른 신앙고백(주기도, 사도신경, 십계명)이 있는지 삶이 따르는지... 형제와 불화한 자는 화해한 다음 참여할 수 있었다. 그 때 나누어진 것은 성찬 토큰이었다. 이 토큰을 가지고 오는 자라야 중앙에 마련된 성찬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찬식은 18세기에 와서는 이웃 교회들의 성도들이 대거 참여하는 등 그야말로 영적 대 부흥이 있게 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바른 성찬만 행해져도 모니터 교인도 가나안 성도도 다 사라질 터인데....

사순절이 시작된 재의 수요일, 255년도 더 된 성찬토큰이 묻고 있다.

‘이것을 행하라’는 명령대로 ‘행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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