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Today: Billy Grayham, America’s Pastor, Has Died

 
..
2005년 멀년의 비리 그레이엄 목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2월 21일(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99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지는 ‘예수를 향한 웅변적인 설교와 열정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으며, 당시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잘 알려진 종교인 중 한 사람인 빌리 그레이엄 전도자가 수요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몬트리트(Montreat) 집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그레이엄은 파킨스 병으로 투병 중이었다고 한다.

그레이엄 목사는 미국 백악관에 자주 출입했으며,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석, 영국 윈저성 왕실 예배당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왕자 앞에서 설교했으며, 한국과 베트남 전쟁 중에 장병들에게 설교와 기도로 위로하기도 했다.

특히 빌리 그레이엄은 1952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미군을 방문하고, 7,000여명의 미군들에게 14번의 설교를 통하여 그들 중 1,000여명이 결신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는 평소 ‘나는 정치가 내 사역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I don’t think politics is part of my work.)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 시대의 목사들이 한 번쯤은 참고할만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1981년 당시 그레이엄 목사는 암살 미수에 그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병상 머리맡에서 그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1991년 1월 미국이 페르시아만 전쟁을 시작할 때는 백악관에서 기도로 밤을 새우고, 이튿날 아침 ‘우리가 평화를 위해 싸울 때가 가까웠다.’라는 설교로 국가 지도자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빌리 그레이엄은 처음에 근본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출발했지만, 그의 사역이 확장되면서 점점 계몽주의적 활동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일각의 평가도 있다. 그레이엄 단체는 매년 수천만 달러의 후원금과 매일 11,000건 이상의 우편물을 접수한다고 한다. 그의 활동이 얼마나 활발한가를 보여주는 현실적 반증이다.

앤비시 뉴스NBC NEWS 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별세와 관련하여 비교적 상세한 소식을 전했다.

그는 평생 전 세계 186개국에서 약 2억 1천 500만 명에게 설교했으며, 라디오와 TV를 통한 메시지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수를 셀 수 없다.

1997년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가 된 빌리 그레이엄의 회고록 ‘Just as I am’을 비롯하여 2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레이엄은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을 비롯하여 모든 대통령에게 기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52년 12월 한국전쟁 중 미군을 방문하여 전선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레이엄의 소식을 듣고 SNS에서 그레이엄을 ‘대단한 그레이엄’(Great Billy Grayham)이라고 칭찬하면서, ‘그와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스도인들과 모든 종교인들이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There was nobody like him. He will be missed by christians and all religions. A very special man.)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레이엄 목사는 그의 아들 프랭클린이 이끄는 초교파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인 ‘사마리안 지갑’(Samaritan’s Purse)의 대변인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 주 몬트리의 자택에서 오전 7시 46분, 담당 의사가 도착하기 20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52년 12월 한국전쟁 중 미군 야전병원에서 부상병을 위로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1918년 11월 7일에 태어안 윌리엄 프랭클린 그레이엄(William Franklin Graham)은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롯(Charlotte) 농장에서 자랐으며, 16세 때 순회 목사이자 절제운동가였던 유명한 침례교 전도 부흥사 모르드개 함(Mordecai Ham, 1877-1961) 목사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 영적인 눈을 뜨고, 후에 플로리다 주로 이주하여 1939년 그곳에서 목사가 되었다.

그레이엄은 일리노이즈 주 휘튼대학 시절에 장로교 선교사의 딸인 룻 매큐 벨(Ruth McCue Bell)을 만나 1943년 혼인하여 5명의 자녀를 얻었다. 2007년 6월 그의 아내 벨이 수명을 다하여 그의 곁을 떠났을 때, 그레이엄은 ‘영적 일에 관해서는 내 아내가 내 사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라고 했다고 한다.

1952년 12월, 한국정쟁에 참전한 미군들을 상대로 설교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휘튼대학을 졸업한 그레이엄은 일리노이즈 주 웨스턴 스프링의 제1침례교회 목사로서 전문직 사역을 시작했다. 그레이엄이 대중적 관심을 모은 것은 1950년부터다. 그는 1957년 뉴욕에서 ‘16 주 십자군’(16-week crusade)을 통하여 210만 명의 군중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이어서 중남미, 유럽, 북아프리카, 호주(1959), 인도, 필리핀, 홍콩, 타이완, 한국에 이르기까지 경이로운 활동을 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전국 기도의 날 행사에서 그레이엄은 워싱턴의 대성당(Nation Cathedral)에서 한 설교에서 ‘이 국가는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교로 미국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레이엄의 시신은 목요일(22일 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 주 애슈빌(Ashevill)에 있는 ‘빌리 그레이엄 훈련 센터’(the Billy Graham Training Center)로 옮겨진 후 장례 절차를 거친 후 3월 2일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한다.

1952년 12월, 부산아동자선병원을 찾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는 그레이엄과 친분 관계를 강조하면서 ‘내 친한 친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사역이 없었다면, 시민권 운동에 대한 나의 일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1990년대 빌리 그레임 목사는 워터 게이트 당시 리처드 닉슨이 쓴 반유대주의적 의견에 연루되어 언론의 비판과 정치적 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말년에 노스캐롤라이나 주 몬트리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내 집은 천국에 있다’(My home is in Heaven.)라고 하면서, ‘나는 이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I’m just travelling through this world.)라는 말을 남겼다.

1952년 12월, 한국전쟁에 참전 중인 미군 병사들과 상담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그레이엄의 소식을 들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20세기 최고의 미국인 중 한 사람’(Vice President Mike Pence calling him one of the greatest Amerian of the 20th century.) 이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부시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봉사와 그의 비할데 없는 목소리로 수 백만 명의 삶을 변화시켰다.’라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수많은 사람을 위해 기도한 ‘겸손한 종’(humble servant)이라고 했다.

그레이엄은 여동생, 다섯 명의 자녀, 19명의 손자, 그리고 수많은 증손자를 이 세상에 남겨두고 홀로 떠났다.

빌리 그레이엄은 2006년 앙골라 루이지애나 주 교도소 수감자들이 만든 관에 입관된 후 10여년 먼저 떠난 그의 아내 곁에 안장될 것이라고 한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말년에 ‘내 삶의 대부분은 이미 살았다.’(Most of my life has already been live.)면서 ‘주님께서 나를 천국에서 부르실 때가 올 때 기뻐할 것이다. 때로는 여기가 피곤하다.’(I’ll be glade when the moment comes when the Lord calls me to heaven. I get tired down here sometimes. Chicago Tribune)는 말을 했다고 한다.

20180222 David Rhee’s Memorandum

1952년 12월, 한국전선에서 장병들과 함께 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
195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얼어붙은 낯선 이국 땅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두고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장병들
인생은 누구나 저렇게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법, 혼자 가는 법을 익혀야..............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