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에 담긴 네 편의 글들은 초기 기독교 형성기에 여성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바울의 수제자 테클라는 복음을 전파하고 교육하는 사도로, 마리아는 신적인 계시를 전달하는 중심 통로로, 페르페투아는 순교의 면류관을 쓸 수 있는 경기장에서 여느 남성 전투사 못지않은 여성으로, 마크리나는 초대 기독교의 교리와 수도원 규칙 등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 공헌을 한 그레고리우스 가문과 갑바도기아 신학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맏이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들은 박해와 금욕으로 대변되는 초기 기독교 형성기에 여느 남성 지도자 못지않는 지도력과 영성을 보였다.

 

역자소개

역자 : 김재현

서울대 및 동 대학원, 총신신학대학원, 하버드와 프린스턴신학대학(철학박사)에서 중세수도원과 영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호남신학대학교와 두레장학재단, 한중장학재단, 분당중앙교회 인재양성원에서 가르치고 섬기며 차세대 기독교 인물 양성에 뜻을 세우고 땀을 흘렸다. 현재 한국기독교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역자 : 전경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GTU(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영성신학(석사)을 공부했다. 이후 캐나다 토론토대학 내 세인트마이클대학에서 초기교회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에필로그 - 김재현/전경미

베일에 감추어졌지만, 초대 기독교 형성기에 지도자 역할을 했던 역동적인 여성들의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인 생애와 함께 시작되어 발전해온 2천 년의 기독교 역사가 교황이나 주교나 사제나 목사와 같은 몇몇 중심 그룹에 의해 전개되어 온 것은 아니다. 초기 단계부터 사방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기독교는 이교도에서 개종한 지도자들, 평범한 범부들, 여성들, 다양한 재능과 직업을 가진 일반 신앙인들에 의해 기독교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 왔다. 기독교의 전방위적이고 다층적인 확장과 발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전통적으로 특정 교리나 신학에 기초해 진행된 기독교 연구는 20세기 후반부터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한 변화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독교 여성들에 대한 연구였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은 교회 안팎의 절대다수를 차지해 왔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여성들의 삶과 역사와 공헌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가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탄탄한 언어와 문헌학적 능력을 갖추고 숫자적으로도 남성보다 많은 여성 연구가들은 기독교 역사에서 지금까지 베일에 감추어졌던 여성들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그렇다면 원래 출발점인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어 자기 정체성과 토대를 형성해가던 초대교회에서 여성들의 활동은 어떠했을까? 특히 성서의 기록과 전경화, 믿음의 신조와 신경의 확정, 의식과 의례의 정립, 공의회의 정착과 표준규범의 확립, 초기 선교의 방법과 방향이 이루어진 1세기에서 5세기에 이르는 시대에 여성들의 삶과 활동은 어떠했을까?

예수의 시대가 끝나고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였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던 임박한 종말과 예수의 재림은 당장 일어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로마제국의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는 점차 그 농도를 더해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동방과 북아프리카와 서방과 스페인에 이르도록 복음을 확장시켜 나갔고, 수많은 신학적이고 명상적인 글을 남겼고, 각종 교회 관련 회의들을 통해 기독교의 토대를 형성해 갔고, 그 기록물들은 교회와 신학의 본질을 형성해 주었고 세기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접해온 그 시대 사람들의 기록물의 대다수는 남성 지도자들에 의해 형성되었고 그들의 활동을 위주로 전해주었다. 그러면 그 시대에 여성 지도자들, 즉 여성들의 목소리는 없었을까? 만약 우리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여성 지도자들이 있었다면 2천 년 기독교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초기 형성기에 여성 지도자들은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기독교 신학과 신앙, 그리고 공동체의 형성기에 공헌했을까?

이 책에 담긴 네 편의 글들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줄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초대 기독교 시기에 여성들이 결코 주변적 자리에 머물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바울의 수제자 테클라는 복음을 전파하고 교육하는 사도로, 마리아는 신적인 계시를 전달하는 중심 통로로, 페르페투아는 순교의 면류관을 쓸 수 있는 경기장에서 여느 남성 전투사 못지않은 여성으로, 마크리나는 초대 기독교의 교리와 수도원 규칙 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그레고리우스 가문과 갑바도기아 신학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맏이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들은 박해와 금욕으로 대변되는 초기 기독교 형성기에 여느 남성 지도자 못지않는 지도력과 영성을 보였다. 또한 이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성을 둘러싼 당시의 특징을 사이사이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과 테클라 행전>(The Acts of Paul and Thecla)

<바울과 테클라 행전>은 바울의 여성 수제자 테클라의 신앙입문과 복음전도자로서의 삶과 고난을 담고 있다. 타미리스라는 약혼자를 둔 테클라는 바울의 복음을 듣고 동정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에 약혼자와 어머니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맹렬한 박해를 받고 순교자와 같은 위험에 처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래서 ‘산 순교자’ 테클라는 복음을 전하고 교회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자료는 2세기 후반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울 사도의 행전>The Acts of Paul이라는 신약외경New Testament Apocrypha에 담겨있다.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소아시아에 사는 한 장로가 이 글을 썼다고 했다. 실존 인물에 근거했지만 가공적 이야기로 알려진 테클라 이야기는 초기 기독교역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동정을 지키며 복음을 전한 많은 여성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그리스어, 콥틱어,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아라비아어, 라틴어로 번역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원래 그리스어로 쓰여진 테클라 행전의 원전 비평 연구본은 립시우스와Lipsius와 본넷Bonnet이 편집해서 1852년 《악타 아포스톨로룸 아포크리파》Acta Apostolorum Apocrypha에 수록했다. 최근 연구를 잘 반영하고 있는 영어번역본으로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

Alexander Roberts와 James Donaldson 편집. The Ante-Nicene Fathers, vol. 8 (New York: The Christian Literature Company, 1885; 속판간행, Grand Rapids: Eerdmans, 1972); J. K. Elliott 편집. The Apocryphal New Testament: A Collection of Apocryphal Christian Literature in an English Translation (Oxford: Clarendon Press, 1993).

이 책의 번역본을 위한 영어자료로 위의 번역본들과 포담대학교 중세학연구소(Fordham University-Center for Medieval Studies)에서 공유한 자료(Internet Medieval Sourcebook) 등을 모두 사용하였다.

<성 페르페투아와 성 펠리시타스의 수난>(The Passion of Saints Perpetua and Felicitas)

이 작품은 초기 기독교가 직면한 가장 큰 박해의 고난에 여성들, 귀족, 심지어 임산부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상류층 출신인 젊은 여인 페르페투아와 이제 막 출산한 페르페투아의 시녀 펠리시타스는 짐승과 칼을 앞세운 박해의 현장에서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203년경에 순교 당했다.

페르페투아의 순교기의 상당 부분(3-10장)은 페르페투아가 순교 당하기 전에 그녀 자신이 일인칭 화법으로 작성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과 긴장감을 동시에 높여주고 있다. 이는 여성 그리스도교인에 의해 쓰여져 현재까지 보존된 가장 오래된 문서 중 하나에 해당한다.

페르페투아는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의 권익을 당당하게 요구했고, 다른 이들에게 충고와 격려를 주었으며, 꿈과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이를 해석했던 뛰어난 여성 예언자였다.

페르페투아와 사투루스의 감옥 기록과 편집자 기록으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1668년의 라틴 원본에 담겨있다. 이 라틴 원본과 영어 번역본은 다음 자료에도 담겨있다.

W. H. Shewring, The Passion of SS. Perpetua and Felicity: New Edition and Translation of the Latin Text, Together with the Sermons of St. Augustine upon These Saints (London: Sheed and Ward, 1931); “Acta Sancrarum Perpetuae et Felicitatis,” J. A. Robinson. The Passion of S. Perpetua (New Jersey: Gorgias Press, 2004).

이 책의 번역본을 위한 영어자료로 포담대학교 중세학연구소(Fordham University-Center for Medieval Studies)에서 공유한 자료(Internet Medieval Sourcebook) 및 위의 번역본들을 모두 사용하였다.

<성 마크리나의 생애> (The Life of St. Macrina)

기독교 성인전(Hagiography)의 모델이 된 <마크리나의 생애>는 갑바도기아의 명문가 소속인 위대한 교부, 닛사의 그레고리우스가 자신의 큰 누나 마크리나(약 327-380)의 삶과 신앙과 죽음을 기록한 작품이다. 마크리나의 죽음과 장례를 직접 경험한 그레고리우스는 그녀가 죽은 직후에 이 글을 썼다. 당대 기독교신학의 정점을 보여주던 갑바도기아의 3대 신학자(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Nazianzus의 그레고리우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중의 한 명인 닛사의 그레고리우스가 이 글을 썼다는 것도 이 글의 중요성과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상당한 수준의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마크리나는 자기 형제들인 바실리우스와 그레고리우스의 신학과 신앙의 동반자요 조언자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 대표적인 수도원의 지도자였다. 그녀는 소아시아 흑해 근처 폰투스 지역에 있던 가족의 집과 전 재산을 기초로 350년경에 남녀 수도원 공동체들을 설립해, 기도와 명상을 강조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수도원적 삶을 살았던 동정녀였다.

마크리나의 삶과 사상의 깊이는 죽음을 앞두고 동생이자 당대 가장 뛰어난 교부였던 그레고리우스와 나눈 대화에서 묵직하게 드러난다. 몰론 마지막 병상에서의 대화는 마크리나와 그레고리우스의 생각과 신학이 겹쳐져 등장하지만, 독자들이 마크리나의 지성과 영성을 맛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여기서 마크리나는 그레고리우스와 함께 영혼의 본성,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본질과 실천방안, 인간이 잃어버린 천국을 회복하고 신적 생명을 나누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유롭게 응답하며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문제를 논했다.

그리스어로 쓰여진 이 작품의 원전 비평본은 마라발P. Maraval이 편집한 SC(Sources Chrétiennes), Vol. 178(1971년)에 실려있다. 영어 번역본으로는 다음 자료를 동시에 참조했다.

St. Gregory of Nyssa, The Life of St. Macrina, W. K. L. Clarke 역(London, 1916); Saint Gregory of Nyssa: Ascetical Works, V. W. Callahan 역(Washington, D. C.: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67), pp. 161-191.

마리아 복음서 (The Gospel of Mary)

이 책이 담고 있는 네 편의 작품 중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마리아 복음서>이다. 이 작품은 예수 이후 교회의 기둥이요 반석이라 여겨진 베드로의 권위를 능가하는 마리아의 위치와 그녀의 신적인 계시에 대한 독보적인 능력들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예수의 죽음 이후 다른 남성 제자들이 슬픔과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 마리아는 이들을 격려하고 고무시키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작품의 중심인물이 막달라 마리아(요한 20: 11-18)라고 추정하고 있다.

다만, 고대자료에 대한 미국 하버드대학의 카렌 킹 교수의 최근 논의가 보여주듯, 좀 더 학문적이고 문헌학적인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편집자들의 생각 때문에 제일 뒤쪽으로 배치했다.

2세기경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마리아 복음서>는 신약 외경에 속한다. 원래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지만 현전하는 가장 완벽한 사본은 1896년에 발견된 콥틱 파피루스 사본이다. 파피루스 Berolinensis 8502, I로 알려진 이 자료는 5세기 초에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콥틱 사본은 그리스어 파피루스 사본보다 길지만, 없어진 부분도 많아, 18페이지 가운데 8 페이지 가량만이 전해지고 있다(7-10; 15-19,5).

여기서의 번역본을 위한 영어자료로 앤드류 버나드(Andrew Bernhard)가 번역하고 공유한 자료를 주로 사용하였다.

작품을 통해 여성 스스로 말하게 하라

이 네 편의 작품들은 결이 다르고 강조점이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초기 기독교 형성기에 여성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여성들은 하나님의 비전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복음을 전하고 교육하는 데 있어서, 박해의 한 중심부에서 수난을 당하는 데 있어서, 수도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남성 못지않은 담대한 영성과 신앙적 깊이를 보여주었다.

때로는 각 작품이 우리가 좀 더 깊은 연구를 해야 할 주제를 던져주기도 한다. 왜 여성들이 종종 남자 복장을 하거나 남자처럼 되고자 했을까? 왜 여성들과 남자 제자들은 간혹 날카로운 긴장을 일으킬까? 신적인 계시의 진정성과 그것에 대한 개방성을 전통신학에 기초한 이들에게는 어떻게 소통시켜야 할까?

그렇지만, 우리의 일차적 목적은 초대 기독교 형성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몇몇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국사회와 교회의 독자들이 접하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프랑스 고문서 도서관을 비롯해 수많은 자료실에 우리 연구가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료들이 셀 수 없이 거기 그대로 놓여있다. 학적 지성과 겸손함, 그리고 깊은 종교적 영성으로 그 자료들을 해제하고 오늘날 다양한 독자들이 접할 수 있게 만들어 신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본성과 종교적 신비에 보다 가깝게 접근해 가고 싶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