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32회 /오레곤 주 유진중앙교회 담임목사

찬 바람이 얼굴을 시립게 하던 정월 어느 날 늦은 오후에 키가 훤칠하게 큰 백인 여성 변호사가 찾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서훈씨의 변호사입니다. 지금 김씨는 감옥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호할 의향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서약을 하고 집으로 데려 올 수 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김씨는 평소에 잘 알고 지나는 여든을 눈 앞에 둔 동네의 교민이고 감옥에 갇힐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감옥으로 달려갔습니다. 사무실에서 내 미는 서류에 본인의 인적사항, 소셜 시큐리티 번호, 주소, 거주하는 주택의 방 숫자등을 기입했습니다. 손을 들고 기재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과 서훈씨를 잘 보호하겠다는 서약을 했습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감옥 문이 열리고 서훈씨는 겸연쩍은 듯한 모습으로 안이 훤히 보이는 비니루 봉지에 담은 소지품을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사흘 전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만 하자고 살짝 밀었는 데 노쇠한 아내는 뒷 걸음을 치다가 접어서 신고 있던 굽이 높은 운동화가 미끌어지면서 균형을 잃었습니다. 넘어지면서 냉장고에 허리를 부딛혔는 데 충격이 컸던지 얼굴이 파래 지면서 잠시 쓰러져 있다가 응급실로 가야하겠다고 911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전화를 끊자 곧 응급차가 달려오고 경찰관 세 명이 들이닥쳤습니다. 남편이 밀어서 넘어진 것이라는 것 외에 자세한 설명을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병원으로 실려가고 저는 수갑이 채워진채 감옥으로 기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노 부부가 변명할 기회도 제대로 얻지 못한 채 불시에 겪은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사흘 동안 미결수 감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재판 기일은 한 달 후로 잡혀졌습니다. 면회를 온 관선 변호사의 노력으로 재판일까지 민간인 보호자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서훈씨를 보호해 줄 친구나 친지가 있느냐고 묻는 변호사의 질문에 저의 연락처를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변호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조건은 부인과의 접촉을 재판일까지 금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로 연락을 해서도 안되고 인편을 통해서나 편지등을 통해서도 등등 어떤 연락을 취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부모님을 섬기듯이 서훈씨를 모셨습니다. 마음 편하게 계시라고 수없이 말씀도 드리고 따뜻한 음식상도 차리곤 했습니다. 한 주간이 지나자 마음의 안정도 찾고 감옥소에서의 사흘간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던가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온 몸에 문신을 잔뜩 새긴 우락부락하게 생긴 미결수들의 눈길만 보아도 주눅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제복을 입은 간수가 안스러웠던지 이튿날에는 조그마한 독방으로 옮겨 주었다고도 했습니다. “얼마나 추우셨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할아버지를 섬기던 아내의 말이었습니다. “몸은 춥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네, 이제는 따뜻한 저희 집에 오셨으니 편한 마음으로 계세요. 곧 귀가하시게 될 겁니다. 따뜻한 감옥에 계신다고 생각하세요.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녹여드릴께요.”

우리 부부는 온갖 재롱을 떨었습니다. 요즘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빈번한 가정폭력이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사소한 일처럼 보일만한 일상적인 일에도 이렇게 엄격한 법 집행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선 변호사였지만 그녀는 부지런히 검찰과 연락을 취하며 무죄 석방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고마웠습니다.

삼주 째가 되던 날 변호사는 검찰과 의논 한 끝에 두 가지 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할 수있다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하나는 끝까지 검찰과 싸워서 무죄를 이끌어 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물리적인 힘으로 정신적, 육체적인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지고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바로 귀가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자를 선택할 경우에는 앞으로 많은 날자를 이 상태로 검찰과 싸우며 기다려야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바로 귀가할 수있지만 기록에 남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서훈씨는 망설임 없이 바로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는 후자를 선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던 날 우리 부부는 부모를 멀리 떠나 보내는 것 같은 서운함을 느꼈습니다.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주님의 말씀이 한참 동안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