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회는 사순절을 맞아 '지벤 보켄 오네(Sieben Wochen Ohne)'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4반세기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이 운동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까지 7주 간 자신이 선호하는 그 무엇을 절제하는 것이다. 이 기간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부활절 전에 단식과 절제의 기간으로 보내는 시간이다. 1983년 몇몇 신학자와 언론인들이 모여 이 교회적 전통에 따라 7주간 자신들이 선호하는 것을 한번 단절해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많은 호응을 받게 되었고, 요즘은 200만명이 참여하는 전통 행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기간에 술이나 담배를 끊기도 하고, 초콜렛이나 TV를 포기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동시에 그간 유지해 왔던 자신의 삶의 방식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부족이 아니라 풍요 가운데 있으면서도 영적, 정신적 빈곤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운동은 짙은 호소력으로 다가간 것으로 유추된다. 그 결과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많은 사람의 동참으로 이어졌다.

한국 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절제운동을 펼쳐왔다. 대표적으로 금주와 금연, 그리고 축첩에 대한 반대였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개인적 덕목으로 지켜졌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조선 사람들의 무절제한 삶을 보고 보수적 선교사들이 선교 초기부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후에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래서 1920년대부터는 절제운동이 조직적으로 펼쳐졌는데 교단 차원뿐 아니라 1924년부턴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를 통해 기독교의 대표 운동으로 확장된다. 이로써 금주·금연 등 절제운동은 민족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일제의 우민화 정책에 맞서 민족의 자각운동으로, 또 경제적 수탈에 맞서는 민족자본 형성의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순절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이러한 절제의 미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수많은 욕구와 욕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의 욕망도 있을 수 있고, 구체적으로 잘못된 것을 버리지 못하는 욕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욕망과 욕구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우리의 인생을 한없이 무겁게 만드는 게 대부분이다. 성공하겠다고 뛰어다니기만 하고 내 삶을 돌아보지 못한다든지 쾌락의 즐거움을 위해 내 삶의 일부를 내던진 적도 많다. 결국에 가선 그러한 욕심이 내 삶에 짐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이삿짐을 싸다보면 웬 짐이 그렇게 구석구석에 많은지. 내버리지 못했던 자신의 욕심이 발견되는 것 같아 부끄러울 때가 있다. 얼마 전에도 연구실에 앉아 있다 문득 고개를 들고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 읽어보지도 못할 자료를 잔뜩 쌓아 놓고는 방만 채워놓은 모습이 이런저런 욕심에 맡아 놓은 짐 같아서 든 생각이다.

사순절을 맞아 한번 인생의 짐을 벗어놓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내가 의지했던 그것들을 내려놓고 그리 좋아하던 그것도 한번 끊어보고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신 그 일을 기억하며 나도 나를 비우는 일들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절제의 연습은 삶을 멈출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우리가 멈추어선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빠서는 이미 오신 그분을 만날 수가 없다. 그를 향해 눈 돌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 서서 나를 보고, 하나님을 보고, 더 나아가서는 이웃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이것이 절제라는 영성의 첫 걸음에서 시작될 것이다.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大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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