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은 공천파동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 중에는 억울해서 견딜 수 없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유는 "내가 그 사람보다 결코 부족하거나 모자라지 않는데도 탈락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것을 보지만, 보는 눈이 다른 것이다.

인간의 눈은 그렇게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 스피처 미국 뉴욕 주지사는 매춘 조직을 청소하고 월가의 부패 관행을 뿌리뽑는 정의롭고 깨끗한 정치인으로 비쳐졌고 사람들은 그를 '미스터 클린'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최근에 그가 성매매에 깊이 연루된 것이 발각되면서 하루 아침에 '미스터 더티'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뉴욕에는 수백만의 눈들이 있었지만 낮에 정의의 빗자루로 뉴욕을 청소하는 그의 앞모습만 볼 뿐, 밤에 쾌락의 도구로 전락한 뒷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백 개의 눈으로도 진실을 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삶의 성패는 보이지 않는 것에 눈을 떠 속사람을 볼 수 있는 심미안(審美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상은 겉모습을 넘지 못하는 사람의 비명소리로 가득 차 있다. 행복의 문으로 보였던 결혼식장을 나서자마자 이혼법정으로 달려가는 사람들,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사기꾼에게 봉변을 당하는 사람들, 또 화려한 언변에 혹하여 투표했다가 임기 내내 가슴앓이를 하는 유권자들 모두가 겉사람에 취하여 진면목을 보는 눈이 없었기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속사람을 볼 수 있는 심미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는 결코 다른 사람의 겉의 이면을 볼 수가 없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열린 눈은 자신의 세계를 넘어선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은혜이다. 이것은 마치 강가에 살던 연어가 전혀 새로운 세계인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을 변신하는 것과 같다. 바다로 나갈 준비가 된 연어의 변태를 스몰트(smolt)라고 부르는데, 몸은 더욱 유선형이 되고 비늘은 은빛으로 바뀌며 아가미는 바닷물에 더 잘 견디는 형태로 변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스몰트를 경험함으로 세상을 거듭난 시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섬김을 받는 자보다는 섬기는 자가 더 크고, 육신이 부유한 자보다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더 위대하며, 받는 자보다는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는 성경적인 진리에 눈이 열리는 것이다. 영의 세계를 유영할 수 있는 눈과 호흡기를 가진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적인 스몰트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어리석음에 동참하지 않는다. 그러면 과연 내가 거듭난 시각을 가졌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증거는 남을 비판하는 데 시간이나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형제의 눈에 든 티를 비판하는 못난 짓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돌아본다. 이럴 때 우리 속에서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영적으로 시력이 교정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의 겉모습에 속거나 세상의 잣대로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는다. 또 세상의 잣대에 의해서 평가받을 때에 흥분하거나 억울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쪼록 한국 교회가 세속주의의 칼날로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하는 영적 시력 교정의 장(場)이 되어 세상적인 잣대로 신음하는 우리 사회를 치유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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