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누어진 삼일절

이성구 목사 /시온성교회

지난 달 삼일절 99주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만히 살펴 보니 그날 서울에는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들을 가두었던 서대문 형무소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여하고 독립문까지 행진을 하였습니다. 교계는 여러 갈래로 기념예배를 진행했습니다. 진보성향의 교회연합인 NCCK는 아예 2.28일에 남산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100주년 준비에 들어갔고, 감리교회는 유관순 열사의 교회인 매봉교회가 감리교회임을 감안, 천안 유관순 체육관에서 기념식을 가지고 나름대로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장 대규모로 연 기념식은 광화문 교보문고 앞의 기념식과 함께 열린 구국기도회였습니다. 이 기념식은 곧바로 사회단체와 정치인들이 참석하는 대형 정치집회로 이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1일 오전 7시 서울 종교감리교회(최이우 목사)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교총)’ 주최의 삼일절 기념행사는 한국교회의 두 색깔을 함께 아울러 기념식을 가지도록 힘을 썼습니다. 스무개가 넘는 공교단들이 모인 ‘한교총’은 삼일운동의 성격을 진단하고 교훈을 받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따라서 행사는 진보 성향을 띤 평화통일연대(이사장 박종화 목사)가 주관하도록 하는데 이의가 없었고, 심포지엄의 발제 역시 진보 성향의 윤경로 교수(전 한성대 총장)가 맡아 ‘3.1운동의 역사성과 한국교회의 과제’를 주제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향후 한교총이 한국교회의 중심을 잘 잡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일절은 여전히 한국교회가 4분 5열 되어 있음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습니다.

 

뿌리깊은 분열

그런데 이런 분열이 1946년, 해방 후 처음으로 가진 삼일절 기념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새삼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강원도의 예를 보면 1946년 3월 1일에 좌익은 강릉초등학교에서 농민조합, 민족해방청년회, 부녀동맹, 노동조합원 등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이 모여 기념행사를 개최하였고, 우익은 옥천초등학교에서 학도대, 건국청년회, 우국동지회 등을 중심으로 200~300여 명이 모여 기념식을 개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익 기념식장 연설을 방해하기 위해 좌익이 옥천초등학교로 몰려와 좌익과 우익이 대립·충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분열의 역사는 그 뿌리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좌익과 우익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시점은 일부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러시아로부터 사회주의이론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후 사회주의이론을 수용한 지식인들을 좌익,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지식인들을 우익이라 불렀습니다. 좌익과 우익사이에 결정적인 틈이 벌어진 계기는 신탁통치사건. 우익은 반탁(反託)운동을, 좌익은 찬탁(贊託)운동을 벌이면서 갈등은 심해졌습니다. 좌우의 대립 역시 ‘남이 가져다 준 분열’로 시작되었습니다. 아픈 역사입니다.

 

건강한 대한민국 아닌가?

독립운동이 통일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우리 민족에게 뼈저린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 때로는 견딜 수 없는 수치감으로 다가오고, 분단의 현실은 무력감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만약 통일이 사회주의로의 통일이었으면 어떡했을까요? 지금 우리가 세계 앞에 우뚝 선 대한민국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북한과 통일논쟁을 벌일 수 있음은 축복 아닌가요? 건강한 사회이니 토론이 가능한 것 아닌가요? 99년 전 삼일 만세운동에서 보듯,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받쳐온 한 축인 한국교회 역사가 너무 고맙습니다, 이제 우리는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성경적 가치관을 바로 세우도록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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