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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의 뇌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사각의 뇌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정온유

정온유 시인

오래 전 산 아래 집에서 살면서 매일 산을 보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산이 있으니 무심히 보게 되었는데 조금 지나니 산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몇 시간을 산만 바라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산 속을 상상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궁금했다. 그 때부터 등산을 조금씩 했고 산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숲에 대하여 엄청난 일을 하리란 것은 아니고 그저 산, 숲이 신기할 뿐이었다. 질서 없이 무성해 보이기만 하는 저 산이 철저한 질서 속에서 만들어지는 숲이라는 것에 놀랍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여린 꽃잎 하나 건들지 않고 곱게 피워내느라 부드럽게 휘어져 지나가는 바람을 보고 바람에게도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상수리나무를 타고 오르는 기생나무를 보면서 기생이 아닌 공생임을 알게 되었다.

서로 다치지 않게 배려하고 아우르고 어울러 주는 숲을 보면서 우리네 삶도 숲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시간이었다.

숲이 무질서 속에 질서라면 도시 빌딩 숲은 질서 속에 무질서와 같다. 겉보기 헝클어 진 듯 보이지만 그 속엔 어마어마한 질서가 있는 숲에게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겉보기 반듯해 보이는 빌딩 속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무질서에 사는 우리는 말이다.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만난 많은 아이들은 사각의 콘크리트가 너무 익숙하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건물 안에서 갇혀 생활을 한다. ‘이 아이들의 뇌 속도 혹시 사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사각 속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감은 역시 사각의 스마트폰이다. 이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온통 그 세계에 빠져 있다. 이들은 여럿이 둘러 앉아 있어도 섬처럼 혼자다. 함께이면서 혼자인 아이들. 마치 도시에 빌딩들이 우뚝우뚝 무심히, 같이 있지만 따로 인, 그렇게 아이들은 섬이 되어 앉아 있다. 이 아이들은 점점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지면서 결국 이기주의로 굳어진다. 배려와 관심이 그리운 공간에서 나는 아이들을 빈 눈으로 처다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가 어색할 정도로 아이들은 이런 분위기에 너무 익숙하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이 아이들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하고 이 아이들의 꿈이 궁금했다. 그래서 하루는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이 질문이 어리석다라는 것을 1초도 안 되어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의 대답은 모두 같았다.

“잘 모르겠어요.”

차라리 어느 고등학교를 갈 것인가와 무엇을 전공할 것이냐를 묻는 편이 훨씬 이들에겐 편안한 질문이다. 나는 다시 물었다.

“너는 어느 고등학교 갈 생각이니?”, “그럼 전공은 뭐 생각 하고 있는데?” 이런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오래도록 생각 해 온 것처럼 척척 대답 했다.

“K고등학교요.”,

“교원대학교 가서 선생이나 하려고요.”,

“의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요.” 등

‘선생님이 되려고요.’가 아니라 ‘선생이나 하려고요.’다. ‘아픈 사람을 고쳐 주고 싶어서요.’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다.

우리 어렸을 때도 물론 선생님은 누구나 꿈꾸는 그런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옛날 부푼 꿈의 대상의 선생‘님’이 아니다. 안전하게 노후까지 돈 걱정 안 할 것 같아서 선생‘이나’ 해 보려는 것이다. 또 의사 역시 그 옛날 어린이들이 꿈꾸는 흰 가운에 천사 같은 마음으로 아픈 사람을 보듬고 싶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기 위해서다. 정말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참 쓸쓸한 대답들이다. 물론 자신의 앞일에 대하여 현실 적으로 구체성 있게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정말 똑똑한 처사다. 나 어릴 적 아둔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리한 아이들이란 생각이다. 이러한 아이들의 계획성 있는 생각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꿈”이 갖는 꿈이 그리운 것이다. “꿈”도 꿈이 있다. “꿈” 속엔 그 꿈을 꾸는 사람의 “가슴”이 있어야 한다. 아마 “꿈”이 인격이 있다면 분명 그런 사람의 편에 서서 함께할 것이다.

“꿈” 속에 “꿈”은 없고 “현실”만 있는, “꿈”이 원하는 “가슴”은 없고 “이성”만 가득한, 이런 현실은 나로 하여금 오래전 그 산 아래 집에 살면서 보던 산이 그립고 숲이 절실해진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자연을 인간의 것인 양 함부로 깎아대고 세우고 하는 어른들의 잘못이다. 그 깎아대고 세운 자리에 아이들을 밀어 넣어 사육한 어른들의 잘못이다. 저 높은 창공으로 뻗어 나갈 꿈의 길을 콘크리트로 막아 버린 어른들의 잘못이다.

서로 얽히고설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왜 서로 공생하며 살아야 하는지, 이름 모를 잡풀 하나도 죽이지 않고 피워내는 숲을 보면서 무성한 자유 속에서의 질서가 얼마나 위대한지 우린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러한 숲을 물려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결국 아이들의 뇌 속을 콘크리트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정온유  poetry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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