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11월엔가 '월간 고신'의 글 부탁을 받고 썼던 내용입니다.
     세월이 지났습니다만 내용을 조금 줄여서 이곳에 올립니다.
     저 자신부터 부끄러운 일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후안 마누엘이 지은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이라는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다. 루까르노 백작이 어느 날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던 빠뜨로니오에게 조언을 구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은 무엇이오? 이걸 묻는 까닭은 비록 내게 이롭지는 않다 하더라도 올바르고 좀 더 나은 행동을 하기 위해서 알아두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오.” 이 말을 들은 빠뜨로니오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지 찾아다니는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에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 덕목은 선한 영혼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몇몇 사람들은 충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답에 만족하지 못하고 교황청과 프랑스 왕궁을 비롯해서 여러 왕궁들을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어떤 답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람들에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답을 찾으러 순례를 했다. 어느 날 그는 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당신이 한 질문의 답은 부끄러움입니다. 바로 이것으로 인해 어떤 이는 죽음에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나쁜 일을 하고 싶은 많은 충동을 느끼지만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은 모든 나쁜 행동의 출발점이 됩니다.” 물론 그는 이 답에 만족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는 정치인이나 못된 사람들 때문에 짜증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부끄러움과 자기반성을 잃어버린 인간 군상들 속에 종교인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른바 지도자들이 있다. 부끄러움에 누구보다도 민감해야할 지도자들이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한국교회 안의 불행스런 일이나, 우리 교단 안에 적지 않은 세월 계속되어오고 있는 부끄러운 일들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 때문이다.

유대인들도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 그래서 선지자는 탄식했다. 아니 하나님이 탄식하셨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렘6:15) 유대인들을 가리켜서 이렇게 불렀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습2:1)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도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어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