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편집인

나무는 어릴 때 파여진 홈을 따라 줄기를 뻗어가다가 그렇게 굳어지고 말았다. 습관 역시 누군가 하는 대로 따라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말과 행동이 굳어지는 것이다. 두산백과는 습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습관이란 같은 상황에서 반복된 행동의 안정화 또는 자동화된 수행을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반복에 의한 근육 운동이나 건(腱) 운동이 정형화되는 것을 말하지만,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식사나 수면 습관, 풍속·문화 등 넓은 관습에 대해서도 습관이라고 한다.

예수님에게도 습관이 있었다. 누가복음 22장 39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셨고 장성하여서는 습관에 따라 기도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나무는 어릴 때 파여진 홈을 따라 가다가 이제는 완전히 홈에 귿어져 버렸다. 사진/천헌옥

1900년 초기 다양한 종교이력을 가진 길선주 목사가 시작한 새벽기도가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로 발전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사람의 습관이 한국교회의 관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것이나 다름없다.

길선주는 1869년에 출생하여 11세에 결혼을 하였으나 병을 얻어 병도 고치고 도를 닦을 겸 관성교(關聖敎)에 몸을 담았다가 21세부터는 선도(仙道) 수련에 몰두하였다. 1893년 평양에서 선교하던 마펫 선교사에게서 천로역정을 건네받아 읽으면서 마음이 돌아섰고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중 음성을 듣고 29세 때에 장대현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34세에 장대현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이듬해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에 졸업하고 평양장대현교회 목사가 되었다. 그의 회개운동이 부흥운동이 되었고 이전 관성교, 선도에 있을 때, 새벽에 일어나 도를 닦던 습관이 목사가 되어서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했고 교인들이 동참하면서 비로소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가 정례화 되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하면 그것은 그의 습관이다. 그러나 그 지역이나 단체의 모든 사람이 하면 그것은 관습이 되는 것이다. 관습법이라는 것이 있다. 성문법이 완전하지 않은 나라들은 불문법이 통한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관습법이 바로 법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는 것이 관습법이다.

그러나 관습법은 성문법이 완성되어 가면서 점차 인정을 받지 못한다. 어느 동네가 어떤 습관을 법처럼 지킨다고 하더라도 성문법을 초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관습법은 성문법의 보충적 효력을 가진다.

새벽기도회는 관습법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경(성문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에 위배되지도 않는다. 교회의 좋은 습관이 아닐 수 없다. 습관에 따라 기도회에 참여해온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좋은 습관을 하나 가진 것이다.

우리 헌법에 주일은 성수라고 못을 박았고 새벽기도회는 권장되어야 한다고 예배지침 8장 10조 2항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새벽기도회는 관습으로 자리매김하여 관습법으로 통하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의 중직자가 되려면 새벽기도회는 그의 신앙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어떤 교회들이 새벽기도회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폐지하여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자유로이 기도하시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인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새벽기도회를 공식으로 가지지 않는다면 과연 새벽에 기도하러 올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점점 그 수가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낮 시간 따로 시간을 정하여 기도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결국 좋은 습관을 버리고 기도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결과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새벽기도회는 우리 헌법이 말하는 대로 권장할만한 일이고 습관이며, 관습이다. 습관은 어릴 때부터 길러야 몸에 붙는다. 나무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