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 일병목회강좌, 다윗을 통해 보는 기독교 신앙의 통찰

2018년 봄 일병(一餠)목회강좌가 4월 매주 목요일 마다 "다윗을 통해 보는 젊은 목회자들을 위한 기독교 신앙의 통찰"이라는 주제로 남포교회 소예배실에서 열렸다. 일병목회연구소 소장 박영선 목사는 ‘다윗의 생애에서 밧세바의 역할’을 중심으로 사무엘서를 강의했다.

손가락만 있고 손바닥 없는 신학

4월 26일 있었던 마지막 강의에 참석했다. 100여 명의 젊의 목회자들이 초교파적으로 모였다. 강의 전에 박영선 목사에게 물었다. “은퇴 이후 매년 강좌를 여시고 있는데, 일병목회강좌의 차별 점은 무엇입니까?”

박영선 목사는 “우리의 신학이 손가락은 있는데 손바닥은 없다”고 진단한다. “신약학, 구약학, 교의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이라는 각각의 손가락은 더욱 전문화되어 길어지고 있는데 이 전문적인 신학의 영역을 연결해 주시는 손바닥 신학은 없다.” 박 목사는 일병목회강좌를 통해서 ‘손바닥 신학’이 형성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손바닥이 없기 때문에 전문적인 손가락 신학을 공부했어도 일을 하지 못합니다. 손바닥 없는 손가락만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들을 손바닥이라는 목회적 관점에서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짧은 인터뷰 후에 2018 봄 일병목회 마지막 강좌가 시작되었다. 박영선 목사는 다윗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를 영웅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다윗의 생애가 가지는 메시지는 영웅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으로의 초대'”라고 다음과 같이 전한다.

다윗의 생애가 주는 메시지

“다윗 생애의 제일 큰 문제가 된 것은 인구조사이다. 그 문제 후에 하나님이 직접 다윗을 치러 오신다. 밧세바 사건으로 다윗에 대한 기대가 무산되고, 인구조사로 다윗은 무너진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모습은 우리에게 제1차 신앙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1차 신앙관은 신앙의 순도이다. ‘얼마나 전심을 다하고 있느냐? 진심을 다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2차 신앙관은 ‘얼마나 실천하느냐?’의 문제인데 다윗은 여기서 넘어진다. 밧세바와 인구조사로 무너진다. 3차 신앙관은 실존과 인격 즉 캐릭터(character)의 문제이다. 고전 연극은 그 종말이 다 결정되어 있고, 우리는 그 스토리를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연극의 막이 올라갈 때 마다 각각의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새롭게 연기(play)한다. 이처럼 봉사를 실천(play)하는 그 존재와 인격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박영선 목사가 강의하고 있다.

1차 신앙에서 3차 신앙으로

한국에서 성격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캐릭터라는 의미는 각 시대의 조건 속에서 맡겨진 역을 해 내는 각 사람들의 독특한 인격을 말한다. 골리앗을 물리친 영웅 다윗이 그의 잘못 때문에 기가 막힐 웅덩이와 부끄러움의 수렁에 빠진다. 그러나 우리는 시편을 통해 웅덩이와 수렁에 빠졌던 다윗의 후반 인생에 오히려 더 많은 열매가 있음을 본다.

하나님은 ‘잘못한 거 잘한 거’라는 일차 신앙관을 넘어서서 순종과 실천의 열매라는 2차 신앙을 지나 3차 신앙관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그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3차 신앙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목적을 가지셨다. 1차 신앙관에서 2차를 통해 3차 신앙관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제한 없이 사랑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택하셨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한량없는 은혜가 우리를 밀어 올린다. 1차 신앙을 넘어서 3차 신앙으로 우리를 밀어 올리는 것은 십자가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자기 의’로는 미흡하며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으로의 초대이다.

절망의 그릇에 은혜의 생수를 담으신다

다윗의 생애가 용두사미처럼 보이나 그의 불완전한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며 주의 은혜로 빛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밧세바 사건과 인구조사 사건으로 말미암은 절망의 자리에서 비로소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다윗의 절망적인 인생이라는 그릇 즉 context에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은혜라는 text를 담으신다. 물을 달라고 할 때 물이 담긴 그릇을 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생명수 같은 은혜가 질그릇 같은 다윗의 인생에 담긴 것이다.

담을 수 없는 데 담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동정녀라는 그릇에 아기를 담으신다. 시집가서 남자를 알아야 애를 낳는 것이 시간의 순리를 따른 합리적인 상황(context)인데 그 시간을 역류해서 동정녀라는 담을 수 없는 그릇에 아기 예수를 담으시고 그 후에 시집가게 하신다.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순서를 바꾸실 수 있는 분이다. 죽음이라는 context에 부활이라는 text를 담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른다.

4월 26일 강좌에 100여 명의 젊은 목회자들이 모였다.

은혜를 담기위해 우리의 그릇을 깨신다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는 옥토가 되면 많은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길가이고 돌짝밭이고 가시덤불이라 열매 맺기가 불가능한데 예수께서 오셔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십자가에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 그래서 그 쓸모없는 땅은 생명의 대지가 되고 부활이 되고 영생이 된다. 그래서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다. 내 실존과 존재 자체가 바뀐다. 내가 아니라 예수로 바뀐다.

이런 3차 신앙관은 내가 열매 맺지 못하는 존재라는 절망을 통과해야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그 크신 은혜를 담으시기 위해서 우리의 그릇을 깨신다. 그것은 고통, 절망, 그리고 겸손으로 이어진다. 세상의 거친 풍랑 속에 흔들리고 깨진 인생 그릇에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 그리스도를 담으신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 속에서 젊은 목회자들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그러나 일병목회강좌에 참석한 젊은 목회자들은 그 절망 속에 은혜를 담으시는 주님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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