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구속시킨 中 공안검사가 한국에 유학… 내 딸과 연애를 하겠다는 거야"
고문은
없었지만, 12월 몽골 추위는 지독했다. "영하 50도가 기본이었어요. 난방은 하루 1시간씩 네 번 틀어줬고요. 밥은 밀가루로 만든 만두 두
개가 다였고." 감옥 생활 8개월 동안 한국 정부에서는 단 한 명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대신 미국에
있던 친구가 면회 와서 미국 의회에 청원했다. 상하원이 천기원 석방 결의안을 채택했다. 2002년 5월이다. 바깥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미래의 장인 천기원과 미래의 사위 자전은 매주 취조실에서 인연을 이어갔다.
검사:"시킨 자가 누군가."
죄수:"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내 민족이 마음 아파 돕는 것이다. 당신이 서울에서 대만 거지를 봤다고 하자. 그냥 지나치나? 도우면 죄가
되나?"
검사: "비법월경자 납치죄, 3국 도피 방조죄, 불법종교활동죄! 장난하지 마라. 돕겠다는 마음? 믿지 않는다.
교사(敎唆)한 자가 누군가." 그래서 천기원이 대답했다. "하나님이 교사했다."
그가 말했다. "꼬박 6개월 동안 매주 같은 질문을
하는 거예요. 대답도 똑같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검사 세 명이 서류를 들고 들어와 손도장을 찍어갔다. 두 사람이 먼저 나가고, 담당검사가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이제 털어놔라. 진짜 누가 시켰나." "진짜다. 하나님이다." "어떻게 시켰나?" "성경책에 적혀있다.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도우라고 돼있다. 탈북자들이 다 고아고 과부고 나그네다." "나도 그 책 읽어볼 수 있나?" 순간 천기원은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
검사가 불법종교활동 함정 수사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한참 고민하다가 그러라고 했어요." 다행히 함정은 아니었다. 검사는 그에게 "You,
good man"이라며 악수를 청하곤 헤어졌다. 죄수는 검사에게 명함 한 장을 인사치레로 건넸고, 보름 후 천기원은 수갑 차고 한국으로
추방됐다.
6.
"나, 중국 검사입니다"
2002년
12월, 전화가 걸려왔다. "그 검사가 내 명함 가지고 있다가 전화를 한 겁니다. 한국에 올 예정이라고요. 그래서 냉큼 우리 집에 와서 자라고
했죠." 일주일 뒤 검사가 왔다. 재워주고 구경시켜주고 일주일 잘 놀고 갔다. 그리고 2003년 4월 또 연락이 왔다. "뉴질랜드에
유학하려 하니, 도움을 달라"는 내용. "뭐 하러 멀리 가냐, 한국 와라, 더 좋은 공부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권유를 받아들이고
한국에 왔어요." 그해 6월 검사는 고려대
외교통상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2년 내내 천기원의 집에 하숙했다. 검사는 천기원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8월에 유학
갔던 한나가 방학이라고 돌아왔어요. 어린 애들끼리 말이 통하니까, 20일 동안 둘이서 엄청 돌아다니더라고요." 천기원의 목소리가 조금 커진다.
"딸이 돌아가고, 며칠 있다가 검사가 묻는 거예요. 한나랑 친구 하면 안 되겠냐고. 그래서 그러라고 하니까 이 친구, 굉장히 어색해하며 말을
못합디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너, 연애하고 싶은 거냐'고 했더니, 그렇다는 겁니다, 세상에." "둘이 서로 좋아하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사귀는 건 상관없지만, 목사가 아니면 절대 시집 안 보낸다"고 우겼더니 "아버지, 그러면 목사 되겠다"고 검사가 대답했다. 2006년
9월 30일 죄수의 딸과 검사가 결혼했다.
7.
"누군가가 해야죠… 인권 문제잖아요"
검사
사위를 얻고 난 후에도 탈북자 지원은 계속됐다. 1999년 12월부터 2008년 3월까지 두리하나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빠져나온 탈북자가
706명이다. 중국
입국이 불허된 천기원은 전화로 중국 내 활동가들과 작전을 짜고 사람들을 빼낸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식량난으로 촉발된 대량 탈북 사태로
중국 내에 4만 명(추산)에 이르는 탈북자들이 숨어 살고 있다. "누군가가 해야죠. 이건 인권 문제잖아요." 2012년 입국금지가 풀리면 또
중국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공안검사가 배후를 캐물을 만도 한 고집이다.
탈북 지원은 성공적으로 진행 중. 하지만 사위에 관한 한
"내가 사기당했다"고 그가 말했다. "목사 되겠다던 사위가 기업에 취직했어요. 검사 때려치우고. 이럽디다. '아버지, 돈 벌어서 아버지 사업
도와드릴게요'라고, 허, 참." 사위는 한 대기업 베이징지사에 근무 중이다. 그가 말했다. "탈북자 돕다가 사위도 만났으니, 수지맞는 사업
아닌가요?" 그를 영웅으로 만들자는 의도는 없으나, 이런 기연(奇緣)은 누군가가 기억할 만한 일이기에 여기 기록한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