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의사 존 조웨트는 식사 때마다 감사기도를 드린 뒤 식사하는 사람들의 체내엔 여느 사람과 다른 특이한 3가지 물질이 분비됨을 발견했다. 면역 기능을 강화하는 특이한 백신과 항독소(antitoxin), 일종의 방부제인 antiseptin이라는 물질들이다. 겸손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셈이다. 겸손은 이토록 우리 영혼과 육신을 윤택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교만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스스로 파국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교만은 그 스스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의 모체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고 파괴적이다. 그래서 혹자는 교만과 이기심을 일컬어 원죄에 가장 가까운 죄라고 하기도 했다. 때문에 교만한 인간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중세의 역사가 몰락한 것도 인간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교황청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고, 성직자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백성들을 억압할 때 하나님은 교만한 중세 역사를 끝나게 하셨다. 근세에 이르러 산업혁명 등의 영향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고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인본주의가 팽배해 하나님 없는 유토피아 건설을 꿈꿀 때 이 오만한 역사는 세계적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했다. 개인이나 국가 또는 인류 전체의 문명이 하나님께 오만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언제나 역사는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교만은 장성해가면서 날마다 더 무서운 죄를 잉태하고 생산하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련된 빌라도, 가야바, 헤롯 등 모든 주역들도 교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신분과 지위, 정치적 영향력으로 무죄한 사람을 사형에 넘겨주면서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을 할 만큼 그들 모두는 교만했다. 십자가 사건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만든 오만의 역사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그래서 예수 부활은 교만한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중심의 바벨탑을 다시 만들고 마치 하나님 없는 세상이 된 것처럼 오만방자하게 행해도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도 우리에게 인간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웅변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래서 우리에게 행복과 평화로 가득 찬 삶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언제나 순종하고 부활의 주께 헌신하는 삶이 그것이다. 역사가 언제나 하나님의 승리로 귀결될 것을 말하면서 겸손히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것만이 생명과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유일의 길임을 가르침이 부활의 소식이다. 겸손한 감사의 기도만으로도 우리 삶을 여유롭고 윤택하게 한다면 부활의 주님을 승리의 주님으로 모시며 섬기고 동행하는 삶에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생명의 신비가 더욱 넘치지 않겠는가? 깊이 생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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