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 총독이었다. 선민사상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유대인들에겐 하나님이 주신 땅을 제 마음대로 침략하고 지배하는 빌라도는 제거해야할 적이었다.


그것은 일반 시민에서 보다는 기득권을 가진 지도층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제사장이나 랍비들은 빌라도를 눈에 가시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빌라도와 손을 잡는 일이 발생했다. 예수님을 잡기 위해서였다.


갈릴리 나사렛의 형편없는 동네의 무명의 한 청년이 갑자기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것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유대 지도층의 적은 빌라도가 1순위가 아니라 예수로 바뀌었다. 그들은 예수를 잡기 위해 빌라도와 동지가 되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적의 적은 동지가 되는 타락한 인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본이었다.


박정희 독재시절에 오적(五賊)이라는 단어가 유명세를 탔다. 시인 김지하가 풍자시 '오적(五賊)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부패한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등을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에 비유했다. 그리고 이들의 부정부패와 방탕한 생활을 생생하게 고발했던 것이다. 독재정권은 김지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으나 이로 인해 오적은 더 유명하게 되었다.


국민일보 한마당의 기사에 의하면 아이러니 하게도 제18대 총선에서 그 독재자의 딸을 지원하는 박사모도 오적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총선에서 낙마시킬 한나라당 후보 5명을 발표하면서 오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박사모의 오적은 이방호 이재오 박형준 전여옥 김희정이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난 했거나 등을 돌린 사람들이다. 박사모는 낙선운동을 폈고, 서울의 전여옥을 제외한 4명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박사모의 승리였다.

그들의 낙선운동을 보면서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 적과 손을 잡은 때의 '적(敵)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실감난다.  "강기갑 후보가 당선돼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지만 이방호 후보가 당선되면 나라가 결딴날 것"이라는 주장으로 경남 사천에서 이방호 후보와 맞붙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를 지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예상을 뒤엎고 강 후보가 178표차로 신승했다.

박사모는 한나라당 오세경(부산 동래) 후보가 전국 지원 유세를 거부한 박 전 대표에게 탈당을 촉구하자 이 지역 친박 무소속연대 이진복 후보를 밀어 오 후보를 낙선시켰고, 경남 진주갑에서 무소속 최구식 후보가 당선되는 데에도 일조했다. 박 전 대표가 '살아서 돌아오라'했던 김무성, 유기준, 홍사덕은 박사모에 편지를 보내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한술 더 떠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10일 "전여옥 후보의 당선을 무효화함으로써 오적을 소탕하겠다"고 했다 하니 독재자의 망령이 살아나 활보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는 계속되어진다고 할 것이다.


어디 세상일일 뿐이겠는가. 돌아보면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단지 나를 반대하기 때문에 내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너무 입바른 소리를 해대기 때문에 척결해야할 오적으로 삼고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끊어내고 마는 일들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일의 부당함을 알면서도 한마디 입도 열지 않고 부정을 방관하는 일도 같은 부류의 죄가 아니겠는가. 이제 내일 모레면 노회가 열린다. 이 같은 세상에서나 있을 법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자의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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