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 목사(하나교회 담임, 전 SFC 대표간사)

1988년 7월 15일! 30년 전 이른 아침에, 나는 당시 살고 있었던 서울 집을 나섰습니다. 전국 SFC 대표 간사 시절이었습니다. 서둘러 부산에 가서 총회 SFC 지도위원회에 참석한 후, 전라도 광주로 가야 했습니다. 그 전 주간에 있었던 전국 SFC 대학생대회에 대해 지도위원들에게 보고한 후, 학생대표들과 대회를 결산하기 위해 광주로 가는 길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지도위원회로 모인 바로 그 자리에서 ‘SFC 대표 간사를 오늘로 해임한다.’라고 통보하였습니다. 더는 SFC 간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정했던 광주로 가지 못하고, 바로 서울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1년 전 대학생대회 마지막 집회 때 나는 “누군가 SFC를 위해 뼈를 묻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물론 속으로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차마 밖으로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장담하는 말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 집회를 마친 이후에 주변에서는 “대표 간사가 SFC에 뼈를 묻는다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본심도 그랬고 소문도 그렇게 나서, 정말 그렇게 작정하고 있었는데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내가 SFC를 사랑하였던 한 가지 이유는 'SFC 강령'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및 대, 소요리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로 시작하여 목적, 사명, 생활원리에 대한 고백입니다. 나는 지금도 간혹 학생들과 SFC 강령을 제창할 때면 가슴이 뛰곤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교회와 세계교회를 건설하는 것은 지금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SFC는 내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물론이였고, 지구(시찰), 지방(노회), 전국 SFC 위원장(총회)으로 섬길 기회를 주었습니다. 심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성격이 많이 훈련되고 계발되었습니다. 좋은 친구들과 신앙의 동지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산지역대표에 이어 전국대표 간사로 섬길 기회도 주어졌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고린도전서15:10)인데, 하나님께서는 특히 SFC를 통해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SFC에 빚진 마음을 가지고 평생 간사로서 헌신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중국에서 추방당한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30년 전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추방 선배선교사님의 아들이 했던 말을 전할 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아버지는 중국 대륙 쪽을 멍하게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중국은 아버지에게 첫사랑과 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런 중국에서 추방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가슴 아픕니다. 첫사랑이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내게 SFC는 첫사랑과 같았나 봅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 때문에,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게는 SFC에 대한 애증이 있습니다. 애증(愛憎)이 승화(昇華)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밑거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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