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일 목사, 한국교회의 위기와 공공성

채수일 목사는 지난 17일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발표회에서 ‘한국교회의 위기와 공공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한국교회의 위기와 공공성이라는 제목이 주는 메시지가 있다. 공공성이 없어서 위기이다. 그렇다면 공공성은 무엇인가? 사적인 영역의 반대가 공공성이다. 신앙의 내면화 개인화로 대변되는 신앙의 사사화에 대한 반대 개념이 공공성이다. 몰트만에게 있어서 공공신학은 하나님 나라 신학이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향한 열정으로 공공신학은 시작된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담임, 전 한신대 총장)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한목윤, 위원장 전병금 목사, 서기 정주채 목사) 발표회에서 ‘한국교회의 위기와 공공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채 목사는 자기변혁이 가장 늦는 집단으로 학교, 교회 그리고 국회를 꼽았다. 채 목사는 매년 있는 총회 선거제도 문제를 예로 들면서 자신부터 푸념병에 걸려있는 것 같다고 반성했다.

“총회에 참석하는 총대들이 선거제도의 문제를 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 총회 시스템을 고쳐야 하는데 하지 못한다. 기장 총회 800명이 모이는데 10명이 떠들다 간다. 총대 수 줄이 자! 선거제도 개선하자! 등등 말을 하지만 변화는 없다.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라고 푸념은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단 몇 명이라도 모아서 개혁안을 제안하고 개혁 의지를 가지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전혀 가능성이 없다. 여기 있는 나부터 도덕적 냉소주의와 영원한 푸념병에 걸려있는 것 같다.”

채 목사는 ”몰라서 못 고친다면 용서의 기회가 있지만, 다 알면서도 개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 모독죄가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했다. 채 목사는 문제인 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겠냐고 했다.

발표를 마치고 토론하는 발표자들

채 목사는 앞서 발표한 손봉호 교수의 “하나님 나라보다는 ‘우리 교회’에 집중하는 이기주의자들... 더러운 물에 손 담그다가 자신들조차 더러워질까 걱정되어서 ‘한국 교회’, ‘하나님 나라’에 관심 쓰기보다는 자신의 목회만 제대로 하는 것에 몰두한다.”라는 발표 내용을 언급하며, 자신이 바로 이런 이기주의 목회자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발표가 끝나고 이어진 토론회 시간에 채 목사는 내가 바로 손봉호 교수가 언급한 그런 이기주의적인 목회를 하고 있었다며 손 교수에게 처방을 요청했다.

한편 채 목사의 한목윤 발표에 대한 다음과 같은 CBS의 보도가 '동성애 반대 운동에 대한 비판'이라고 인식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또 다른 발제자로 나선 경동교회 채수일 목사는 한국교회 위기의 이유로 비판적인 지식사회와의 대화 능력이 없는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사회적 인식의 확산을 꼽았습니다. 동성애나 양심적 병역거부, 난민 문제 등의 논의에서 한국교회가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배타적인 흑백논리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보도에 대해 동성애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수동연세요양병원 염안섭 원장은 크리스천투데이를 통해 "동성애 반대운동은 전혀 배타적인 흑백논리나 지식사회와의 대화 능력이 결여된 저능아들의 집합체가 아니라며 동성애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의학적 부작용에 대해 건전한 비판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염 원장은 채 목사를 강하게 비판하며 순수하게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이들에게 가한 “얼토당토않은 린치”에 대해서 채 목사와의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목윤 발표를 모두 마치고 단체사진

과연 동성애 반대운동은 ‘폐쇄적 한국교회의 배타적 흑백논리의 산물인가?’ 아니면 ‘성경 가치관을 타협 없이 지켜 내고자 하는 건전한 비판인가?’ 한국교회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동성애와 난민 문제 등과 같은 중요한 현 이슈들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런 이슈들에 대한 이견들 때문에 내부 갈등이 일어난다. 한목소리로 대처해야 할 이슈들 때문에 오히려 한국교회는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채 목사와 염 원장의 공개토론은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토론을 위해 채 목사의 발표문 전문을 싣는다.

 

한국교회의 위기와 공공성

 

채수일(경동교회 담임목사)

 

1.한국 교회 무엇이 위기인가?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지적할 것이 없을 만큼 대부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마이너스 성장, 고령화와 저출생에 따른 재정압박, 교역자와 교인들의 갈등, 갈등의 중재와 해소 능력의 부재, 도농 교회 양극화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교역자의 각종 스캔들, 교회 안의 성차별, 교권 다툼, 더 이상 자정능력을 상실한 교단, 교권주의와 교파분열, 대형교회 세습, 무분별한 해외선교 등으로 인한 사회적 공신력의 상실이 그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 종교에 대한 극단적 배타주의와 이른바 ‘태극기 부대’와 ‘촛불 혁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양극화는 기독교의 근본정신은 물론 사회통합능력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친미반공주의, 정권과의 유착, 교회의 시장종교화, 정치적 동원력으로서의 이용가치는 있으나, 비판적인 지식사회와의 대화 능력은 없는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지요.

종교인 납세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동성애 문제, 종교적 군복무거부와 대체복무제 논의, 난민문제 등의 논의에서 기독교가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오히려 배타적인 흑백논리로 대응하는 것도 공신력을 실추시킨다고 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결합되어 사회와 정신 개혁의 주체여야 할 교회가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위기는 위기에 당면한 교역자나 지역의 개별교회는 가장 가깝게 위기를 의식하기는 하지만, 위기극복 능력이 없어 갈수록 의지가 꺾인다는 것이고, 교단 차원에서는 위기극복을 위한 대안과 시스템 구축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른 교단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속한 교단의 경우, 신학교육의 근본적인 제고, 교역자 양성과정의 엄격성, 교역자 계속교육을 통한 질적 향상, 교역자 청빙제도개선, 연금제도의 현실화, 노회 및 총회 조직의 합리성과 운영의 효율성 제고, 선거제도개선 등 중장기 개혁안을 만들고, 그것을 실현해가려는 의지와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개혁이 가장 늦은 집단, 제가 보기에 교회와 학교와 국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밖으로 드러난 한국교회의 도덕성 위기현상이 교역자 개인, 혹은 일부 교회들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국교회 위기의 근저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의 위기가 놓여 있습니다. 신앙의 개인화, 내면화와 교회의 양적 성장에 기여하는 신학과 신앙의 사회적 책임성과 교회의 공공성에 기여하는 신학 사이의 건강하고 성숙한 다리 놓기가 이루어지지 못한데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는 도덕적 위기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기술과학혁명시대라고 할 만큼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도전, 예를 들면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은 단지 실용주의적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교회와 신학의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직업세계의 변화, 신(神)이 되고 있는 기술이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그런 변화가 교회와 신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공공성의 시각’에서 작업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2.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개신교 신학은 전통적으로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전통 위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종교개혁에 뿌리를 둔 개신교의 신학적 정체성은, 특히 마틴 루터(M. Luther, 1483-1546)의 신학사상에 근거한 정체성은 ‘오직 믿음’, ‘오직 성서’, ‘오직 은혜’로 압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개신교의 신학적 정체성은 개인의 발견과 신앙의 자유를 확립함으로써 서구 근대의 문을 연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전통 위에 서있는 개신교의 정체성은 오늘 ‘신앙의 사유화’에로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신앙은 삶에서 하나의 별개 영역이고 도덕과 죽음의 문제를 다룰 뿐, 경제적 혹은 공적 삶의 부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후의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는 신앙을 공적 삶에서 결정적으로 분리시켰습니다.1) 신(神)이 사람의 정신적 영역으로, 기독교가 세계의 주변으로 밀려나게 된 것은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되어,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의 신학에서 명확하게 되었고2), 20세기 실존주의 신학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기독교의 자리도 우주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세계에로 축소되었다고 생태여성주의신학자 샐리 맥페이그도 주장합니다.3)

‘신앙의 사사화’(Privatisierung des Glaubens)는 감성에 근거한 부흥운동과 교회성장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1907년 한국 개신교 성령운동과 한국교회의 급성장,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슐라이어마허 신학의 부활, 라틴 아메리카에서 빠르게 퍼져가는 ‘신은사운동’ 등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면화와 사사화(Privatisierung)의 예증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의 공공성, 세상을 위한 교회의 책임적 참여를 신학화하는 담론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책임사회론’, ‘정의, 평화, 창조’(JPIC) 신학, 여성신학, 생태신학 등이, 한국에서는 ‘민중 신학’, ‘희년 신학’ 등이 신학적 담론으로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신학에서부터 ‘희년 신학’에 이르기까지의 진보신학적 담론들은 모든 담론들이 그렇듯이 시대적 소임을 다했고, 급변하는 시대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신학적 상상력에서도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경제세계화와 양극화, 종교간 갈등과 지역분쟁의 심화 등 상호밀접하게 연관된 세계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그 해결을 위한 대안의 제시와 실천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탐욕에 기초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하는 새로운 선교신학적 담론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데 ‘공공성 신학’(Theologie der Oeffentlichkeit) 담론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신학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열정으로부터 생성하며, 이 열정은 그리스도와의 친교에서 생성’하며, ‘이 열정 속에서 신학은 세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세계에 대한 환상’(Phantasie)이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필연적으로 선교신학, ‘공적 신학’(Public Theology)이 된다고 말합니다. 몰트만에 따르면 ‘공적 신학’은 ‘이 시대의 고난에 참여하며, 동시대인들이 실존하는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을 향한 희망을 나타내고...... 비판적으로 또 예언자적으로 사회의 공적 문제에 개입’하는 과제를 가지는데, 하나님 나라의 신학으로서의 공적 신학은 그러므로 ‘근본주의적으로 자신의 신앙공동체 속으로 퇴각하지도 않고, 현대주의적으로 사회의 경향에 편승하지도 않으며, 저항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땅 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다’고 합니다.4)

몰트만에게 ‘공적 신학’이란 ‘하나님 나라의 신학’에 다름 아닙니다. 공적 신학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시대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는 신학’, ‘비판적이고 예언자적으로 사회의 공적 문제에 개입하게 하는 신학’, ‘모든 피조물의 생명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신학’으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잘 알려진 대표적인 공공신학의 대변인은 프린스톤 신학대학원 은퇴교수인 맥스 스택하우스(Max L. Stackhouse)인데, 그 역시 ‘Public Theology’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한국어로는 ‘공공신학’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스택하우스는 ‘공공신학’이란 개념을 미국에서 최초로 사용한 신학자로 마틴 마티(Martin Marty)를 제시하는데, 마틴 마티는 사적인 영역으로 퇴거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시민종교’로 규정하고, 그에 대립하기 위해 ‘공적 신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5) 공공신학이 미국이라는 특수한 콘텍스트에서 발전된 개념이라고 보는 스택하우스는 공공신학이 ‘거대한 근대화의 물결이 초래한 세속화의 관념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무기력해졌던 신학적 전통에 활력을 되찾아 주었다’고 말합니다.6)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공공적 지식인으로서 사회정의를 다루기 위한 신학적 근거’ 마련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공공성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1987년 창립, 이하 기윤실)이 창립 20주년을 기해서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신학적 토대를 정립하려는’ 의도에서 2007년부터 전문가 집담회 형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전문가 집담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종합하면, 기윤실이 이해하는 ‘공공신학’은 아프카니스탄 한국인 단기 선교팀 피랍사건 후 더욱 분명해진 한국 개신교의 게토화를 극복하고 세상과 소통하면서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신학적 담론으로 구상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담아내는 신학적 담론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굳이 새로운 담론을 모색하려는 것은 기독교 시민사회론과의 관계 때문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선교’나 ‘민중신학’ 보다는 ‘공공신학’이라는 담론이 시민사회 안에 있는 교회의 공공성을 이끌어내는데 덜 과격하게 받아드려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부에서도 ‘공공신학’이 기독교 시민사회론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되었습니다.

비슷한 성격의 복음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새세대 교회윤리연구소’는 ‘공공신학이란 무엇인가?’와 ‘공공신학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7)를 발간하였습니다. ‘새세대 교회윤리연구소’ 문시영 소장에 의하면, 이들의 공공신학 형성 배경에는 시민사회의 ‘교회비판’과 교회의 이른바 ‘은혜윤리’ 사이의 갈등이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교회를 비난하고 정죄하지만 말고, 교회 스스로 자신의 공공성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판 외에 또 다른 길을 시민사회가 어떻게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그는 시민사회 측으로부터 제기되는 교회의 공공성 세우기의 내용을 몇 가지 제시했는데, ‘목회자 납세문제’, ‘교회와 지역사회의 주차갈등’, ‘저작권 문제’, ‘교회 재정투명성 문제’ 등이었습니다.8) 기고자들 가운데는 세계화 문제, 기독교경제윤리 등 거대담론에서 접근하는 학자도 있지만, 목회자 납세문제 등 미시담론, 개인 윤리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학자도 있었습니다.

‘공적 신학’, ‘공공신학’, 혹은 ‘공공성 신학’ 등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신학의 내용과 방향이 여전히 큰 틀에서 신학적 입장 차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복음주의권에서 주장하는 ‘공적 신학’, ‘공공신학’은 복음주의 내부 진영 안에서 어느 정도 상대적 진보성을 갖춘 담론이라고 판단됩니다. 에큐메니칼 진영에게 ‘공공신학’은 사회참여신학의 전통에서 다양한 담론으로 이미 구체화되었기 때문에, 크게 새로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3. 공공성 회복이 한국교회 위기극복의 길인가?

한국교회 위기 극복, 특히 공공성 회복의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먼저 교역자들의 공인 의식이 강화되고,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어야 하겠지요. 이를 위해 이른바 ‘공공성 신학’이 그리스도인의 개인 윤리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자기 개혁의 제도화, 교회의 사회적 책임성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대안을 신학적으로 모색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다보스 포럼은 어쩌면 우리 시대, 첨단의 과제를 정리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지구적 차원의 대응을 모색하는 최고수준의 자리일 것입니다. 지난 2015년에 열린 제45회 다보스 포럼의 주제는 ‘새로운 세계 상황, 세계가 직면한 새로운 난제’였습니다.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이 모여 논의한 세계의 현안들은 ‘깊어지는 소득 불균형’, ‘고용 없는 성장 지속’, ‘리더십 부족’, ‘지정학적 갈등 고조’, ‘정부에 대한 불신’, ‘개도국의 환경오염’, ‘이상기후현상’, ‘국가주의 강화’, ‘물 부족’, ‘세계건강’(에볼라 등) 이었습니다.9) 다보스가 선정한 세상을 바꿀 29가지 구조적 이슈도 발표되었는데, 종교, 민족주의적 급진주의의 급증, 기후변화논쟁, 지구촌 고령화 시대 소비패턴의 진화, 다극 분권화된 세계질서를 반영하는 국제기구의 필요성,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 물 부족, 삶의 질이 도전받는 메가 시티,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자급자족 시대, 사물 인터넷, 고용 없는 사회 등이 그것이었습니다.10)

시대 변화 속도는 스마트폰 기종 변화 주기와 같다는 말이 있었습니다만, 이제 이 말도 옛 말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변화의 속도만이 아니라, 변화의 규모 및 질적 내용도 한 해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통신기술의 혁명적 발전에 힘입은 SNS는 지구촌을 실시간으로 넷트워킹하고 있고,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교육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깊고 넓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인류는 온라인에서 모두 연결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한 것입니다.

또한 역사상 최초로 인간은 지구 자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문명의 능력과 규모를 확보했습니다. 지구 자체를 여러 차례 파괴할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는 물론, 수많은 핵발전소를 보유하게 되었고, 생태계 파괴와 환경재난은 지구 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종말 가능성은 더 이상 광신적 종말론자들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일본 동북부 지역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에볼라 바이러스 등은 인류종말의 가능성이 현실로 가까이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화석연료의 고갈, 식량위기, 물 부족, 신자유주의적 빈부 양극화는 인류가 사고와 세계관에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구적 과제 외에도 우리는 분단현실이라는 민족적 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로서 감당해야 할 공적 책임이 훨씬 더 복잡하고, 중층적인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자신이 문제가 된 한국교회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민족과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책임적으로 해결해 갈 때, 신앙의 공공성은 물론, 교회의 공공성도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주

1) 샐리 맥페이그, 풍성한 생명: 지구의 위기 앞에 다시 생각하는 신학과 경제, 장윤재, 장양미 역,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8, 225 참조.

2) 슐라이어마허는 그의 저서 ‘종교론’(1799)에서 종교의 본질을 ‘직관과 감정’으로 규정하였고, ‘기독교신앙’(1821/22)에서는 ‘절대의존감정’으로 구체화하였다. 슐라이어마허, 종교론: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 최신한 역, 한들, 1997; 슐라이어마허, 기독교신앙, 최신한 역, 한길사, 2006. 참조.

3) 샐리 맥페이그, 같은 책, 341 참조.

4) 위르겐 몰트만, 신학의 방법과 형식: 나의 신학여정, 김균진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1, 17.

5) 새세대교회윤리연구소 편, 공공신학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북코리아, 2008, 16.

6) 같은 책, 21-22.

7) 새세대 교회윤리연구소 편, 공공신학,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북코리아, 2008.

8) 같은 책, 9 참조.

9) 한겨레신문, 2015년 1월 16일.

10) 중앙일보, 2015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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