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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쇠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목사(do-nothing pastor)세계기독교회 속의 한국교회의 성장전략 (02) (03)

세계기독교회 속의 한국교회의 성장전략 (02) (03)

 

교회성장에의 접근

장바울(Paul Jang) 목사(미주총신대학교 교수) 이글은 미주총신대학교 장바울 교수(Rev./Dr. Paul B. Jang)가 “세계기독교회 속의 한국교회의 성장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코닷 목회방에 연재하고 있는 글이다. 미국에서 30년 이상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장 교수는 고신대학교에서 1년 수학한 인연으로 고신교회와 코닷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교회성장의 원리와 전략분석에 따라 교회성장을 위한 계획(a plan for the church growth)이 수립되는 것이 합리적이며 효과적이다. 우선 교회성장을 위한 계획은 성서적, 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그 개념과 운동들을 탐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목회자는 성서적, 신학적 방법에 기초하여 교회성장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테일러(Richard S. Taylor)는 “신학적인 기초가 없는 ‘교회성장’이란 교회성장이 아니요 다른 어떤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거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건전한 교회성장에 관하여 언급하는 뜻이라 하겠다.

교회성장의 개념

“교회”(church)라는 용어는 본래 고어의 어근인 “qal” 또는 “kal”에서 유래된 “qahal” 또는 “kahal”이라고 하는데, 의미는 “부르다”(to call)는 뜻이다. 구약 성경에, “ya'adh”에서 유래된 “'edhah”로서 “지정하다”(to appoint) 또는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다 혹은 함께 가다”(to meet or come together at an appointed place)의 뜻이고, 신약에, “ἐκ”(out)와 “καλέω”(to call)의 합성인 “불러내다”(to call out)의 뜻인 “ἐκκλησία”와, “συν”(with)과 그리고 “ἄγω”(to gather)의 합성어인 “와서 함께 모이다”(to come and bring together)의 뜻인 “συναγωγή” 즉 congregation라는 뜻의 말이 있다. 박형룡 박사 역시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불리움을 받아서 함께 모인 공회 혹은 회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교회”의 개념은 이와 같은 어원학적인 근거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교회”란 하나님께 소속된 집합체(company)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敎會)란 바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company who belong to God)의 모임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라고 할 수 있다. 이 용어에 함축된 의미(connotation)는 영적인 모임, 즉 신령교회(神靈敎會) 또는 무형교회(無形敎會)의 뉴앙스(nuance)가 있다. 또 하나는 회중(congregation)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교회 공동체(church community)로 유형교회(有形敎會), 혹은 조직교회(組織敎會)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해석들에 비추어 볼 때, “교회”라는 용어는 “성장”(growth of church)이라는 말과 밀접하게 연계되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말이 “불러서 함께 모인다”(to call and come together)는 의미로 “성장” 즉 전도해서 교회라는 한 장소에 많이 모이게 한다는 뜻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교회성장이란 첫째로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한 대리기관(an agency)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로 불러 모으는 것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기독교 전통(Christian tradition)에서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그 관계성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가현 적 기관으로서의 교회(church)와 동일시하고 있다.

물론, 교회성장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신다. 교회의 양적 성장(quantitative growth)은 단순한 전도사역(evangelism)들을 통하여 이룰 수도 있지만, 교회의 질적 성장(qualitative growth) 혹은 교인들의 영적 성장(spiritual maturity)은 교회 활동에 참여함(involvement in church activities)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수적 증가(increase in number), 혹은 양적 성장은 전도활동(evangelism)을 통하여 달성할 수 있지만, 교인들의 질적 성장 혹은 영적 성숙은 계속적인 목회사역(continuing ministry)을 통해서 달성하게 된다.티페트(A. R. Tippett)는, 교회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성장이란 사람의 육체성장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나무의 성장에도 비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이란 어떠한 사건(event)나 영적인 부가물(spiritual addition)을 취급하는 것도 아니요, 세상에서 기독교의 결신자들과 교회들을 창출해 내는 영적인 재창조(spiritual reproduction)와 그 과정을 의미한다. 교회성장은 인간의 개선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반대로 죄인을 새로운 피조물(new creature)인 속죄 받은 인간(redeemed man)으로 중생시키고(born again), 이 구속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거룩한 모임(assembly of God)인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도(evangelism) 뿐만 아니라 결신자들(converts)을 위한 목회관리(pastoral care)까지 계획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교회는 양적(quantitatively)으로나 질적(qualitatively)으로 달성(達成)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성장운동의 역사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교회성장”이라는 용어(用語)는 1955년에 교회성장운동(The Church Growth Movement) 기관을 설립했던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의 교회성장 이론(McGavranism)에서 유래되었다. 그때부터 교회성장의 원리가 전 세계에 있는 교회들에게 적극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교회성장 학파는 훌러신학교를 본거지로 하고 있는 도날드 에이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 랠프 윈터 (Ralph Winter), 아더 그라슬러(Arthur Glassler), 찰스 크래프트 (Charles Kraft), 알렌 티페트(Allen Tippett), 그리고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와 윈안(Win Arn), 존 윔버(John Wimber)로 형성되어 온 파사디나 학파(Pasadena gang)와 켄트 헌터(Kent R. Hunter), 엘머 타운즈(Elmer Towns), 찰스 채니(Charles Chaney), 론 루이스(Ron Lewis)등과 같은 아웃사이드 학파들(outside school)이 있다. 특히 맥가브란의 명맥을 이어 현재 피터 와그너 (Peter C. Wagner)가 주도했던 파사디나 학파(Pasadena gang)가 교회성장학을 주도하고 있다.

교회성장운동 초기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의 내용으로 된 전도요소들이 강조되었지만, 그것은 제자훈련을 포함하여 전적인 교회참여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교회성장학의 권위자이며 맥가브란의 제자이기도한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성장은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교회 멤버가 되게 하기 위하여 데려오는 일에 포함된 모든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불신자가 교회 멤버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전도해서 교회 멤버가 되도록 만들었을 때에, 이것을 양적 성장(quantitative growth)이라고 하고, 교회로 인도해서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자라게 하는 것을 질적 성장(qualitative growth)이라고 한다. 성경에 보면,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엡 4:13-14)

성서역사나 교회역사로 볼 때에, 교회성장은 많은 경우에 제자훈련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기초를 놓으신 후에, 사도들과 그 후속 교회들이 부단히 이 방법을 사용하여 왔다. 사실,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몇몇 목사들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도입, 실행되어 한국교회 성장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이미 1900년대 초에서부터 교회성장을 위하여 제자훈련의 방법을 연구하고 적용했다. 제자훈련을 통한 교회성장은 신적인 면과 인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주요한 성경적 개념들(key biblical concepts: 마 18:19-20; 행 6:1,7; 엡 4:15)과 비유적 표현들(imageries: 마 13:33; 5:16; 고후 4:6; 행 26:18; 요 4:35; 마 13:31-48; 요 15:5, 8; 엡 2:21, 22 etc.), 그리고 시세모어(John T. Sisemore)의 주장과 같이 지속적인 교회성장을 도출해내는 제자훈련의 원동력 등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성장에 있어서 신적인 면(divine aspect)은, “가서 복음을 전하여(evangelizing: preaching the Gospel)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making disciples)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에 해당하는 것이고, 인적인 면(human aspect)은 전도, 교회교육, 제자훈련 등과 같은 교회성장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라는데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교회성장의 요소는 인적인 면과 신적인 면이 있다.

기독교 안에서 교회성장을 위한 수많은 운동들이 일어났는데, 크게 나누어 교회운동(church movement)과 파라처치 운동(para-church movement)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교회 안의 운동이라면, 후자는 교회 밖의 운동을 말한다. 교회 안의 운동으로서는 구역회 활동(home cell group activity), 부흥회(revival meeting)와 특히 한국에서 사경회라고 불리는 성경강론회 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교회 밖의 운동으로는 주로 전도대회와 선교운동으로 외국의 빌리그래햄 전도회를 비롯하여 대학생 선교회(CCC), 기독대학생 친교회(IVCF), 네비게토(Nevigators), 대학생 성경연구회(UBF), 학생 성경연구회(SBH), 조이 선교회(Joy Mission), 기독청년회(YFC)등이 이에 속한다. 그 외에도 기도원 운동이나, 요즈음에 카톨릭 교회에서 도입된 드레스 디아스(Tres Dias), 잘못되긴 했지만 레마선교회등도 파라처치 운동에 속한다.

근래에 와서, 새로운 종류의 평신도운동이 한국의 지역 교회에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역 교회 목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제자훈련이다. 물론 이 운동은 한국에서 교회성장에 상당히 기여하는 바가 있어서 몇몇의 개척교회들이 대형교회로 성장한 사례가 있다.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제자훈련을 일찍 도입하여 시도해서 제자훈련을 통한 교회성장의 모델케이스가 된 서울 사랑의교회 당회장 옥한흠 목사는 평신도를 재발견하여 제자훈련을 시키는 일은 어떤 선교단체나 국제기구에 떠맡길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역교회의 목회자들이 짊어져야 할 시대적 소명이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그의 저서 󰡔평신도를 깨운다󰡕에서 역설했다.

사실, 교회성장을 위하여 전 세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제자훈련 사역은 교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사역이다. 피터 와그너는 교회성장은 목사가 교회의 평신도들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느냐에 많이 달려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성장하는 교회의 목사들은, 그들의 교회가 크건 작건 상관없이, 평신도들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해주고(motivate), 그들로 하여금 활동적(active)이고 생산적(productive)인 사람들이 되도록 하는 구조(構造)들을 어떻게 창출(創出)하며, 그들로 하여금 의미 있는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길로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성장의 중요성

교회성장(church growth)이란 하나님에게나 인간에게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교회성장이란 어떠한 의미에서, 인간 구원의 방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에 있는 교회의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확장은 교회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궁극적인 의미로 볼 때, 지상 교회(earthly church)의 확장이란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교회성장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지상명령

하나님은 잃은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계신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겔 34:16; 눅 15:4;).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또한 교회성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내려 주신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다(마 28:19-20; 행 1:8-9). 더욱이 교회성장은 성령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성장은 성령과 더불어,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피터 와그너는 그의 저서 영적인 능력과 교회성장(Spiritual Power and Church Growth)이라는 저서에서 “제일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오순절 교회성장의 근본 요인은 성령의 능력이다”(행 2:37-47)라고 지적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취로 완성된 구속을 인간에게 적용시키시는 성령께서 실제로 인간에게 교회성장을 위하여 동기를 부여해주시고 실행할 능력까지 주신다. 교회성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다.

교회성장의 중요한 이슈

교회성장에 있어서 중대한 이슈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가 성장하느냐 아니면 죽느냐 하는 문제이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가든 그로브에 있는, 교회성장의 모델케이스로 이름 있는 수정교회(The Crystal Cathedral)의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 목사는 교회성장에 대하여 “성장이 없는 곳에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where there is no growing, there is dying)라고 말했다. 교회란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organic vitality)와 같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면 죽게 된다. 성장은 생명의 고유속성이다. 생명체가 성장을 중단하면,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의 성장이 중단되면 쇠퇴하게 된다.

벨리우(Wendel M. Belew)는 왜 어떤 교회는 성장하고 다른 교회는 쇠퇴하는지 기이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병든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젠슨(Ron Jenson)과 스티븐스(Jim Stevens)는 건강한 교회의 비결은 평신도들을 교회성장을 위한 목회사역에 참여시키는데 있다고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평신도들을 목회사역에 직접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평신도들을 참여시키지 않는 것이 심각한 병폐이다. 그것은 교회의 중요한 기관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병폐가 된다.” 사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방대한 목회사역에 있어서 교회의 무거운 짐을 목회자 혼자서 진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바르나(George Barna)는 “교회들이 문제에 대응하여 기회를 따라 행해야 할 때에, 왜 마비상태가 되는지에 대한 두 가지 중대한 이유—즉 첫째 목사와 둘째 평신도 사역의 실패—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하면, 첫째로, 목사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 목회사역에 있어서 지도적 위치에 서도록 허용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는 전근대적 목회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교인들을 증가시키고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쉽을 개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평신도들이 교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방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평신도들이 목회사역(pastoral ministry)에 감동되지 못하고 교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래트니(Pratney, Winkie)는 “당신은 주 예수께 중요한 존재임을 알라!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곧 당신이 군중들 가운데 결코 잃어버린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라고 외쳤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목회사역에 증인과 사역자로 불림을 받은 것이다. 평신도들도 그들이 이미 그들이 처해 있는 지역사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교사들임을 인식해야 한다. 벤네트(Thomas R. Bennett)는 그의 “평신도 프로젝트”(Project Laity)에서 평신도 목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피터 와그너는 성장하는 교회의 첫째로 중요한 표지(the first vital sign)는 교회를 성장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자기의 은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목사요, 둘째의 표지는 잘 동원되는 평신도(well-mobilized laity)들이라고 말했다. 교회성장은 첫째로 목사의 훌륭한 리더십과, 둘째로 잘 훈련된 평신도들의 활동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훌륭한 목사의 리더십과 잘 훈련된 평신도들의 활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교회를 이끌어 나갈 때에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다. 손봉호 박사는, 교회성장은 그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평신도들의 다양한 봉사활동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아가르(Frederick A. Agar)는 유능한 교회는 훌륭한 목사의 리더쉽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절하게 개발되고 잘 훈련된 평신도의 리더쉽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하여 로빈손(Darrell W. Robinson)은 “목사와 평신도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한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을 지었다. 사실, 교회의 성장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절묘한 조화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달성된다.

그러면 다음으로 문제는 무엇인가? 강겔(Kenneth Gangel)은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봉사하는데 있어서, 평신도를 이용하는데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봉사하는데 있어서, 평신도를 이용하는데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 오용(misuse)과 불용(disuse) 그리고 남용(abuse)에 직면하게 된다. 오용이란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교사들이나 일군들을 고용하는데 대한 언급이요, 불용이란 교회 좌석을 메운—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많은 교인들에 대한 언급이며, 남용이란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은 사람에게 짐을 지워 고용하는데서 오는 문제에 대한 언급이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교회의 또 다른 문제는 평신도 개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화물열차로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목사는 견인역할을 하는 기관차(engine)요 평신도는 화물을 운송하는 화차(freight train)이며, 프로그램은 이 화물열차가 진행하는 궤도(rail road)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분명한 비젼(clear-cut vision)을 가지고, 정해진 목표(the goal set)를 향해 교회를 이끌어 가야하고, 평신도는 목사의 목회 사역에 적극 참여해야 하며, 이러한 사역(activity)에는 반드시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그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교회성장의 근본문제는 (1)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목사(do-nothing pastor), (2)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 평신도(uninvolved laity), (3) 프로그램의 결여(no programs)등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반대로 이 세 가지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여 교회를 활성화시킨다면 교회는 되살아나며 틀림없이 성장하게 될 것이다.

- 계속 -

Rev.Dr./ Paul B. Jang

Paul Jang  revpaulj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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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종수 2018-08-07 10:25:58

    개혁주의신학으로 교회의 부흥을 위할 때 사실상 선교학적 측면에서 대안적인 가르침이 많이 부재합니다. 선교학, 교육학에 대한 교수도 부재였고 특히 고신은 선교지에 대한 문화이해 등은 전** 교수에 대해 오해를 산적?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은 범위에서 어떻게 하면 참다운 교회 부흥을 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중대한 신학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이미 부흥주의로 휘감겨 있는 와그너식의 교회부흥 대안은 아니라 여깁니다. 그럴려면 조용기에게 배워도 무관하단 말이 됩니다. 고민입니다   삭제

    • 김대진 2018-08-06 14:56:43

      참고로 장바울 교수는 미주총신대 조직신학교수입니다. 실천신학교수가 아닙니다. 소위 이론 신학 교수이지만 현장의 문제를 신학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글쓰기를 하십니다. 저는 이런 모습이 바로 진정한 신학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삭제

      • 김대진 2018-08-06 14:52:27

        강 목사님 말씀대로 와그너와 같은 분들의 문제로 '교회성장'이라는 말 자체가 터부시 되는 분위기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글의 제목 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목회자의 무기력함을 취재 현장에서 봅니다. 이런 프락시스의 문제들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바울 교수가 이 문제에 대해서 입을 여셨습니다. 뜨거운 토론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삭제

        • PAUL 2018-08-06 12:48:39

          1970/80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교회들이 교회성장을 갈망하였으나, 언제 부터인가 “교회성장”이라는 말이 금기시 되다시피 된 것을 보고, 바로 이것이 세속화현상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피터 와그너와 같은 어느 특정인의 프레임에 갇혀있고, 어떠한 도그마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읽게 되면 무익한 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분적인 내용보다는 시야를 넓혀 전체를 교회성장에 관한 성서적, 실천신학적, 특히 교회성장학적인 차원에서 주의 깊게 살피면서 자신에게 유익하도록 취사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삭제

          • PAUL 2018-08-06 12:40:16

            연재하고 있는 교회성장학의 글은 교회성장학과 신학을 비롯하여 기타 일반학문의 방대한 자료들을 참고해서, 세계교회 성장운동을 전체적으로(overall process) 리서치 하고 조명하여 그 장단점과 공과를 평가해서 독자들의 교회성장에 유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집필한 내용입니다. 더구나 순간마다 개혁신학적인 입장에서 평가하기도 했으며, 특히 선교현장과 목회현장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교회성장을 위한 수많은 전략들을 소개하면서, 이 전략들이 성서적인 원리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피력하게 될 것입니다.   삭제

            • 강종수 2018-08-06 08:37:16

              피터 와그너와 존 윔버(빈야드운동) 등의 교회성장학은 개혁주의 신학에서 불건전하다고 비판되고 있으며 카톨릭과 간격없이 수용된 알파코스와 신사도운동까지 부흥을 위해서 - 부흥주의로 무차별된 방법론이 편재한 성장학이 본질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교회성장학인지 두 번째에서 바로 드러나는 부흥주의 성장학의 논문을 더 이상 읽을 이유를 잃었습니다. 참된 교회 본질적 성장학이 뭔지 배우려 했으나 실망입니다. 피터 와그너의 성장학을 고신에서 배워야 합니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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