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끝자락에서

고독의 끝자락에서

박영수 목사(덕암교회 담임)

1982년 고신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청년부에 계시던 누님 한분이 사모가 되어 시골교회로 가셨습니다. 부산시내에서 살다가 하루에 버스 몇 대 겨우 다니는 그런 시골에 내동댕이쳐진 그런 현실 속에서 청년부 회지에 보낸 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 버스가 지나가면 눈물이 납니다. 그냥 눈물이 납니다.”

외롭고 고독한 그 자리, 아무도 찾지 않는 농어촌 교회의 그 자리 속에서의 고독이 감정이입이 되어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993년 1월, 의령 덕암교회를 온 이후 지난 저의 시간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제 아내의 고독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이 4명을 키우며 10여년의 세월을 그렇게 고독 가운데 지냈습니다.

어제 개회 예배 때 박근주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납니다.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의 고독을 생각해봅니다. 정처없이 떠났던 그 광야길,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은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난 것 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세상을 떠날 때 그의 몸에서 난 자녀는 단 두 명, 이삭과 이스마엘이었습니다. 그나마 이스마엘은 종의 몸에서 난 자식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너무나 머나먼 미래,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입니다. 그는 그날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이곳 농촌에서 26년째 살고 있습니다. 2012년 시에라리온 선교사 사택 건축을 위해 갔던 때를 기점으로 농어촌 교회를 개보수 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한 달에 근 20여일 이상을 개보수를 위해 떠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일하러 찾아가는 교회는 그런 ‘고독한’ 목회자가 있는 농어촌 교회들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설교는 하기 쉽지만 삶으로 살아내기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당시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가라’고 하셨기에 갔고,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현실은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지금 나의 삶의 주변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농촌의 인구는 더욱 줄어만 갈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우리가 볼 수 없을 지라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축복의 그날을, 우리의 믿음의 열매를 추수하는 이들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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