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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학원 역대 이사장 역임자 代數 조정, 4인을 다시 추가하다
김 영 수 장로(고신대학교 前사무처장)

2004년 4월 1일은 고려학원에 임시이사가 파견된 날이다. 이로부터 4년 이후 2007년 4월 17일 정이사 선임 허가를 받았다. 어언간 정상화 된지도 11년의 세월을 보냈다.

금년은 전국 187개 대학의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 명단’ 120개교 안에 진입하는 쾌거를 갖게 되었다. 고신대학교가 정상화되고 나날이 반전할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고신대학과 고려신학대학원, 부속 복음병원에는 새로 선임된 기관장들께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반갑게 들려온다.

역사학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초를 근거로 관선 체제 기간(2003년 4월 1일~2007년 4월 16일) 전후 학원내의 사정들을 잘 정리해 두면, 고려학원 역사의 단면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역사 정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상당한 의지와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분석적 사고 능력과 약간의 식견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인식과 같은 필요성을 절감할 때에, 우리역사의 명암(밝고 어두운 면)이 기록으로 남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에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잃어버린 4년을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1.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이사장 황만선 목사)의 깊은 이해와 배려로, 역대 이사장 역임자 명단의 오류 부분을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사장 역임자 대수(代數)를 수정하여, 역사 연표를 재정립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이사장 황만선 목사)는 2018년 8월 07일자로, 이우준 장로(제26대 이사장, 국제기드온 협회 사무총장), 윤강석 장로(고려학원 법인 前사무국장), 김영수 장로(고신대학교 前사무처장) 3인이 청원한 ‘고려학원 역대 이사장 명단 수정 건’을 청원한 대로 수정하기로 하였음을 통보하였다. 이는 이사장 역임자 대수(代數)를 정상적으로 수정해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긍정적인 회신 공문으로서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고려학원이 관할청으로부터 관선이사(임시이사체제)가 파견된 것은 2003년 4월 1일자로 임시이사가 선임되었다. 첫 이사회가 4월 11일에 열렸다.

이로부터 4년 후 정이사체제로의 복귀 선임 허가는 2007년 4월 17일자로 선임허가가 났다. 첫 이사회가 2007년 5월 1일 열렸다.

첫 이사회는 관할청의 모 사무관이 입회한 가운데 당시 총회장도 참석하였다. 제56-2회 제2차 임시이사회 회의록(이사회 소집 - 2007. 4. 20) 중에서 이사회 안건이나 결의사항을 살펴보면, 이사장 역임자 대수(代數) 조정문제를 논의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관련하여 결의한 바도 없었다.

문제는 당시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분의 의지에 따라, 취임식 순서를 인쇄하기 위해 편집하는 과정에서, 임의로 4년 전 정이사체제의 연장선상에서 이사장 역임자 대수(代數)를 산입하게 된 데에서부터 오류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는 당시 이사장의 본의와는 달리 고려학원 역사 4년을 누락시키게 된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고려학원 역사가 68년이라고 할 때, 개교 제72주년을 맞는 고려신학교 설립 역사와 학교법인 고려학원 역사 4년은 완전히 누락시키게 됨으로 써, 그 후유증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던 중 고려학원 이사회가 이를 수용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여기에는 제26대 고려학원 이사장 이우준 장로의 강한 질책이 있었다. 이제 잃어버린 4년의 역사에 대한 명암(light and darkness)을 역사에 남겨 두기 위해 고려학원 현대사를 정상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관선이 오게 된 원인 규명과 관선기간 동안의 역사들과 관선 이후의 정치적 관행 등도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샘이다.

남은 과제들은 관선 기간 동안에 선임된 총장, 병원장의 경영 전반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사회 회의록을 열람해 보면, 기억을 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충분한 연구과제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확신한다.

 

2. 다음과 같은 자료들을 확인하고 다시 점검해 보면, 그런 기록들은 고려학원 역사에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거울을 보면 티가 뭇은 얼굴을 다듬을 수 있다. 기억은 부정확하지만 기록은 정확하다.

필자는 관선이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가 연간 수천억 규모의 불법어음발행을 중단시킨 것이라고 여긴다. 어음 발행인은 병원행정처장 이고, 법적인 모든 책임은 법인이사장이 지도록 올가미를 씌운 제도였다. 병원장은 중간에 낀 분으로서 재무제표와 수치를 잘 읽지 못함으로 눈치를 보고 결재를 한다. 사실은 책임도 없으나 형식이었다.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인가? 정직하게 하고 있는가를 의심하면서 날인을 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관할청 감사 당시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잘 마무리를 짓도록 하였다. 강규찬 목사가 이사장이 되고 난후에 가계 배경이 있는 모 교수가 의학과 학과장으로 임명되어 go on 했다. 그리고 1년이 체 되기도 전에 관선시대가 찾아왔다. 그분은 관선이 오고 나서, 출신학교 덕분으로 호기를 잡았다. 관선이 도입한 총장 공개채용 형식은 인본주의적 방법으로서 학연에 치우쳤다는 결과물이 나왔다. 그 유명한 신조어 ‘점령군 행세’를 하다가 너무 쉽게 힘없이 물러났다. 고신대학교는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대학으로 써, 신앙인격을 갖춘 여호와 하나님 신의 감동이 있는 자라야 영적 감화력을 가지고 교직원을 통할 할 수가 있다. 학사 전반에 대해서는 무지했었는데 주변에는 비슷한 자들이 엄청 몰려들어 떼를 이루고 바글바글 했다.

지금까지도 연장선상에서 총장 공개채용 형식을 갖는다는 것은 관선의 폐해를 답습하는 것으로 써 재검토가 필요하다. 총장선임 방안으로는 총회와 연관시켜서 이사회가 선임하는 방안을 보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과제는 자료 확인을 통해 상당한 연구의 진척이 있었으면 좋겠다.

∘관선을 재촉케 한 원인은 인위적이었는가? 전초 현상과 진동음은 요란했다.

∘교수 집단들은 왜 병원을 다른 곳에 팔아넘기려고 안간힘을 썼는가?

∘교단이 모금한 금액 전반의 정리는 꼭 필요하다. 공헌 자와 교회에는 감사패라도 드려야한다.

∘관선의 주요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무엇일가?(이사회, 강성 기관장들, 교직원들)

∘경영 상태는 정말 부도가 날 수 밖에 없었던가?

∘당시 두 분의 총회장 역할은 막중했었다.

∘노동조합의 역할과 큰 부담은 무엇인가? 대학의 교비는 교육법상으로 압류할 수 없는데도 대 부분의 임상교수들은 동참했었다.

∘모 기관장이 관선이사장과 의논하여, 교비 10억원을 부속병원 회계로 전입하려했는데, 교육인적자 원부에 보고 하겠다고 했더니 이사장이 중단시켰다.

∘파업에서 얻은 이득은 무엇인가?

∘당시 대학과 병원의 주요정책 점검과 확인이 필요하다.

∘당시의 기관별 재정경영 내용 분석은 꼭 필요하다. 제2금융권 차입이 많았던 점

∘요란스러웠던 고가장비구입은 어떻게 되었는가?

∘불법 부당한 인사가 없었는가? 그 폐해가 무엇인가?

∘기관장들의 부당노동행위는 없었는가?(불법적인 정책 추진이나 인사 등에서)

∘기관장(총장, 병원장)선임 및 해임과정의 정당성 여부와 문제점 분석이 필요하다.

∘잣은 관선 이사장 교체 사유가 무엇 때문인가?

∘관선체제를 해제시킨 단초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구성원들 특히 기관장들까지도 관선체제의 연장을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윤강석 전임 법인국장은 고려학원을 지킨 유일한 분이다. 그의 공적은 묻혀 사장(死藏)되고 있다.

∘이후에도 정치적 상황은 달라졌는가?

▶수정한 고려학원 역대 이사장 역임자 명단 및 대수(代數)

 

3. 맺는 말

왜 올바른 역사 인식과 기술이 중요한가?

올바른 역사 인식과 정확한 기술이 필요한 까닭은 역사가 가장 유일한 ‘스승’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경험한 과거를 거울로 삼아 현재를 분석할 수가 있고, 진단하여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와 밑거름을 마련하게 되며,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삼을 수가 있다.

역사학도가 역사를 묻어버리거나(bury) 왜곡(distort)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보편적 인간의 양심까지도 속이는 일이다. 이런 경우 신(God)이 임재하시는 마음이 아주 복잡해진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History is as it is.’라는 말을 하였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사실(fact)과 일치해야 한다. 역사가 ‘신의 역사’라는 점을 부인하게 되면, 우주와 만물과 역사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Historian이 관점에 의한 견해를 기록하게 되면 자신의 입장, 시각, 견지로서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실(truth)을 기록하기보다 고등비평으로 전락하게 되어 불신앙에 줄을 대고 접근하게 된다.

왜 올바른 역사 인식과 회심이 필요한가?

역사를 인식하고 의식하게 되면, 행동반경이 조심스러워 진다.

자신의 행위가 진리에 부합하고 있는가? 정의로운가? 평화를 꿈꾸고 있는가? 믿음으로 하고 있는가? 구원의 역사를 거슬려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에 근거한 행위인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개인, 단체, 기관, 국가라도 역사적 교훈을 거울로 삼지 않고 불의한 일을 반복하게 된다면, 내리막길로 달려가다가 낭떠러지에 이르게 된다. 지도자는 지혜롭게(wisdom) 의롭게(justice) 공평하게(judgment) 정직하게(equity) 행해야 한다.(잠언 1:3). 이 교훈의 말씀은 나라 임금의 통치 방침이며, 모든 경영자와 관리자의 운영 지침이다.

총신대학교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 없는가?

근간 총신대학교에 임시이사가 파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심창섭 박희석 교수가 얼마나 시달렸는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거기는 정치꾼들이 가장 많이 설치는 곳으로 이름이 나있다. 거물정치인 길 씨와 김 씨가 대학교의 총장을 연달아 해보겠다는 심산은 상아탑을 명예욕이나 채우는 곳으로 착각하고 있는듯하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총신대학 이사회는 신앙공동체라기 보다는 부정적 이미지로 이름을 올린 집합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총신대 사건을 남의일로 귀 넘겨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 고려학원이 불신자들의 지배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고 아직도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는 전언들은 가슴을 출렁 내려앉게 하는 위급한 중병에 걸린 환자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해방이후 출옥성도들이 세웠던 초기 고려파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조용히 기도하기는커녕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꾼들은 이제 좀 자중해야 한다.

오종덕 목사가 교장으로 있었던 고려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한 나의 누나 김옥희(본명 김영옥)는 ‘목회자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과 같은 매사에 조심성 있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자신이 주류라고 말하는 자들은 본받을 만한 것이 없다. 영적이고 신령한, 사도적 신앙을 본받는 성경적 고신교회를 세워야 한다.

 

김영수  kys70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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