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신학자 고(故) 차영배 교수를 추모하면서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린도후서 3:18)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전 총신대 총장이요 기독교학술원 대표 심산 차영배께서 2018년 9월2일 주일 아침 조용히 쉬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너무 갑자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필자나 주변의 동료들은 매우 당황스러운 사태와 마음을 경험했다. 평소 지병이 없으시고 건강하셨고 큰 따님이 한의사인데도 권하는 약도 사양하실만큼 건강하셨는데 잠간 쉬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아침에 일어나셔서 부인과 함께 담소하시고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하시면서 잠간 쉬겠다고 안방에 들어가셔서 누우셨는데 10분 후에도 나오지 않으셨다. 부인께서 들어가셔서 “일어나 아침 식사하라”고 하니까 아무 대답이 없어서 “왜 장난하느냐”고 몸을 흔들어 보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놀라서 한림대병원 응급실에 가서 심폐소생술을 하려고 병원으로 모시고 갔으나 이미 별세하신 후였다고 한다.

차영배 교수께서 정통신학자로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조용히 쉬면서 자는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정말 행복한 삶의 마감이라고 느껴진다. 1986년 12월 8일 82세 향년으로 소천한 신정통신학자 바르트는 전날 강연 원고를 다 쓰시고 밤에 주무시는 가운데 소천했다. 그래서 그의 생의 마감은 은총의 신학자 다운 별세라는 덕담이 있다. 다음 문장은 바르트가 별세하기 전 날 밤 강연을 위하여 썼던 마지막 글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나님이다. 그들은 모두 그분을 바라보며 산다. 사도들로부터, 엊그제와 어제의 교부들에 이르기까지.“ 이와 비슷하게 차영배 교수는 밤에 충분한 잠을 주무시고 아침에 일어나 부인과 담소까지 하시다 잠자리에서 잠간 쉬시는 10분 사이에 삶을 마감하셨으니 정통신학자 다운 별세라는 덕담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틀 전 기독교학술원 영성학 수사과정에서 모집생 목회자들 면접을 하시면서 ”언제 성령 체험했느냐?“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은 내주하시는 성령과의 동행이다”고 큰 음성으로 강조하시던 모습이 새롭다. 이번 9월 첫 주 수요일 교회 설교. 기독교학술원 개강 설교, 포럼 설교 등 공적 스케쥴이 있으신 그분께서 잠간 쉬시는 가운데 홀연히 하늘나라에 가신 것이다. 그가 일평생 증거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은총 가운데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총의 품 안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질병 없이 고통 없이 사고로 인한 죽음이 아닌 가장 평안한 상태에서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감은 항상 낙천적이고 단순하고 정직하시고 성령을 사모한 신학자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총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 차영배 교수 (코닷자료실)

 

1. 소년 형무소에서 예수를 믿기로 결심

차영배는 왜정 시대 진주사범 들어간 수재였다. 왜정시대 사범학교는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는 곳으로 일제의 징용을 피할 수 있는 조선인의 피난처로서 수재들만 들어가는 곳이었다. 해방이 되자 그는 순수한 열정으로 “보도연맹” 좌파들의 선동에 휘말려 반미를 외치다 인천교도소에 소년 형무소에 1년 정도 수감되었다. 감옥에서 형목을 만나 예수를 만났다. 불교 믿는 형무소 관리로부터 얻어 맞다가 형무소에서 전도하던 목사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출소 후 고신파 교회에 나갔다. 그리고 한국해양대학교 조선학과 수학(修學)하고 고려신학교에 들어가서 박윤선 박사로부터 정통신학을 배웠다. 고려신학교를 졸업하고 계명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네덜란드로 유학가서 교의신학을 전공하여 캄펜신학대학원에서 6년 수학해서 신학박사과정필(Th.Drs.)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총신대 신대원에서 교수와 총장으로 19년간 봉직했고, 서울성경신학대학원 총장으로 4년간 봉직했다. 그리고 필자와 함께 1982년 기독교학술원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계시다가 1988년부터 기독교학술원 대표로 활동하였다.

 

2. 성령 사역을 증언한 하나님의 사람

차영배는 초창기 신앙시절인 1950년대 중반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불과 같은 성령이 구체적으로 임하는 데 몇 시간 동안이나 지속되는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난 후에 중생과 죄 사함의 체험이 아주 구체화 되었다고 증언하였다. 고인(故人)께서 정통신학자로서 한 평생 성령을 강조하신 것은 학문적인 사변에서가 아니라 이러한 초창기 신앙생활에서 받은 구체인 성령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필자가 20년 전 영월에 있는 기도원에 ‘학술원 초청 사경회로 차영배와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차영배는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30년 전 그에게 임재한 성령의 체험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는 잠간 입신상태에 들어갔다. 그가 다시 은혜를 체험하고 귀가 후 그 체험을 아들에게 간증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간증을 듣고 영적 방황에서 돌아와 그 동안 하던 사업을 접고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아들은 미국 칼빈대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부친을 이어 조직신학자가 된 것이다. 차영배께서 정통신학자로서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위와 아들이 그의 전공을 이어받는 조직신학자가 된 것이다. 큰 사위가 존경받는 총신대 조직신학자 은퇴교수인 최홍석 교수이고, 아들 차재승 교수는 미국에서 수학 후 화란으로 건너가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뉴저지에 있는 유수깊은 뉴브런스위크신대(Newbrunswick Theological Seminary) 조직신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3. 바빙크의 성령론 수용: 하나님의 계시의 지속성

고인 차영배는 바빙크 신학을 한국에 소개한 정통신학자로서 정통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성령론을 활성화하는 신학을 하고자 하였다. 그는 정통신학이 교리에 치중하여 등한시한 성령의 지속적 역사를 강조하면서 한국교회와 신학계에 성령론을 활성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신학자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성령 체험이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 임재 날자와 영적 변화 내용까지 간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가 기도원에서 체험한 성령 체험은 아주 구체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기독교학술원 영성학 수사과정에 지원한 목사생도들에게도 성령 체험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까지 물었다.

차영배는 “하나님은 자신을 지속적으로 계시하신다”는 바빙크의 성령론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자신을 지속적으로 계시하신다는 의미에서 성령 사역의 지속성을 주장하는 겻이다. 일부 정통주의자들이 거부하는 계시 종결 사상은 그리스도의 단회적 십자가 사역과 관련되어 있다고 해석하였다. 차영배는 십자가 사역의 유일회성을 거부하는 십자가 대속 사역 지속론을 거부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십자가 도는 다시 되풀이 될 수 없다”는 바빙크의 신학적 입장을 수용하였다. 신학의 객관적 원리는 자체 충족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다. 신학의 주관적 원리로서의 내면적 원리는 신앙이다. 성령의 충만은 신앙과 은혜를 받도록 하나 그것 자체가 원리가 될 수 없다. 내면적 원리는 객관적 원리인 쓰여진 말씀과 일치해야 한다.

차영배는 은사중지를 주장하는 카이퍼의 저수지 비유 성령론과 오순절파의 오순절 성령을 재현한다고 주장하는 오순절 성령론을 비판하였다. 카이퍼는 성령강림을 저수지 비유로 서술해서 합리적이고 지성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이미 오신 성령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카이퍼의 성령론은 성령 유출설인데 이는 유출과정에서 성령의 변질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카이퍼 및 정통주의 성령론은 성령이 오순절에서는 위로부터 폭포수같이 부어졌으나 예수님의 수세 시에는 성령 강림이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카이퍼 성령론은 성경이 증거하는 비둘기 같이 내려온 성령의 강림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차영배는 비판하였다. 차영배는 성령의 임재, 말하자면, 성령의 이동(移動)을 강조하였다: 성령은 예수께서 물에서 나오셔서 “기도하실 때 강림하신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성령의 이동을 의미한다.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인격적 임재였다.”

차영배에 의하면 오순절 사건은 교회를 세우는 원본(原本)적 사건이요 교회를 세우고 정경을 이루는 구속사적 사건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는 오순절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교회를 지속적으로 세우는 모사(模寫)적 사건이다. 오늘날 일어나는 성령의 사건은 오순절 사건의 반복이나 재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객관적인 역사적 구속사건(eventum historicum unicum remissionis)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주시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 사건이다.

오늘날 일어나는 성령 역사는 정경적 사건인 오순절 사건에 상응할게 될 때만 동질적인 성령의 역사라고 인정할 수 있다. 차영배의 이러한 성령론은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평양신학교가 수용하고 가르쳤던 가옥명(賈玉銘)의 성령론을 그대로 가르친 것이다. 가옥명은 남경신학교와 북지나신학교 구수로서 영세(靈洗, 성령세례)를 강조하였고, 성령의 은사 지속론을 가르쳤다.

 

4. 한국보수신학의 성령론은 차영배의 영향으로 성령의 지속적 사역 수용

차영배의 성령론에 영향을 받아서 박윤선 박사의 사도행전 주석도 은사 중단론에서 은사 지속론으로 바뀐 것이다. 1975년 이래 박윤선의 성령론에 서서히 변화가 온 것은 화란 캄펜에서 공부하고 온 차영배의 영향이었다. 박윤선은 사도행전 주석에서 그가 여태까지 인용하였던 카이퍼의 저수지 비유를 삭제하였다. 1980년 이후에 박윤선의 성령론에 확실히 변화가 왔다. 여기에는 성령의 지속적 사역을 용기있게 증언한 차영배의 조직신학적 통찰이 결정적이었다.

오순절에 성령이 단회적으로 임하였다면 사도행전 8장에 사마리아교인들에게 또 다시 성령이 임하였다는 표현은 의인론적 표현이 아니고 실재로 성령이 강림하였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윤선은 그후로부터 성령론은 차교수가 알아서 잘하라고 당부하였다. 평양신학교의 성령론이 전통적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하였다.

그리하여 보수신학의 전당인 총신대에 평양신학교의 은사지속론이 수용되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이는 남장로교 선교사인 조직신학자 이눌서(李訥瑞, William D. Reynolds, 1867-1951)와 캐나다 장로교 출신으로 할리팩스(Halifax) 장로교신학교 졸업자인 역사신학자 업아력(業雅力, Alexander Francis Robb, 1872-1935)에 의한 사도행전 성령 강림의 은사지속론 주석이 인정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5. 생전에 고후 3장 18절을 애송(愛誦)하시면서 강의하심

오순절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구약 율법의 수건을 벗게 되어 아들됨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 영의 내주로 인하여 우리는 주님을 수건(율법)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본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성령의 오심을 통해서 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된다. 첫째 영광은 성령으로 새 사람이 되는 영광이다. 둘째 영광이란 성화의 영광, 하나님 아들의 성품을 닮은 영광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주의 영인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만큼 차영배는 어떤 정통신학자들 보다 성령의 역사를 높혔고, 성령의 지속적인 역사를 강조하였다.

설립자의 뜻을 받들어서 기독교학술원은 성령을 높이는 학술활동을 앞으로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 차영배의 뜻이었다. 성령을 높이는 학술활동은 그분의 소천 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2017년 5월 기독교학술원은 여태까지 근 10년 동안 기도와 물질로 헌신적으로 봉사해 오신 반도중앙교회 담임목사 이영엽 이사장께서 건강이 극도로 쇠(衰)하셔서 자원하여 물러나셨다. 여호수아 같은 젊고. 개혁적이나 겸손한 목회자 이재훈 목사께서 이사장을 맡고 학술원은 종로5가에서 양재동 온누리교회 캠퍼스로 옮겨 새로운 학술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분의 주권적 뜻에 따라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뜻에 사용되는 것뿐이다. 기독교학술원은 2년 전 2016년 3월부터 영성 아카데미 안에 영성학 수사과정을 설립하였고 온누리교회와 포도나무교회 등 상임 이사로 봉직하시는 목회자들이 담임으로 봉직하시는 교회들의 지원 아래 목회자들에게 영성학을 연구하고 영성을 수련하도록 하여 운영하고 있다.

차영배 교수가 즐겨 애송(愛誦)한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라는 사도 바울의 증언은 성도들이 가져야 할 영성의 차원을 말해주는 것이다. 영성이란 우리의 인간적 가능성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새로운 인간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아담에 속한 옛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옛 사람의 정과 욕을 죽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주어진 새 사람의 영광, 의인의 영광에서 시작해서 그리스도 형상을 본받는 성화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를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고, 안토니를 비롯한 초대교회 교부들은 이를 신화(theosis)라고 표현하였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3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3-4). 이것이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영성의 목표는 학술원 영성학 수사과정에서 수련을 통해서 특별하게 성령의 은혜에 의존하여 특별하게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고(故) 차영배 대표는 지금 그가 그토록 애송하던 성경의 말씀대로 성령의 은총 안에서 그 영혼은 영광 속에 계실 것이다. 우리도 종말에는 상상할 수 없는 영광 속에서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다. 칭의의 영광에서 성화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온전한 성화, 신화(theosis)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 신자들은 이 고도의 정보세상, 인공지능 시대에서 지식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총으로 주시는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원로 차영배 대표께서 우리에게 남겨신 위대한 영적 유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거룩한 삶의 영광에 믿음, 소망, 사랑이 우리 안에 날마다 새롭게 되기를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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