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문제에 관한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평의회 입장>에 대한 답변

본지에 기고되는 나의주장은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임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동성애 문제에 관한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평의회 입장>에 대한 장반동의 답변

장로회신학대학교(이하 장신대)에 지난 수 년 동성애와 관련하여 심히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신대는 사실무근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지만, 장신대반동성애운동본부(이하 장반동)이 8월 14일자 국민일보에 게재한 글 속에 언급되어 있는 사건들이 장신대를 공격하기 위해 허위로 만들어낸 일들이 아님은 <크리스천투데이> 8월 23일, 26일, 29일, 9월 2일판에 실린 장신대 신대원생의 글 <장신대 학생들의 동성애옹호 흑역사와 그 쟁점들>, <장신대 일반게시판의 동성애 옹호 성명서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장신대의 ‘무지개 사건’>, <장신대의 ‘동성애 교육지침’, 단순 상황 모면용 아니길>을 보면 알 수 있다. 장신대에 재학 중인 학생이 쓴 그 글들에는 지난 수년 장신대에서 있은 동성애 관련 여러 공적인 행사들에 관한 일만 아니라 장신대 일반게시판에 나타난 일부 학생들의 친동성애적 글들이 소개되어 있다. 장반동이 국민일보에 게재한 사건들이 실제로 있었음을 확인해 주는 글들인 것이다.

장반동은 동성애 문제로 장신대와 언론을 통한 대화를 하면서, 입장의 차이를 떠나 장신대에 크게 실망하였다. 장신대는 학문의 전당이며 신앙의 전당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접해 보니, 진리와 진실을 추구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신앙적인 경건함과 겸손함도 전혀 없다. 그 어떤 정치집단보다 더 정치적이고 그 어떤 권력집단보다 더 고압적이고 강압적이다. 세상 정치판에서 보고 들어온 말들 이상의 말들을 장신대를 통하여 들으며 실망을 넘어 절망하였다. 말로는 하나님께서 동성애를 금지하시고 죄라고 하신다고 하면서도 장신대 내에 친동성애적 여러 행보들이 있는 것에 대한 교계의 우려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돌아보기보다 장반동이 ‘사실무근’인 일들을 이야기한다며 사실 자체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모습에 놀랐다. 장반동 뒤에 불순세력이 있다면서 정치적인 음모를 이야기하고 ‘장신대를 공격하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묻는 모습에 더욱 놀랐다. 같은 교단의 증경총회장님들께서 고문과 공동대표로 있는 장반동을 괴단체라 하며 ‘엄중 경고한다.’고 하고 ‘불법행동’에 대해 총회적, 법적인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인해 놀람을 넘어서 심대한 충격을 받았다. 증경총회장님들이 자신들이 속한 교단의 신학교에 의해 능멸을 당하시는 것을 보며 그분들에게 한없이 죄송스럽기만 하다. 장신대를 학문의 전당으로 생각했기에, 장신대가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적의를 불태울 줄을 몰랐다. 비판을 불법행동으로 간주하는 곳인 줄을 몰랐다. 앞으로는 장신대를 향한 비판의 말을 가급적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동시에 장신대가 학문의 전당이라거나 신앙의 전당이라는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 장신대와 얽히고 싶지 않지만, 이번에 장신대 교수평의회에서 장반동이 제기했던 동성애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기 때문에 그 입장에 대해 한번쯤은 답하는 것이 예의이기도 하겠거니와 장반동의 견해에 대한 심히 왜곡된 표현이 많아 답변하지 않을 수 없다. 장신대가 괴문건이라 하는 문건은 <동성애 문제에 대한 (장신대) 교육지침에 관한 소고>라는 제목으로 8월 8일에 서울대에서 있은 <신학과 윤리 포럼> 자료집에도 나와 있는 글인데, 한 언론이 앞뒤 말들을 무시하고 장반동을 크게 오해하게 하는 말을 악의적으로 게재했지만 원래 그런 언론이니 그럴 수 있다고 웃어넘겼다. 그러나 학문의 전당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장반동의 입장에 반대하고 항의할 수는 있겠지만 문맥을 무시하는 왜곡은 학자가 취할 길이 아니기에 심히 실망스럽다. 이 글에서는 심하게 왜곡된 부분만 바로잡고자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장신대의 입장 자체를 비판하는 이야기는 가급적 않겠다.

<장신대 교수평의회 입장> 중에서 둘째 명제 중 장반동에 대한 핵심적인 비판: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 가운데 동성애자도 회개와 변화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장반동은 동성애자들은 품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분리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하면서, 동성애자들도 회개와 변화의 대상으로 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총회와 장신대의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장반동은 마치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배제하고, 이방인과 상종도 하지 않은 것처럼 일종의 분리주의를 외치고 있다. (...) 장반동은 바리새인들의 제자인가 예수님의 제자인가?

장반동은 괴문건에서 장신대의 <교육지침>이 “성경은 동성애와 동성애자의 분리를 요청한다. 동성애는 죄이지만 동성애자는 긍휼히 여겨야 한다. 성경은 동성애자를 죄인이지만 변화의 대상으로 볼 것을 요청한다. 하나님은 동성애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고 말하고 있는 점을 가장 큰 문제라고 단언하고 있다(6쪽). 우리는 이 부분에서 장반동의 근본적인 복음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원하신다는 것은 복음의 기본적 내용이 아닌가? (...)

우리는 장반동이 칭의의 은혜로 죄인을 용서하시고 또 성화의 능력 가운데 죄인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괴문건에서 “동성애자는 근본적으로 주님께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7쪽)이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장반동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며 변혁시키는 능력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굳이 이단을 논해야 한다면, 과연 그리스도와 성령의 회개하게 하시며 구원하시는 능력을 믿는 자가 이단인가, 그것을 부인하는 자가 이단인가?

장신대 교수평의회가 문제 삼은 부분을 담고 있는 장반동의 원래의 글을 아래에 제시하고 위 글에 보이는 장신대의 읽기와 쓰기에 대한 평가는 우선적으로 읽는 분들에게 부탁드려 본다.

장신대 교수평의회가 위 글에서 문제 삼은 부분을 담은 글:

5) “동성애는 죄이지만, 동성애자는 긍휼히 여겨야 한다. 성경은 동성애자를 죄인이지만 변화의 대상으로 볼 것을 요청한다. 하나님은 동성애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눅 15:7)”는 말의 문제점

- 장신대 교육지침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조항에 있다.

- 이 조항을 성경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가? 눅 15:7을 인용하였는데, 눅 15:7이 어떤 말씀인가?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근본적으로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을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표현한 말씀이다. (...)

- 그런데, 동성애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들의 성적인 기호와 취향으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다. 정죄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주님이시니 동성애자들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고 말하는 것은 말장난이다. 기만이다. “주님은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동성애자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동성애자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신다.”는 이 삼단논법을 말장난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 ‘동성애자는 죄인’이라고 하는 두 번째 명제에 내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 동성애 논의에서 동성애자는 단순히 동성애를 행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성적인 취향으로만 인정해달라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신학적으로 볼 때 동성애자는 근본적으로 주님께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이고 형식논리로 볼 때에도 이 표현에 담긴 삼단논법은 두 번째 명제의 내적 모순으로 인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 요컨대, 동성애 이슈의 핵심에는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는 동성애자들의 주장이 있는 것인데 마치 그런 이슈를 모르는 것처럼 엉뚱하게 동성애자를 죄인의 한 부류로 생각하고서 죄인이란 말 대신 동성애자를 넣어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주님은 동성애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고 하니 동성애 논의를 함에 있어서는 기만이 가득한 말장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 동성애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을 세상에 있는 동성애자들에게 분명히 알려주어야만 그들이 회개할 때 교회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교회조차 동성애문화를 받아들이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가고자 할 때 세상에서와 같이 동성애가 숨 쉬는 교회로 돌아갈 이유가 있겠는가?

정리하자면, 장반동은 개혁자 루터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죄를 고백하는 죄인과 죄의 고백을 거부 하는 죄인이라는 두 종류의 죄인에 대한 구별을 이야기한 것이지 분리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동성애자가 비밀리에 목사를 찾아와서 기도해 달라는데 거부할 수 있는 목사는 세상에 없다. 동성애의 죄에서 벗어나도록 도와달라는데 도와주지 않을 목사도 없다. 장신대가 되었든, 장반동이 되었든, 그런 일에 관해서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장의 목회자들이 그 정도는 다 알아서 잘 한다.

장신대는 장반동을 비판하여 이르기를 “괴문건에서 ‘동성애자는 근본적으로 주님께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라 단정하고 있는데, 장반동이야말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며 변혁시키는 능력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장신대가 인용한 장반동의 글을 자세히 보면 “그런 차원에서 신학적으로 볼 때 동성애자는 근본적으로 주님께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그런 차원 에서 신학적으로 볼 때’라는 말이 앞에 있다. 어떻게 이 중요한 말을 빼고 장반동의 말을 인용할 수 있는지, 솔직히 악의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차원’이란 어떤 차원인가? 이 문장 바로 앞에 “동성애 논의에서 동성애자는 단순히 동성애를 행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만 아니라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성적인 취향으로만 인정해달라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고 한 말의 의도를 말한 것이다. 요컨대,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성적인 취향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 저들 동성애옹호론자들의 주장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계속 동성애를 하게 해달라는 주장을 교회에서 펼쳐도 좋은 것인가? 장신대가 설마 동성애자는 회개 않고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여서 한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반동에 대한 분노로 인해 잘못 읽은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장반동을 바리새인의 제자라 하고 이단이라 한 것도 그렇게 이해해 본다.

장신대는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 가운데 동성애자도 회개와 변화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당연히, 장반동도 그렇게 믿는다. 동성애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의 핵심 쟁점은 동성애자가 회개와 변화에 이를 때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신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도 회개하였다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장반동은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기 원하시지만 하나님께서 죄라고 선언하신 것을 죄로 인정하지 않고 행하는 사람들까지도 용서하신다고는 생각 않는다. 성도라 할지라도 수없이 많은 죄를 짓는다. 성도는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회개하기 때문에 성도이다.

동성애자가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가? 당연히 들어올 수 있다. 신앙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그 누구도 동성애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와서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말씀의 교회는 그것까지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장신대 교수평의회 입장>의 세째 명제 중 장반동에 대한 핵심적인 비판:

모든 인간은 동성애자들을 포함하여 선교와 목회의 대상이다.

자신들만이 의인이라고 내세우며, 동성애자들을 분리하여 상종하지 않고 혐오하고 배제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복음을 들어볼 기회조차 없게 될 것이다. 장반동은 괴문건에서 장신대 <교육지침>이 말하는 “사랑에 기초한 함께 함”이라는 말을 ‘이단적’이라고 비난한다(10쪽). 그러나 이 구절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선교적이며 목회적인 사랑과 함께 함을 말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 이것을 이단이라고 한다면, 모든 타문화권 선교가 이단이 될 것이다.

장신대는 장반동이 ‘사랑에 기초한 함께 함’이라는 장신대의 명제를 장반동이 이단적이라고 정죄 하였다며 장반동은 동성애자를 선교와 목회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비판한다.

동성애 논쟁은 구체적인 상황을 두고 일어나는 것인데, 장신대의 명제들은 상황과 의미 모두 모호 하다. 대상이 첫째, 비밀스럽게 목회자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는 동성애자인지, 둘째, 커밍아웃을 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는 동성애자인지, 셋째, 교인들과 대화하면서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동성애자인지, 어떤 동성애자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장신대는 답하여 보라. 대체 어떤 동성애자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가?

첫 번째나 두 번째 유형의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논쟁할 것이 없다. 누가 막을 수 있나?

그래서 장반동은 장신대가 앞에 말한 세 번째 유형의 동성애자를 염두에 둔 ‘사랑에 기초한 함께 함’을 의도한 것이라 읽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개를 가로 저은 것이다. ‘사랑에 기초한 함께 함’이라는 말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커밍아웃을 하고 교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고 하는 동성애자를 목회현장의 목사가 과연 사랑에 기초하여 오래 인내하며 함께 할 수 있을까? 교인들이 그런 상황을 신앙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장신대는 PCUSA 상황이 어떠한지 모르는가? 목회현장을 안다면 목회자에게 그런 내용을 ‘목회원칙’으로 강요할 수 없다. 원칙이라는 말로 강제하면 그것은 교회를 해치는 이단행위가 되는 것임을 이야기한 것이다.

장반동에 있는 이들은 모두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로 고백한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귀하게 여긴다. 그러하기에, 동성애를 죄라고 인정 않고 성적 정체성의 문제이며 성적 취향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님께서 피 흘려 사신 교회를 흔드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일로 보이고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의로만 가득한 일로 보였다는 것이 심히 유감스럽다.

최대한 선의로 장신대의 반응을 해석하자면, 아마 목회지침이라는 것을 은밀하게 목회자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는 동성애자를 상대로 의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장반동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혹 그렇다면 장반동과 장신대가 서로 논쟁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말 그런 차원이었다면, 그것은 현장목회자들의 목회적 역량에 대한 불신의 소치일뿐더러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동성애 논쟁의 역사와 이슈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이다.

솔직히 장신대의 동성애 관련 교육지침도 그렇고 이번에 발표한 교수평의회의 입장이라는 글도 그렇고, 읽고 있노라면 동성애 논쟁의 이슈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논쟁이 되는 이슈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인지, 심히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장반동이 조선일보에 게재했던 것처럼, 세상에 수많은 죄가 있는데 교회가 유독 동성애에 소리를 높이는 것은 동성애가 성적인 취향일 뿐이며 죄가 아니라는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 때문이다. 그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동성애자들의 강력한 문화운동이 있고 정치운동이 있고 입법운동이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를 동성애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지속적이고 위협적인 시도들이 있기에 교회가 반동성애의 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장신대는 이제 정말 이 땅의 교회와 나라를 동성애의 물결로부터 구하는 일에 앞장서야만 한다. 장신대의 동성애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했다고 장반동이 장신대를 공격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괴단체라며 여기 저기 언론을 통해 엄중경고를 남발하고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협박을 하기 보다는 반동성애 운동을 힘겹게 벌여오고 있는 시민단체들과 손을 잡고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며 반동성애 운동에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NAP의 동성애 관련 조항들로 인해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걱정하며 반동성애 운동에 나서고 있는데, 정작 이 일에 앞장서야 할 장신대는 반동성애 운동을 하며 장신대의 각성을 요청하는 장반동을 괴단체라고 하며 적대하니, 심히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장반동은 이제 장신대가 정치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정말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와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터전인 이 땅의 미래를 위해서 동성애 문제에 진지하게 대처해 줄 것을 요청한다. 늘 총회 입장을 따른다는 말로써 총회 뒤에 숨어서 책임을 면하려는 모습만 보이지 말고, 동성애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연구해 교단 교회들을 이끌고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 주기를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 기억해주기를 부탁한다. 동성애 이슈는 결코 개인윤리 차원에서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의 미래에 관한 일이다. 우리 자녀들의 미래에 관한 일인 것이다. 장신대가 나서면 지킬 수 있지만, 장신대가 시대적인 사명을 인식하지 못하면 결국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캐나다와 유럽의 여러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나라도 동성애 나라가 될 것이다. 장신대만이 막을 수 있다. 반대로, 정치에만 힘을 쓰다가 동성애 쓰나미를 막지 못하면 이 나라가 동성애 나라가 되는 것을 방관한 죄책으로 자녀들 앞에서 괴로워하게 되는 날을 맞게 될 것이다.

 

장신대 반동성애 운동본부(장반동) 성명서.

장신대는 교수평의회 입장문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장신대 반동성애 운동본부(장반동)는 결코 장신대나 통합교단 또는 장신대 구성원 중 어떤 개인이나 단체를 반대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다만 장신대 구성원 중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묵인하거나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유보적이거나 중간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교단의 공식 입장에 비추어 맞지 않음으로 장신대의 공식적 입장을 분명하게 견지하고 오해의 소지를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장신대 내에서 이에 대한 적절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가 시행되어야 통합총회와 장신대의 공식 입장에 부합합니다.

그런 장치와 조치가 없다면 공허한 선언에 그칠 뿐이고 지속적인 오해의 소지가 남게 될것입니다.

장반동은 동성애는 죄로 인정하고 죄를 미워하지만 동성애자들은 미워하지 않으며 도리어 교회가 사랑으로 품어 궁극적으로 모든 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그 죄에서 교정되고 치료되도록 도와야 함을 인정하는 점에서 장신대의 입장과 같습니다.

그러나 장신대 학생의 경우는 교회(노회)의 추천과 위탁을 받아 신학교육을 받고 있는 목사후보생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교회의 일반 성도들의 경우와는 같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장반동이 제기하는 문제는 교회가 동성애자를 품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특수한 직분자가 동성애자이거나 동성애를 지지하는 자이거나 동성애를 묵인하는 자일 경우 이를 용납해두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신학교는 교회를 섬길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지역교회와는 달리 교회직분자에게 준하는 믿음과 경건함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장신대는 신학생들에게 복음과 성령과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 위에 경건과 학문을 연마할 수 있도록 구비된 자에게만 입학을 허용해야 합니다.

임총장은 장신대에서 친동성애 독재를 하려는 것입니까? 장반동이 충정 어린 마음으로 장신대가 지난 2년동안 친동성애 학교운영을 해 온 것을 비판한 것을 장신대 위해세력으로 간주하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태도는 중세 교황청의 오만한 태도와 마찬가지입니다. 장신대는 기득권 학교가 아니라 선지학교 되어야 합니다. 임총장은 총장 이전에 먼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항상 자기를 성찰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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