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른한 오후, 조용한 지하철 안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 짧은 수면을 즐기는 사람, 아무런 생각 없이 건너편 좌석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사람…. 갑자기 한 사람이 일어나서 외쳤다. "주 예수를 믿으세요. 그러면 당신들과 당신들의 집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지하철 안의 적막은 깨어졌다. 앉아있던 승객 가운데서는 크리스천도 있었다. 그들은 딱한 표정으로 외치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참으로 교양 없는 사람이네. 이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꼭 저렇게 전도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주님은 저 외치는 사람과 나 가운데 누구를 보고 더 기뻐하실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마틴 마티(Martin Marty)의 말을 좋아한다. 그는 말했다. "우리 시대의 문제 중 하나는 예의 바른 사람은 강한 신념이 없고,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예의가 없다는 점이다." 조용한 지하철에서 일어나 복음을 전한 사람은 강한 신념을 지닌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세상 기준으로 볼 때에는 예의가 없다.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만 본 크리스천 승객들은 예의는 바르지만 강한 신념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교양 있는 태도에 우리가 지닌 '강렬한 신념'을 결합하는 길은 없는 것인가.

현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에게 주어진 진정한 도전은 '신념 있는 시민교양(Convicted Civility)'을 계발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일반인은 물론 크리스천들에게서조차 시민교양, 즉 일상적인 공손함과 예의가 상실되었다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미국 전역에서 높게 일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개인들은 물론 사회와 국가간에도 시민교양은 상실되고 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작은 공간을 내어주는 일조차 분개한다. 그러나 친절과 온유함이야말로 우리 크리스천들의 특징이 돼야 한다. 우리는 친절과 온유한 삶을 살도록 창조되었다. 친절과 온유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에 열거한 성령의 열매에 속하는 특징들이다.

그러나 시민교양만이 삶의 전부요 최종적인 목표는 아니다. 우리가 좀더 예의바른 사람이 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또한 진리를 향한 강한 열정을 지녀야 한다. 우리가 계발할 예의는 진리에 대한 강한 소신을 품은 예의다. 확고한 신념과 시민교양을 갖춘 크리스천이 사회를 올바르게 변혁시킬 수 있다.

교회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더 확고한 신념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신앙적 신념을 적절히 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강한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 더욱 시민교양을 갖도록 도와줘야 한다.

크리스천들이 시민교양을 쌓게 되면 믿음이 약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신념 있는 시민교양을 계발할 때 오히려 우리는 더 성숙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민교양을 갖추면 기독교적 신념이 더욱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자. 이 땅에 복음을 향한 강한 신념에 시민교양을 갖춘 크리스천들이 넘치기를 소망한다.

번역·정리=이태형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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