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심에 오성광 목사가 있다.

▲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전경

필자와 오성광 목사와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어왔던 사이다. 1978년에 진주 문산에 문산교회를 개척설립하고 대지만 400여평 구입한 뒤 1981 부민교회 부교역자로 이동을 했었는데 후임으로 문산교회에 부임을 한 오성광 목사가 필자의 뒤를 이어 교회당을 건축하였던 것이다. 그 교회 성도들이 지금도 오 목사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겼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 그를 시드니에서 만난다니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오 목사를 만난 것은 오래 전 문산교회에서 딱 한 번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변해 있을까하는 기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교회를 방문한 날은 마침 수요일이었는데 평신도 대학 공부가 진행 되었다. 수요기도회에 모이는 수가 너무 적어 고심을 하던 중 대학으로 특강형식으로 패턴을 바꾸어 실시하였는데 효과가 커서 많은 성도들이 참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드니중앙장로교회는 지금 한창 두 날개로 날아오르기 위한 셀목회가 무르익고 있다

▲ 집무실에서의 오성광 목사

교민들의 삶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내 교회라는 인식이 거의 없고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교인들이 많아서 목회자들은 때로 낙심도 하고 어떤 이는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목회를 접고 아예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목사도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만큼 한국에서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도 힘든 목회가 바로 교민을 상대로 하는 이민 목회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시드니중앙장로교회는 탄탄한 기반 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홍관표 원로목사의 성공적인 목회로 기초를 튼튼히 한 덕분이고 후임으로 뒤를 이은 오성광 목사의 뼈 마른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것이다. 시드니중앙교회는 대학생 이상 장년이 1,000여명과 그 자녀들이 400여명으로 1,400여명의 성도가 등록교인으로 있다.

200413일 담임목사로 취임을 한 오성광 목사는 이제 만 4년을 조금 넘긴, 그래서 조금은 낯익고 안정스런 세월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 보다는 친화력이 남다른 오 목사는 교회 안에 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잘 수습함과 동시에 셀 목회를 도입하였고 교회는 빠르게 회복되어지고 원로목사와의 관계도 그 이상 원만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유지하고 있었다. 홍 목사가 나는 저녁만 되면 배가 고파 죽겠네하니 저는 현미밥만 보면 거의 죽음입니다.”라고 맞장구를 쳐서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위트도 갖춘 중년 목회자로 변해 있었다.

▲ 홍관표 원로목사와 함께 선 오성광 목사

시드니의 중심교회, 많은 개척교회들을 분가해 낸 어머니 교회, 1,500여명의 대가족을 이끌어갈 목회자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교회는 분주했고 활기가 넘쳤다. 훤출한 키에 반백의 염색 안한 머리칼은 그의 고난의 삶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의 원숙함을 보여주는 외모였다.

시드니중앙장로교회는 오성광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홍관표 목사가 원로 목사로 손영배, 정인용 목사가 부목사로, 3명의 전도사와 5명의 시무장로, 8명의 은퇴장로, 12명의 장립집사, 3명의 은퇴집사, 11명의 권사와 9명의 은퇴권사가 있어 섬김을 다하고 있다. 또한 시드니중앙교회는 5개국에 8가정, 14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을 뿐 아니라 수많은 개척교회들을 돌보고 있다.  

▲ 좌로부터 오목사, 홍목사, 필자의 처, 필자

한참이나 선배인 홍관표 원로목사와 한참이나 후배가 되는 오성광 목사를 이탈리안 포럼에서 만나 오랜만에 함께 저녁을 나누면서 옛날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눈 정담들은 두고두고 필자의 가슴속에 바꿀 수 없는 보석이 되어 시드니의 파란 하늘 처럼 파랗게 물들일 것이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