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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와 문자주의 해석고통의 문제와 씨름하는 성도의 가정
이세령 목사(복음자리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장, 미포 사무총장)

잘 알려진 축구선수였던 이영표 형제는 '셋째 아이를 분만하는 과정에서 아내에게 무통 주사를 맞지 말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영표의 책에 의하면 그의 부인은 이를 받아들여서 고통스럽게 아이를 낳았다. 그의 책에 적힌 이런 일화를 인용해서 한 기독언론이 기사를 썼다. 이영표 형제가 의지한 창세기 3장 16절과 무통 주사에 얽힌 영국에서의 해석학적 일화도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기사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영표 형제의 입장을 함께 적었다. 그 기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잘 알 수 있는 글쓰기다.

위의 기사는 동성애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보는 사람들을 위험하게 여기는 이영표 형제의 입장이 얼마나 성경에 무지한 행동인지를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창세기 3장 16절에 근거해서 아내에게 무통 주사를 거부하도록 제안한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이 기사를 퍼나른 다른 매체 기사들도 곧바로 이영표 형제의 사례가 성경에 대한 문자 주의 해석의 폐해라고 주장한다. 조금 온건한 입장은 그의 순수한 신앙적 결단은 인정하지만, 문자적 해석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기자는 동성애 문제를 함께 다루어 해석학적 지평을 더 멀리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영표 형제가 아내에게 무통 주사를 맞지 않도록 제안한 것이 문자적 해석에 근거한 무지이며 분만 당사자도 아니기에 이는 여성인 아내에 대한 폭력적 행위였는가? 나아가 이렇게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이영표 형제로 하여금 동성애도 거부하게 했다는 것인가?

먼저 창세기 3:16이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살피자!

뱀의 유혹으로 금지된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에 하나님 앞을 피해 숨은 아담과 하와를 찾으시고, 그들의 죄를 적발하셨다. 죄의 책임을 묻고 형벌하시는 과정에 16절에 있다. 선악과를 먹는 책임 추궁의 마지막은 뱀이다. 뱀을 저주하고, 이어서 여자를 저주하는 장면이다. 창세기 3:16을 히브리 원어로 부터 직접 번역(사역)해보자.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아주 심하게 할 것이고,

너는 고통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낳을 것이다.

너는 너의 남편을 움켜쥐려고 하고

반면에 그는 너를 다스릴 것이다.

자녀를 임신하고 해산하는 고통을 하나님이 아주 크게 하신다. 선악과를 먹는 범죄 사건으로 인해서 비로소 고통이 생겼다는 말이 아니다. 아이를 해산하는 고통은 원래부터 있었다. 강조점은 고통이 죄로 인해서 크게 증가함에 있다. 고통과 죄를 연결시킨 것이다. 남자와 달리 여자만의 독특한 역할이, 아이를 임신하고 해산함이다. 이 과정에서 고통이 죄의 저주와 형벌이 되었다. 그리고 부부 생활에서 서로 지배하려는 불화 관계를 하나님이 만들었다. 선악과를 따 먹는 일과 같이, 범죄하는 일에서 서로 협력하지 않아야 함을 염두에 둔 저주적 불화 관계 조성이다. 저주로서의 고통이란 입장은 신학적이며 해석학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적 저주 즉 언약적 저주의 특징이 무엇인가? 저주를 수용 회개함으로 저주를 복으로 바꿀 수 있다. 저주와 복은 동전의 양면이다. 저주를 통해서 회개하고 현실을 수용함으로 고통은 복의 통로가 된다. 고통의 목표는 죄를 이기는 길로 가는 것이다. 고통스럽게 태어나는 아기를 통해서 메시아도 나오게 된다. 그래서 죄를 이기는 길이 고통을 통해서 온다. 고통이 저주로만 그치지 않고 복이 된다. 그러므로 고통은 죄의 억제이자 죄를 이기는 길이 된다.

정리하면 여자의 임신과 해산의 고통, 부부 관계의 고통을 창세기3:16절은 말한다.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을 통해서 죄를 극복하는 길이 보인다. 고통은 죄를 이기는 길이 된다. 해석의 결론이다.

둘째 이영표 형제는 고통의 담론을 부부 관계에 담아내고 있다.

본인이 아닌 아내가 분만하는 상황에서 무통 주사를 거절하도록 제안 설득하는 것을 일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일반적인 부부 관계에서 한쪽에서 말한다고 그 말을 상대방이 다 듣는가? 부부 생활이 길어질수록 부부는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 말들을 한다. 상대방이 듣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이 부부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체득적으로 알아간다. 따라서 '무통 주사 거부 결정'은 이영표 형제의 부부 관계에서 상호 의사 표시로 이루어진 것이다. 부부가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 분만의 순간이다. 거기서 나눈 대화가 일방적 폭력인가? 어설픈 문자주의 신학자 남편이 산모에게 일방적으로 도그마를 주입한 것인가? 부부 사이의 언어는 그렇게 표현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그들은 고통의 문제를 논의한 것이다. 고통의 근거가 무엇인가? 죄이다. 그렇기에 고통을 담아냄으로써 죄를 극복하는 하나의 과정을 담아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것을 말씀의 길이라고 그 부부는 불렀다. 실제로 창세기3:16절은 고통을 주심으로 죄의 영향력을 억제하시려는 하나님의 저주가 본질이다. 언약적 저주는 저주를 수용하는 자들에게 복으로 전환되는 특징을 가진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을 말하겠는가? 복과 저주는 동전의 양면이다. 고통이 저주이지만 고통을 통해서 죄를 극복하는 축복을 부른다. 본문은 문맥에서 아이를 낳는 특정한 상황만을 말하지만, 해석의 결과로서 고통은 죄를 제어하는 수단이자 복의 통로이다. 은혜를 부르는 방편이다.

이영표 형제는 말씀의 길이 제시하는 고통스러운 길을 앞으로도 걸어가려고 다짐한다. 이는 고통의 담론을 자신의 삶과 실천이 되게 하는 다짐이다. 그것이 말씀의 길이고, 죄와 맞서는 길이다. 이런 해석학적인 결론이 문자주의의 산물인가? 그럼 본인이 신학적으로 해석학적으로 다 이해했다는 말인가? 어리석은 질문이다. 경건한 성도들은 고통의 문제를 잘 알고 있다. 단지 각자 실천에 있어서 약할 뿐이다. 고통이 신앙과 생활에 유익이 된다는 생각은 성도들의 기본이다. 논리적 귀결을 넘어서 말씀의 실체를 몸으로 살아가자는 이영표 형제 부부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는 해석학적 문맥을 가진다. 말씀의 길, 고통스러운 길을 사는 성도의 길이 그의 해석학적 지평이다.

셋째는 해석학적 여파이다.

이런 선택을 한 형제의 삶은 무통 주사를 맞은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인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문자주의적인 해석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본문은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실존적으로 담아야 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그래서 본문과 유사한 형태의 상황에서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문자주의적 해석은 그것만 실천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문자주의적 해석을 극복한 고통의 해석학적 지평을 가진 자는 말씀의 길이 고통스러운 길이라고 말한다. 이영표 형제는 후자의 길을 간다.

소위 신학이니 성경해석학이니 하는 것들이 고통의 문제와 직면하는 일을 문자주의의 어리석음으로 몰아가고 그 결과 남성의 폭력적 강압으로 논란을 이끄는 것은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기윤실이란 단체가 있다. "자발적 불편"이란 표어를 내걸고 있다. 왜 자발적 불편 즉 고통을 담는 삶을 살려고 하는가? 그게 윤리이고, 선이고, 거기에 복음이 담기기 때문이다. 고통을 통해서 타자를 배려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영표 형제 부부는 고통스러운 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복음이 제시하는 타인의 고통에 접근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덧붙여서 이영표 형제의 해석학적 지평은 동성애에 대한 의견으로 표명되었다. 흔하게 동성애는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길이라고 선언한다. 동성애와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은 분리된다. 그것이 말씀의 길이다. 이영표 형제는 동성애라는 '죄'는 버려야 하지만 '동성애자'(죄인)은 품어야 한다고 말함으로 분리를 통한 참된 포용의 복음적 지평을 걷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기자가 속한 기독 언론에 대한 건강성을 필자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걸어서 한국교회의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는 방식에는 유감이다. 이번에 너무 쉬운 길을 선택했다.

고통의 문제를 말씀의 길로 보고 진지하게 씨름하는 이영표 형제와 같은 성도들로 인해서 아직도 한국교회에 생명력이 있음을 보게 된다.

 

 

이세령  leesr6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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