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목사, 2018 미래교회 포럼 준비세미나에서 발표 (2018.10.01 대전한밭교회당)

발표하는 이성구 목사(중앙)/ 통일교육문화원 이사장, 탈북청소년 드림학교 이사장

오늘날 한국교회에 삼일운동정신이 그대로 살아있다면 한국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삼일운동정신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한 이전 시대의 교회가 고민했던 문제가 다른 시대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의 본질은 동일하고 복음에 저항하는 세력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근년 들어 한국교회가 바깥으로부터 엄청나게 매도당하고 있기도 하고 스스로 매도하는 ‘자기만 이성적인’ 교회 안의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한국교회를 비판하지 않으면 마치 기독지성인이 아닌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과연 그렇게 한국교회는 본질을 잃고 무너져 내려 버렸는가? 아닐 것이다. 눈에 비치는 어떤 부분이 그렇다고 하여 교회가 완전히 본질을 잃어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랬다면 하나님은 촛대를 아예 옮겨버렸을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는 여전히 삼일정신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한 일간 신문이 제공해 주었다. 지난 주간 한겨레 신문은 ‘가짜뉴스 공장’으로 에스더 기도운동을 지목했다. 그리고 거기에 편승하여 그 주장을 옹호하는 목사의 글도 떠돌아다닌다.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슬람 난민 문제나 동성애 문제를 과도하게 포장했을 수는 있을 것이다. 홍보의 성격상 그런 면을 완전히 배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혀 없는 일을 만들어 내는 가짜 뉴스를 생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도에 목숨을 걸고 있는 ‘에스더기도운동’의 이용희 교수를 완전히 매도한 한겨레의 의도는 무엇일까? 결국 네오막시즘, 한마디로 인간만능주의로 무장한 우리사회의 극좌파 세력에게 기독교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마디로 아직도 한국교회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제하에서 자유와 독립을 외쳤던 삼일만세운동의 주동세력과 일본에서 2.8독립선언서를 만들어 3.1운동의 선구자노릇을 했던 기독청년들에게 있었던 그 대담한 저항정신이, 지금의 정부를 뒤덮고 있는 하나님을 배격하는 ‘인간중심주의’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도록 충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핵심에 이용희교수와 에스더기도운동이 있음은 분명하다.

삼일운동 100백주년을 맞으면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다시 한 번 삼일운동에 크게 기여했던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을 더 강력하게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1. 삼일운동과 초기 한국교회의 신앙

삼일운동과 한국교회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삼일 만세운동 지도자들의 절반이 기독교인일 뿐 아니라 투옥된 사람들의 상당수가 성도들이었고, 많은 지역에서 만세운동은 교회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다.

(1) 인구의 1~1.5% 정도가 기독교 신자인 상황에서 지도자의 절반, 전체 참여자의 20% 이상이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교회가 민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2) 구체적인 사안에 대하여 신학적인 논의의 틀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당시로서 “자유와 독립”의 쟁취라는 삼일운동의 기본 목표가 복음의 기본요소인 생명, 자유, 정의, 평화의 정신과 일치하는 점을 인식한 결과의 산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3) 초기 기독교회 지도자들이 천도교나 불교 지도자들과 대담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은 한국교회 초기 지도자들이 인류 보편적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종교적 차이를 초월하여 누구와도 대화하고 협력하는 광폭의 신앙인격을 소유하였음을 나타내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4) 당시에도 신앙과 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쟁 가능성이 없지 않았을 것이지만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는 만세운동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교회와 정치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뛰어 넘는 상식적인 신학적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 삼일운동에의 참여 여부가 최근 한국교회를 강타한 촛불과 태극기의 분열처럼 교회를 분리시키는 요소로 작동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말은 신앙의 성숙이 신앙의 연륜이나 성경적 신학적 지식이나 교회의 규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고 할 것이다.

 

2. 남북문제를 가로막고 있는 핵심 과제

(1) 신뢰할 수 없는 북한

정치적으로는 분명히 남북의 관계가 해빙기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요즈음의 상황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미국 북한 한국 3국의 철저하게 계산 된 자국 중심의 정치적 계산에 의하여 조성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가능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트럼프는 11월 중간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 요소로 북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대체적으로 일치되는 견해이고,

북한은 미국과 유엔의 압박과 파산으로 몰려가고 있는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고 보며,

한국 정부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업을 이루고자 하는 정치적 욕망이 과도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간주되고 있다.

현재 우선 제기되고 있는 남북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가진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 ICBM의 파기여부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 깊이 뿌리 박혀있는 상호간의 불신이다. 신뢰회복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은 종전선언을 바라고 있으며 미국은 핵무기의 포기를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서로 먼저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6.25전쟁을 일으킨 것도 북한이요, 핵위협을 가한 것도 북한이므로 북한이 먼저 핵무기 폐기를 위한 미국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 미국이 먼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2) 하나님을 부정하는 인간만능주의, 공산주의 사상

그러나 남북문제가 풀리지 않는 진짜 핵심적인 이유는 북한이 공산주의사상을 기조로 한 폐쇄적 체제를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도처에서 이미 실험이 끝났고, 실패한 사상이요 정치체제라는 것이 확실해진 공산주의와 수령중심의 주체사상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는 것이 통일을 막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그 사상과 체제는 북한 내에서도 지역간 계층간 소통을 완전히 차단하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사상 직업선택 이동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6.25 한국전쟁이후 우리 한국교회는 북한이 사상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이 결국 신본주의를 배격하는 인본주의, 인간중심사상, 인간중심의 낙관주의‘라고 하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그래서 반공(反共)을 중심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그 정신을 완전히 버리도록 하고 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공은 아주 나쁜 사상처럼 만들어 놓고, 평화 통일만을 노래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런 주제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무턱대고 따라 나서서는 안 된다. 여전히 북한 주민의 인권을 파괴하는 행위는 소위 ‘인간만능, 인간중심주의’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인간성 말살정책에서 나오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역사상 가장 모순된 상황이 북한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인간중심사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북한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해가 사라지면 ‘인간(사람)중심’은 ‘동물적 본능만 남은 인간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사상이 거기서 나오고 지금 북한은 바로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10%의 당원이 90%의 인민을 약탈하는 현상이 바로 북한에서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 인권은 아예 존재할 수가 없다. 3.1운동 당시 한국사회가 일본으로부터 겪었던 것에서 훨씬 더 나아간 인권 박멸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북한이다.

 

3. 삼일정신과 교회, 그리고 민족의 미래

이런 상황에서 삼일운동 정신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도전을 줄 수 있을 것인가?

 

(1) 자유의 신장

삼일운동은 자유 쟁취운동이었다. 민족자결주의, 곧 민족이 모든 일을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인정하라는 요구가 분출된 것이 삼일운동이었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는 통일 문제를 논하면서 물리적 통일, 경제적 통일에 앞서 자유와 인권의 신장을 제1 목표로 제시해야 하고 북한은 여기에 대답해야 한다. 핵무기를 포기하고 재래식 병력을 감축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통일 이전에, 남북교류 이전에 ‘지금 당장’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보편적 수준의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행하는 일이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는 인간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

① 평등권 :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받지 않을 권리.

② 자유권 :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예 직업선택의 자유, 신체의 자유)

③ 참정권 : 국가 정책이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④ 청구권 :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국가에 대해 일정한 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

⑤ 사회권 :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예 교육을 받을 권리)

 

이런 기본적인 자유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과 통일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정부와는 관점을 달리하여 자유를 허락하는 요구부터 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 협력의 조건으로 북한주민의 자유문제를 집중 거론해야 한다. 그것이 통일을 여는 열쇄이다.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국방의 의무, 환경 보전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 납세의 의무 등 의무를 다하면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통일한국의 건설은 삼일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한 물리적 통일 정도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2) 저항정신의 계승

삼일운동은 저항운동이다. 폭력으로 무장한 권력에 대하여 가진 것도 없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강력하게 저항한 운동이었다. 때로는 무력을 동원하고, 때로는 자신의 생명을 걸면서 저항하였다. 세계를 향하여 인권을 탄압하는 지배세력을 고발하는 운동을 함께 펼쳐갔다.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회유당하고 굴복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역부족으로 스스로 약해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엄청난 권력에 맨주먹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북한주민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이 저항정신의 회복이다. 완전히 사라진 이 저항정신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 것인가? 삼일운동 당시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었다는 사실은 결국 성경적 신앙이 북한의 저항정신을 깨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북한인권회복을 위하여 더욱 강력하게 국제사회와 연대하고, 북한주민들이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가지도록 북한 선교를 더욱 정교하게 행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현 정부의 일방적 유화정책은 삼일정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4. 과제

일본 군국주의에 그렇게 격렬하게 저항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보다 세밀한 분석을 세밀한 분석을 통하여 한국교회가 지금 북한을 위해 할 수 있고 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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