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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주의를 깨는 것은 능동적 아웃리치 뿐이다
(사단법인)컴워킹(Com-Walking) 대표 최성만 목사

게토(Ghetto)는 유대인들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강제한 도시의 거리나 거주구역을 의미한다. 13세기 모로코에서 시작된 게토는 14, 15세기를 거치면서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아마도 기독교 부흥의 시기에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구분하기 용이한 의도로 만들어진 듯하지만,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는 오명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억압의 수단이 된 측면도 있다.

실제로 게토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깥 사회와 격리되어 있었다. 게토에서는 유대인 공동체로서 어느 정도의 자치를 허용했으나 시민권을 절대 주지 않았다. 게다가 게토를 나갈 때 유대인임을 증명하는 노란색 옷과 챙 달린 뾰족 모자를 걸치고 마크까지 달아야 했다. 해가 진 후에는 게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완전히 금지되고 기독교인들이 보초를 서고 게토를 감시했다. 거주지가 한정되어 있어서 게토의 유대인들은 건물을 높이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서유럽에서는 19세기부터 점점 없어져 1870년 로마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학살시키기 위해 게토를 부활시켰다. 이때에는 게토 안에서 많은 사람이 굶주리거나 질병으로 죽었고, 만약에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또 다른 수용소로 끌려가서 학살을 당하였다. 이러한 것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피아니스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아픔을 지닌 유대인들이 지금 요르단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넣고 온갖 탄압과 차별을 저지르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타인에 의해서 게토가 형성되는 일들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게토를 만들어서 스스로 그 안에 갇히는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있다. 크게는 정치이념에 따라 이것을 민족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결국, 이것은 게토주의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자발적으로 갇힌 게토주의자들은 스스로 이념을 정당화하여 타인(다른 국가)을 괴롭히며, 그 안에서도 이러한 이념을 반대하는 자들을 억압하거나 비난하는 일들까지도 발생하는 것이다.

자발적 게토주의는 종교집단 안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특히 교회는 거대한 게토주의적 모양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개교회주의에 빠져서 자발적 개교회 형태의 게토 구역을 형성하기도 한다.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오전, 오후예배, 구역예배, 제자훈련, 남녀전도회 모임 등등, 만나는 사람들과 접하는 문화들이 직장을 다니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은 교회 밖 친구를 만나기조차 어려운 구조로 굳어져 있다.

이런 구조에서 살다가 대학생이 되거나, 직장인이 되었을 때 교회 밖에 있는 문화와 삶에 적응력을 키워내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다. 게토 구역 안에 오랫동안 살다 보면 그 공간이 익숙해져서 밖으로 나가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는 현상이 생긴다. 그들은 게토 거주지 안에서만 머물러야 안정감을 얻는 기이한 일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게토주의를 깨는 것이 선교다. 나와 다른 문화권에 도전하는 아웃리치가 편협된 세계관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루살렘교회 안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안정감을 누리려고 할 때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교회가 흩어지면서 게토주의-유대주의, 성전주의-를 극복하게 된다.

이제 교회가 자발적 게토주의를 만들었다면 다시 자발적으로 과감한 아웃리치를 통하여 게토주의를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유를 버리고 연결을 시도하라!

과거에는 교회가 모든 것을 소유해야만 힘이 생기는 줄 알고 토지를 구입하고, 무리하게 건축하는 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접속이 시대가 되었다. 내게 없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있을 수 있다. 빌려서 사용하고 연결해서 가면 된다. 많이 소유하면 오히려 비난받는 시대가 되었다.

둘째, 있는 것을 과감하게 나눠라!

어려운 교회에 사람을 보내고, 물질과 재능을 흘려보내기를 바란다. 희생할 때에 영광이 나타난다.

셋째, 나누려면 내 것을 포기해야 한다.

교회 내에서 모이는 시간을 교회 리더들은 과감하게 줄이고 타인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도록 배려해 주기 바란다. 내 것을-교인, 물질, 시간 등등- 흘려보내는 일에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두려워 말고 흘려보내기를 바란다.

게토주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새 부대를 준비해야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다.

 

최성만  webmaster@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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