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살다 / 김형원  

류수용 형은 나와 초등학교 동기이지만 나이가 더 많아 형으로 부른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 경북 상주시 중동면 간상리에서 성장했고, 결혼하여 자녀를 키우며 평생을 살아온 고향 지킴이 친구이다.

중동면은 삼면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고, 비봉산 자락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간상리 동네는 계절마다 과일이 열리는 과수원과 우리의 기본 삶의 원천이 되는 농사의 터전이 있는 곳으로 류 형이 연륜과 세월을 쏟아부은 곳이다. 그는 산과 강을 바라보면서 동심(童心)을 일깨웠고, 넓은 들판과 과수원에서 청춘의 열정을 쏟아부었으며, 가족들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삶을 담아온 고향에서 어쩌면 숭고한 사명을 안고 살아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동네 앞에 오랜 세월 동안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처럼 우직하게 고향을 떠나지 않고 칠순이 넘도록 고향에서 살아왔다.

류 형은 원래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쉽사리 고향에 눌러앉아 살아간다는 것은 그에게는 대단한 결단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아 논과 밭, 과수원에 푸른 꿈을 심어왔고, 소중한 생명의 터전에서 변하지 않는 의지와 사랑을 가지고 타고 난 본성처럼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그는 70~80년대에 많은 농지와 과수원을 관리하면서 소위 머슴이라고 하는 일하는 사람을 고용하여 영농을 해 왔다. 90년대에 이르러 농업기계화가 이루어져 일손이 줄어들고 또 일손이 많이 필요한 때에는 그때마다 날품 일꾼들을 수십 명씩 모아서 모내기 등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필요한 인력을 사서 농사일에 투입하기도 한다며, 과수원은 2,400여 평에 사과와 포도를 재배하여 많은 수확을 올리며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식 키우고 농사일에 묻혀 살다 보니 칠십이 훌쩍 넘었지만, 후회는 없고, 다만 이제는 힘들어 농사일을 많이 줄였다.”고 말한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원인도 있겠지만 젊은이들은 모두 고향과 농촌을 떠났으나, 류 형은 고향에서 농업인으로 4H 운동과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 근대화에 참여했다. 이어 중동면 발전위원회와 장학회에도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도자로 발돋움했지만, 명예를 노리고 무슨 일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노래하고 즐기면서 사는 낭만적인 시간을 보낸 것이 결코 아니다. 눈앞에 놓인 농사일에 쫓기면서 따가운 햇빛 아래 땀 흘리는 수고와 노력을 하면서 힘들게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도시 생활을 동경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살았다.

류 형은 2남 2녀의 자녀들을 둔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자녀들은 대구지역으로 유학을 하여 공부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자녀들을 결혼시켜 주택까지 마련해 준 것만 보아도 도시의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는 것은 아마도 대단한 부자 농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도시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농사꾼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상대를 압도하는 뚝심 좋은 사나이의 기질을 가지고, 항상 자신감 있고 기백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류 형이 이렇게 신념 어린 삶을 살아오는 동안 그가 살고 있는 중동면(面)과 상주군(郡)에서도 면장(面長) 군수(郡守)도 찾아와 인사를 할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 되었다. 또한, 그 자신은 지방 유지(有志)로서 체면이 있는 자리에서도 앞장서 모범을 보이며 책임을 다하여 일하고 있다. 그는 좋은 학벌과 자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누구에게나 거리낌 없는 대화 상대가 되고, 화사한 옷차림으로 나서지 않아도 그의 구릿빛 얼굴의 중후한 자세와 행동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데 또한 놀랄만하다.

류 형은 우리들의 중동초등학교 동기회의 모임에서도 회장직을 맡아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적절한 대화와 설득으로 모여 온 여러 친구들을 잘 응대해 주며 이끌어가는 지도력 또한 탁월하다. 어쩌면 경이롭기까지 한 그의 모습에서 친구이지만 존경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학자들은 흔히 “현대사회는 고향을 떠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사회성을 말하고 있지만 류 형에게는 그가 살아가고 있는 고향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철학적인 삶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애환과 혓소리가 있겠지만 낯선 풍경 속에서 정착하여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고향을 떠나 도시 생활을 하면서 고향처럼 생각하고 살아가지만, 결코 고향처럼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여기가 고향이라고 단념하고 새로운 제2의 고향에 정착하며 세월을 보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랜 세월 고향을 떠나 살아온 친구들이 모였다. 이제 늙었고 거동이 불편해 보이지만 온통 고향의 사투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이질감(異質感)마저 들었지만, 정감이 넘치는 흐뭇한 시간이 되었다.

고향에 살고 싶었다. 고향에서 면서기를 하면서 고향교회를 섬기고 신앙 좋은 처녀와 결혼해서 소박하게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향에서 오랜 세월 향수에 젖은 그리움을 가득 안고 살고 있다.

류수용 형이 부럽기만 하다. 아마도 그의 가슴에는 사랑의 원류이기도 하고, 눈물의 원천이기도 한 고향이지만 때로는 보석 같은 애착을 가지게 하는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박한 도시가 아니고 그가 태어난 고향에서 생명과 사랑을 뿌리내리면서 황금빛 세월의 인생을 살아온 류 형은 분명히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만하다.

 

* 김형원 약력

수필가, 서울영천교회 원로장로, 에피포도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상, 고려문학상 대 상 수상, 에세이집 「고향의 강」, 크리스챤한국신문 발행인, 한국기독언론협회 회장 역임, 한국교회평신 도지도자협회 대표회장 역 임. 고려문학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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