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회운동 단체도, 복지시설도, 환경운동연합도, 기업도 아니다.

 
100분 토론회 좌로부터 이승구 교수 , 이정익 목사, 정주채 목사, 김병훈 교수, 최덕수 목사

지난 27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열렸던 한국복음주의신학회(회장 원종천) 제72차 정기논문발표회에서 이정익 목사(한국복음주의협회 회장, 신촌성결교회 원로)가 한국교회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이 목사는 교회다움은 "구제도, 봉사도, 사회운동 혹은 환경운동"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교회는 사회운동 단체도 아니고 복지시설도 아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환경운동연합도 기업도 아니다." 이 목사는 "교회가 정체성을 잃으면 사람들은 교회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며,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대표적인 교회인 신촌성결교회 담임으로 취임해 25년 동안 교회를 섬기고, 기성총회 총회장과 서울신대 이사장, CBS와 대한성서공회 등 연합기관 이사장 등을 역임한 이 목사는 한국교회가 영혼 구원과 양육이라는 "교회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일성을 발했다. 

다음은 이정익 목사의 발표문 전문이다.

 

위기시대의 바른 목회

 

이정익 목사/ 한국복음주의협회 회장

I. 서론

오늘을 가리켜 위기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위기의 시대임에는 틀림없다. 인류문명의 발전은 사회에 희망과 발전과 번영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정신의 퇴조를 가져온다. 오늘은 그 정신의 퇴조가 종교의 위기까지 불러오고 있고 종교계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하고 있다.

 

 

II. 한국교회 문제점

1. 성장 과정에 나타난 내적 문제

1) 성장 우선주의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한 사고는 경제 성장 제일주의였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경제활동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경제 성장이 우선이라는 미명하에 사람의 생명, 가정, 자연환경 등이 파괴되었으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 성장을 통한 풍요가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한국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교회도 사회의 성공 우선주의를 여과 없이 받아들였고 교회 성장을 번영신학의 논리로만 이해하였다. 교회와 목회자의 간증과 수기는 외형적 성공만을 이야기했으며 이를 보고 들은 교회와 목회자들은 외적 성장과 성공이 곧 교회의 성장이고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방정식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에 모든 교회와 목회자들은 자신들도 그렇게 성공하기 위하여 열정과 힘을 오직 성장에만 집중하여 왔다.

삶을 대하는 성도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성공 우선주의는 성공한 기업가를 복 받은 신자로 설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한 청년을 모범으로 말했다. 최근 한국사회는 다시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청년 실업 문제는 심각하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53.7%), 돈(생계)(22.1%), 진로(15.7%)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종교가 할 일이 심적 안정을 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청년들이 보기에 한국교회는 어려움에 처한 청년을 돌보기보다는 좋은 데 취직한 청년만 알아주는 곳이 되었다. 교회 안에서 사회적 성공을 기준으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 성공을 신앙의 목표라고 착각하게 만들었고 여기에 길들여진 성도들은 교회를 비판하지만 자신들도 이러한 성공지향적인 신앙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성장 우선주의, 물질 만능의 번영신학이 세계사에 없는 교회 성장을 이루는 한 요소가 되었지만 이제는 그로 인해 교회가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경제적 풍요만 추구하고 거기에 걸 맞는 시대정신이나 도덕,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한국사회는 IMF라는 위기를 맞았고 그로 인해 타의에 의해 많은 변화와 개혁을 겪게 되었다. 한국교회 역시 세계적인 성장의 신화를 이루었지만 시대정신과 윤리, 교회의 본질을 놓친 한국교회는 이제 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자의든 타의든 변화와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2) 세속화(대형화, 제도화, 교파주의)

2003년 한신대학교 신학연구소가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조사대상자 중 70%가 ‘한국교회는 교파와 교회 중심적이라고 지적하고 다음으로 지역에 교회가 너무 많다는 것과 ‘우리 주변에 품위와 자격이 없는 성직자가 너무 많다’는 순서로 지적하였다. 이것이 바로 현재 사회에서 교회를 보는 시선인 것이다.

최근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천주교 본당주임신부, 개신교 담임목사, 불교 사찰주지 등 종교인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시민사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종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53.7%가 천주교, 37.0%가 개신교, 13.0%가 불교라고 답했다. 그런데 정치권력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개신교가 47%로 가장 높게 나왔고 다음으로 천주교 30.9%, 불교 20.4%의 순서였다. 정리해 보면 개신교는 약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 일한다기 보다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으로 이익의 추구를 위해 권력에 가까운 정치지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교계 지도자는 사회 정치 세력과의 친분을 과시하거나 교계 내외에 정치세력화를 이루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급속한 성장과 이에 따른 무분별한 번영신학으로 인해 다시금 종교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목회자들과 교회가 사회를 향한 선지자적 소명을 잃어버렸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단순히 숫자의 감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교회와 목회자의 예언자적 사명을 잃고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것이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세상에서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종교로서의 거룩성을 상실한 채 철저히 세속화된 이익 집단으로 전락해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변화를 이끌어 가기는커녕 오히려 시대의 걱정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3) 권위주의

최근 시대 흐름은 탈권위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우리사회의 흐름은 철저하게 권위주의 파괴와 간소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지나친 권위주의로 인해 많은 폐해를 겪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오늘 대기업 총수들이 당하고 있는 수난은 탈권위주의에서 이탈하려는 저항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권위주의로 인한 문제의 발생과 갈등은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장신대 오규환 박사는 한국 교회가 매력과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주의적 문화와 가치관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가 2017년 성인 1,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의 교회·종교의식 설문조사에 의하면 청년들은 ‘탈권위’ 시대에 목회자의 권위를 강조하는 교회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교회의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청년들은 철저히 배제되어 어떤 권한도 없고, 대신 일만 많이 시키고 책임만 지운다는 것이다.

교회 내 권위주의의 또 다른 요소는 이미 다룬 성장 제일주의와 관련이 있다. 한국뿐 아니라 경제개발도상국들이 급성장을 이룬 배경에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통한 독재 정치가 있었다. 급격한 경제 성장과 도시화는 교회에도 급성장으로 이어졌는데 이런 정황속에서 교회에도 카리스마적 목회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교회의 급성장이 이루어졌고 대형 교회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런 권위주의적 문화 속에서는 어떤 합리적인 대화나 소통이 불가능하고 새롭게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과거 교회의 전통과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지키려는 인습주의,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요구와 이에 대한 맹종적 태도가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소통의 부재와 심각한 교회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4) 목회자의 리더십

지금까지 살펴 본 한국교회 문제들의 공통분모에는 인정하기 싫지만 목회자가 그 중심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목회자의 빈곤한 영성, 도덕적 타락, 이를 무마하기 위해 사용되는 잘못된 권위주의와 강단의 언어폭력은 교회의 영성과 분위기는 물론 교회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교회성장학이 등장하면서 목회자의 리더십은 영성이 아니라 성장 중심의 경영 능력으로 변했다. 즉 교회성장을 위한 성장형 리더십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수많은 세미나와 프로그램들이 교회의 성장방법론을 소개하면서 단기적 성장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교회성장형 리더십론은 일반 경영학계의 ‘리더십론 아이디어’의 개념을 그대로 도입하여 교회와 목회를 진단하고 효율적인 성장 프로그램과 전략을 제시했다. 이 이론들은 성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 구절들을 인용해 끼워 맞추는 수준으로 사실상 교회와 목회를 마케팅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성장전략과 리더십을 제시하였고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경영자로서 목회자 상을 제시했다. 그 결과 교회 성장이 목회자에 대한 절대적 평가 기준이 되었고 교회 성장만 이룬다면 모든 영적, 도덕적, 윤리적 문제들은 용인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교회 내에 형성되었다. 결국 교회의 성장 제일주의와 세속화, 그리고 권위주의 문제는 서로 맞물려 있으며 그 중심에는 목회자가 있다.

얼마 전 기독교연합신문에서 리더십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중,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교회리더가 꼭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한 질문에서 응답자 중 41.5%가 영성이 교회리더가 꼭 갖추어야할 덕목으로 응답했고, 31.2%가 청렴성을 그리고, 17.5%가 도덕성을 강조하였다. 생각 밖으로, 탁월한 설교(7.6%)나 사회적 영향력(1.2%) 그리고, 카리스마(1.0%)에 대해서는 그리 높은 지지를 보내지는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역설적으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보기에 목회자들이 더 이상 영적이지 않고 청렴성이나 도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목회자라면 당연히 갖추어야할 덕목으로 영성, 청렴성, 도덕성을 제시한 것이다. 목회자의 리더십과 진정한 권위는 실적이나 결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권위에서 나와야 한다.

 

5) 신학교육

목회자의 문제는 결국 신학교육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대략 예장 통합의 경우 교단 산하 6개 직영신학교에서 매년 천명이 넘는 목회자 후보생들이 배출되고 있고 예장 합동의 경우는 2004년 목사고시에서 합격자의 수를 600명으로 제한하였는데 응시생은 1천5백 명이나 된다. 최근 몇몇 신학대학 입학이 미달 되었다는 곳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교인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 비해 목회자는 늘어나는 기형적 형태이다. 이러한 목회자의 과잉공급은 당연히 목회자의 질적 저하로 나타난다. 성직자로서의 기준은커녕 일반인들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성이나 인성으로 곳곳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교회에 대한 전반적 이미지 실추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신학교육의 문제는 신학생의 대량 배출만이 아니라, 그 정체성에도 문제가 있다. 시대 사상이나 문화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그 차원을 넘어 시류에 휩쓸려 신학의 정체성이 흔들리며 신학과 교회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 교회는 신학을 통한 비판적 성찰 없이 성장 우선주의로 빠지고 신학은 교회와는 상관없는 신학으로 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바탕으로 세워진 신학이 교회와 상관없이 간다는 것은 모순이다.

최근 신학은 성경을 바탕으로 교회와 시대 흐름을 성찰하고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인문학이나 철학, 시대사상을 토대로 성경을 재해석하거나 심지어 분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유럽과 미국의 교단과 신학교들이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성애 성직자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자유와 인권, 페미니즘 등의 이름으로 성경의 텍스트를 재구성하거나 분해하기 시작했다. 성소수자, 여성, 아동 등의 인권과 권리, 자유는 중요하다. 성경도 그들에 대한 사랑과 긍휼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긍휼은 하나님의 공의로 회복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랑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전제 없이 성경이 금지하는 모든 것을 인권과 자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고 심지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 텍스트 자체를 분해하거나 재해석 하는 일까지 이뤄지고 있다.

한때 영국교회는 왕성하여 웨슬레와 감리교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현대의 영국교회는 자유주의 신학과 유신론적 진화론의 유입, 동성애자 성직자의 임명을 거치면서 그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교회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1945년 75%에 이르던 교인은 오늘날 2% 뿐이며 그것도 고령자들만 남았다. 미국 장로교회는 30년전 3백만 명이던 신자가 오늘은 150만으로 줄어들었고 독일교회의 경우 교구제로 운영되는데 한 교구 당 재적인원이 2000~3000 명에 이르지만 주일 예배 참석인원은 30~50명 정도에 불과하다. 과거의 영광 가운데 지어진 웅장한 교회들은 더 이상 유지가 어렵게 되어 팔거나 휴가철이나 겨울철에는 임시휴업을 하는 교회도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의 신학교육에도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영국과 미국의 교회들이 이미 겪은 것과 동일할 것이다. 이미 한국 청소년의 40%가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는 조사가 나왔으며 매스컴과 미디어는 이를 미화시키고 있다. 교육부는 중학생 성교육 교사용 지도자 지침서에 “동성애는 하나의 인간적인 삶이며 사랑의 한 형식”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가 교회와 신학에 들어오면서 영적 힘이 약화되었다. 이제 신학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생명이 빠진 사변적인 신학으로 전락하고 있고 영성과 신앙을 상실한 신학교육은 목회자의 문제로 이어지고 곧 목회자의 문제는 신학교육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한국교회를 향한 외부의 도전

1) 새로운 가치관과 사회변화

시대가 변하면서 한국 사회도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를 겪고 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여졌던 가치관들이 비판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으로 대치되고 있다. 탈 권위, 인권, 환경 등 그 범위와 주제도 광범위 하다. 변화는 필요하고, 때로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 속에서 교회는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고, 이끌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 중요한 이슈이자 교회에 도전이 되는 문제라고 한다면, 대표적으로 동성과 관련된 문제들일 것이다. 동성애 문제는 최근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는데, 2015년 6월 미국연방대법원이 동성애 결혼을 합법으로 판결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최대 교단 중 하나인 미국장로교(PCUSA)가 결혼을 ‘남녀’가 아닌 ‘두 사람’간의 결혼으로 정의하기에 이르렀으며, 소속 교회들이 교단을 탈퇴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런 영향은 한국사회 동성애 문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동성애는 종교의 문제를 떠나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정서와 특성상 용인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미국의 판결이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미국, 스웨덴, 카나다 등 대사관이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내 퀴어축제에 힘을 실어주었고 분위기가 급격히 변화되어 가고 있다.

한국 교회는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동성애 문제는 각종 인권문제와 연계되면서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특히 성지향성 때문에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인권법 제정 움직임은 한국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사회 문화적인 도전이 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이러한 문제들에 관련한 목소리를 나타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지혜롭고 전략적인 대응이 요청된다.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41조 간통죄가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및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간통죄는 성윤리 의식이 부족한 남성들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1953년 제정되었으며, 개인의 행복 추구권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보다 가족과 혼인제도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 속에서 유지되어 왔었다.

그런데 간통죄 폐지가 가정파괴의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단지 형사책임이 아니라 민사책임으로 바뀐 것뿐이다. 그럼에도 간통죄 폐지 이후 불륜과 관련된 업체가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반면 불륜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사설 흥신소를 이용하거나 배우자의 불륜을 인터넷이나 SNS로 공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피해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국 교회는 성윤리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동시에 기독교인들이 삶으로 본을 보여야 하는 책임 역시 중요해졌다. 한국 교회는 결혼의 신성함을 일깨우고 아울러 결혼의 유지가 자율적 헌신과 사랑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중임을 맡게 되었다.

 

2) 대체 종교의 확산

한국교회 교인수의 감소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데 이를 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다. 우선 현대사회의 특성상 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종교인 전체가 감소한다는 주장이다. 이성과 합리성의 증대가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소시킨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주장은 유럽의 경우 일부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교인수가 감소한 교회당이 음식점이나 유흥업소로 팔리고 있다. 한국교회도 산업화와 현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종교의 자리를 이성과 합리성이 차지하고 종교가 더 이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한국 개신교의 숫자도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의 통계를 보면 이러한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5~2005년 사이 종교인구는 전체 국민 중 50.7%에서 53.1%로 2.4% 증가하였고, 이 기간 동안 천주교는 절대인구로 295만 명에서 514만 여명으로 219만 5천명이 증가하여 74.4%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불교 역시 이 기간 동안 40만 5천명이 증가했다. 즉 개신교도의 감소는 종교가 쇠퇴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 볼 다른 주장은 종교가 도태되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형태가 변하거나 다양화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미 서구사회에서는 교회를 떠난 많은 사람들이 뉴에이지 운동이나 신흥종교 또는 동양의 신비종교를 찾아가고 있고 심지어는 이슬람으로 많이 개종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이슬람의 증가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 인구의 출산, 이주자의 증가뿐 아니라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유럽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구의 변화는 가까운 미래에 한국 교회에 닥칠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이슬람은 한국을 주된 선교의 표적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기독교 강국이면서 기독교라는 공통분모와 우방이라는 정치적 관계 때문에 이슬람은 미국을 향하여 나아가는 전초기지로 한국을 지목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이슬람은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원전수주와 건설수주를 통환 상호 교환의 맥락에서 이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 이슬람 오일 머니를 투자하려는 노력도 그 일환이다. 최근 불거진 갈등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음식인 할랄을 만드는 기업의 진출 때문이다.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의식을 그대로 따라야 하고 막대한 자금을 통해 우리나라에 진입하려는 이슬람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3) 저출산과 노령화

1970년의 출산율이 4.53명이었는데 2009년에는 1.1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이러한 수치는 OECD 평균인 1.71보다 크게 못 미치며 선진국인 미국이 2.09, 프랑스 2.0, 영국 1.96, 스웨덴 1.91명에 비교해 볼 때에도 상대적으로 크게 낮은 수치다. 저 출산과는 반대로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비율은 38.2%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는 유럽 북미 등 선진국의 노인 인구 평균 비율이 25.9%인 것과 비교해보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2017년에 생산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2018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14%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며 2019년에는 총인구가 감소하게 되는 등 심각한 인구변화가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저출산과 고령화는 불가불 학력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학령인구의 감소는 교회학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교회학교의 감소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지만 그 대상 자체가 감소한다는 것은 큰 변화이자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교회 성장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교회학교의 감소는 한국교회 전반적인 구조와 교인 수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이미 교회학교가 없는 교회들이 발생하고 있다.

최윤식 박사는 ‘한국교회 미래지도’에서 한국교회 미래 부흥의 핵심 레버리지로서 자녀의 미래, 가정회복, 그리고 은퇴자의 미래를 들고 있는데, 이 세 가지 이슈는 모두 교회교육과 관련된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교회와 가정에서 교육의 중요성은 더 증대되고 노년기가 길어지면서 노년교육의 중요성은 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가 교회를 선택하는 우선적인 기준이 교회교육의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미래사회는 가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유발되기 때문에 교회가 가정사역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은퇴 이후에도 30-40년을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은퇴세대들에 대한 교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 프로그램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기존의 교회교육에 대대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학교 체제가 과연 이러한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4)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은 2016년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로 다뤄지면서 공론화 되었다. 18세기 증기기관의 개발로 일어난 1차 산업혁명 이래 네 번째 일어난 혁신적 변화라는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는데, 새로운 첨단 기술이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아직 정확한 정의나 적용을 두고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각 분야의 기술이 융합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교류가 일어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점이 기존의 산업혁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삶과 교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도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 기술 가운데, 우리 일상에서 이미 경험되고 일상화된 것들 중 사물인터넷기술이 있다. 모든 사물에 인터넷 기술이 접목되어 사물들 간에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술로 효율성의 증가와 삶의 질 향상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한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이다. 얼마 전 사람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이 화제가 되었다. 인공지능시대에 대하여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합리적 결정을 통한 효율성이 극대화 할 것으로 예상되며, 에너지 절약을 통한 환경 보호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도 있다. 무엇보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질병치료에도 혁신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IBM에서 제작한 인공지능 의사 왓슨은 300개 이상의 학술지와 방대한 의료정보를 학습해 임상실험에서 진단한 결과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의 길병원 에서도 도입해 암 진단에 활용하고 있다. 이미 스포츠계에도 로봇 기자가 등장하여 경기가 끝나면 1초 만에 기사가 오탈자 없이 자동 출력되고 올림픽 로봇은 평창올림픽에서 15개 종목 전 경기를 취재 보도한 바 있다.

세 번째, 미디어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는 가상현실이다. 가상현실은 1980년대 개발되기 시작했으나, 당시에는 기술적 한계로 대중화 되지 못하다가 최근 기술의 발전과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가상현실은 정보를 현실감 있게 전달할 수 있어 영화, 게임 등 미디어 산업 전반에 활용되고 있으며 환자들을 진단하는 분야에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유엔이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 생활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자율 주행 차량의 발전은 편안함과 안전을 가져올 것이고, 대신 기술의 발달로 버스 안내양이 사라지듯이 자율 주행 차량의 발전으로 운전이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충돌 제어시스템으로 인해 최근 고속도로에서 연이어 발생한 대형 참사와 같은 사건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체에 칩을 이식해 사람들을 감시하거나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실시간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해 이상이 발견될 경우 병원에 자동 연락돼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오진의 확률은 줄어들 것이고 치료와 수술 성공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번역이나 통역이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통역이나 번역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위기가 될 것이다, 인간에게 중요한 정서적 영역에도 변화가 일어나 체외 수정 및 인공자궁 증산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개념이 사라질 것이고 인공지능이 사람의 대화 상대가 되어 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물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우려되는 문제점들도 있다. 우선 개인 사생활의 노출이 있다. 수집된 정보들이 인터넷에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든 정보에 대한 침범이 이루어질 수 있다. 아울러 한 부분에서 발생한 에러가 시스템 전반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가 되는 점이다. 가상현실은 참된 현실과 가상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고 이로 인해 환각이나 현실도피적인 다중 자아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또한 왓슨처럼 의료 및 안전과 관련된 중요 판단이 잘못됐을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문제도 있고 기술에 대한 감탄과 동경은 기술에 대한 맹신과 중독을 불러 올 수도 있다. 디지털 정보의 독점에 따른, 계층의 격차가 더 극대화 될 것이고, 육체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육체의 비만은 물론이고, 디지털정보 비만이 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오늘의 현실은 교회 운영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면서 벌써 미디어 심방의 가능성이 등장한다. 예배와 교회 행정에서 인력구조 개편이 이루어지고 환자나 외국에 있는 경우처럼 불가피하게 참여할 수 없는 성도들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이미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일이 보편화할 것이다. 병의 진단과 치료도 인공지능이 하고 작가도 판사도 인공지능의 가능성이 등장하는 때에 인공지능 설교가의 등장도 예상된다. 디지털화는 하나님이 지으신 몸,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아픔을 체휼하시고 공감하신 몸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변화의 크기와 파급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불안감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그 변화를 피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어떻게 보면 교회에 기회가 되고 또 가장 큰 도전도 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머리를 맞대고 숙고할 때가 되었다. 교회의 생존을 위해 연구해야 하고 미래 시대를 살아갈 영혼들에게 교회가 무엇을 제시해야 하는지 연구해야 한다. 과연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인간의 삶에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있는지, 이러한 시대에서 신을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교회가 복음을 통해 그들에게 진정한 기쁨과 안식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

 

III. 한국교회가 나아갈 바른 목회

1. 교회다움의 회복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바른 목회의 시작은 교회다움의 회복에 있을 것이다. 먼저 교회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자기성찰과 교회에 대한 신학적 정립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성장 제일주의와 번영신학은 교회의 정체성을 퇴색시키고 세속화를 불러왔다. 아울러 목회자의 리더십에도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다. 외적으로는 인본주의와 대체 종교의 등장으로 교회는 더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시작은 바로 교회다움의 회복이라 할 것이다.

교회는 다양한 은사로 다양한 사역을 하는 곳이다. 구제도, 봉사도, 사회운동, 환경운동도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상실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구제와 봉사와 나눔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운동 단체도 아니고 복지시설도 아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환경운동연합도 기업도 아니다. 사회의 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교회가 구제에 나섰다면 그것은 교회가 정체성을 잃은 것이 아니었나 되돌아 봐야 한다. 교회가 정체성을 잃으면 사람들은 교회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 교회다움을 회복해야 한다.

 

2. 예언자적 메시지

성장 제일주의와 번영신학은 교회의 정체성을 변질시켰으며 이는 곧 설교의 변질로 이어졌다. 예배도 설교도 사람을 모으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 이제 예배는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진행되는 이벤트가 되었고 그 절정에는 설교가 있다. 오늘의 설교는 성공과 번영이라는 장밋빛 미래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제시할 뿐이다. 성공의 기술을 설파하는 책들이 설교집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 이상 설교에서 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지 않으며 회개를 말하지 않는다. 점차 강단에는 힘이 없어졌으며 무기력한 세상의 강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바른 목회를 위해서는 설교가 회복되어야 한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그릇된 길로 갈 때 그들을 일깨웠던 예언자적 메시지가 회복되어야 한다.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는 메시지였고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는 예언자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백성들의 미움을 가장 많이 받았던 예언자가 예레미야였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예배하며 번영을 기대하던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렘7:2~7)고 외쳤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오늘날 교회를 향한 메시지와 같다. 화려한 교회당에서 유명한 강사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형식화 된 이스라엘의 종교의식을 향해 책망하셨다.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그들의 죄악을 고발하며 회개와 변화를 외쳤다. 이스라엘이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방 나라를 채찍으로 사용하여 징계하실 것을 경고하였다. 오늘 한국 교회가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고 더 늦기 전에 예언자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교회와 성도들이 돌이킴으로 한국교회가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3. 영성의 회복

사회가 세속화 될수록 결핍되는 부분은 영성분야라고 할 수 있다. 미래에는 이 영적 힐링이 절실할 때가 될 것이다. 이미 대기업들은 발 빠르게 이를 탐지하고, 힐링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본격화 하게 되면, 영혼 터치가 더 절실하게 요구될 것이다, 미래사회에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감성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고 느끼기를 더 원하게 될 것이고 마음의 공허함이 더 커질 것이고 기술발달은 마음의 공허함을 만져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향상된 기계적 서비스 보다 따뜻한 위로의 말을 더 원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시대로 나아갈수록 사람들의 종교성은 더 요구될 것이며 인간이 신에게 더 가까워질수록 진짜 신을 더 생각하게 될 것이다.

 

4. 관계와 소통의 회복

①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교회

교회의 위기가 오히려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수의 성도를 앞에 두고 일방적으로 외치는 형태가 아니라 관계를 강조하는 구조로의 변화하는 계기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사실 기독교 신앙은 강의가 아니라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 형성된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도 그것은 지적인 사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구경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구조는 성도들이 함께 참여해 세워가는 교회가 아니라 일부 중직자, 특히 목회자에 의해 결정된 사항에 대해 순종적 자세만을 요구해 왔다. 동역자라고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결정된 사항에 순종하는 범위에서의 동역자이었을뿐이다. 그러다보니 구성원들은 구경꾼이 되어 교회 소속감이나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다.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는 공동체에 남아서 헌신할 생각도 점차 줄어들었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구성원을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꾼, 군사, 진정한 의미의 동역자로 대우하고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특별히 저출산, 고령화 현상 속에서 교회는 보다 참여를 강조하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성원이 경험하고 참여하여 온 몸으로 체험하는 신앙훈련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도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며 전도에 대해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전도하며, 이 모든 교육과정을 디자인 하는 일부터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현대는 쌍방향 소통과 참여를 중시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외적 성장 일변도의 교회 정책과 조직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이제는 외적 성장의 시대가 아니라 성숙의 시대이다. 기존 구성원과 새로운 구성원 사이에 공통적인 기억 혹은 전승, 목적과 의지를 공유해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말씀이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어온 성례전이나 공동체의 여러 종교의식의 중요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② 세상과 소통하는 교회

오늘 교회들이 식당과 카페와 주차장을 만들어 우리끼리만 독점하는 편협함의 경향들은 극복되어야 하고 목회자들의 지역에 대한 무관심도 극복되어야 한다. 오늘 교회가 교회의 헌금으로 대내적인 소비와 해외 선교에 집중하는 사이 청년들과 지역에는 무관심 했다. 교회가 사회에 관심을 가질지라도 그 관심은 지극히 홍보와 이벤트 수준에 그치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평창올림픽에서 요란한 올림픽선교 발대식을 하였지만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전도지를 살포하는 수준이었지 참가 선수층이나 핵심인물 주변에는 접근도 하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사회와 소통한다는 수준이 이 수준이었다. 현재 교회들마다 사용하고 있는 게시물이나 현수막 그리고 청소상태나 목양시스템은 수십 년 동안 변화가 없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내의 사조직, 선교회, 구역, 봉사조직 등도 수십 년 동안 변화가 없다. 교인들은 무표정하다. 구원의 기쁨이 없고 생명력이 없어 보인다. 교회 중직자 들의 생각도 불변하고 교회운영이나 각종 회의에도 새로운 시도가 없다. 목회의 무변화, 설교 스타일의 무변화, 변함 없는 리더십, 동일한 제자훈련방식, 변화 없는 목양 시스템 등 30년 전과 다름이 없다. 예배형태, 주보, 예배순서, 막무가내식 전도, 무용지물의 전도지 살포행위 등 교회 운영 방식에 일대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5. 목회자의 리더십 변화

한국 교회가 처한 위기의 원인에는 목회자의 리더십 문제도 있다. 따라서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올바른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 리더십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기도와 성경, 영성 훈련을 통해 소명에 충실한 목회자상의 회복이 필요하다.

 

① 영적 리더십

성경에 등장하는 리더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사역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과 충성에서 그들의 사역이 이루어진다. 한 마디로 성경이 말하는 리더십의 기본은 영적 리더십이다. 목회자는 교회운영을 위한 경영 전문가이기 전에 영적 지도자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들이 리더십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신앙의 신비를 성도들에게 전하는 것이 목회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은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질 때 비로소 영혼의 만족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성도들을 그 은혜의 길로 인도할 사명을 받은 사람이 목회자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영혼을 만지시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목회자다. 따라서 목회자가 먼저 영적으로 올바로 서 있어야 하고 영적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읽는 것, 가르치는 것, 권하는 것에 전념하라고 했다(딤전4:13).

 

② 사랑과 긍휼

세상의 조직은 이해관계에 의해 운영되지만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본받는 데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목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며, 언제나 양과 함께 한다.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소중히 여겨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다니는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성장 제일의 가치관 속에서 교회도 목회자도 한 영혼의 소중함을 잊었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 영혼의 소중함을 잊었다. 이익만 얻는다면 한 영혼을 포기하는 일도 쉽게 결정한다. 그러나 교회는 한 사람, 한 영혼에 대한 애착이 있어야 하고 한 영혼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 교회가 위기를 극복하고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는 한 영혼의 소중함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③ 도덕성

교회공동체를 대표하는 목회자는 누구보다도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현재 한국교회 목회자의 권위가 실추된 주된 요인은 바로 도덕성의 결여 때문이다. 지도자는 그 성품과 도덕성에서 본을 보일 때 존경과 신뢰를 얻게 된다. 아무리 탁월한 능력이 있어도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바울도 교회의 지도자인 디모데에게 말과 행실,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했다(딤전4:12).

 

④비전을 제시하는 목회자

한국교회에서 목회비전이라고 하면 주로 교회의 성장을 위한 정책과 방법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적 비전은 자신의 꿈이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궁극의 비전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다. 목회자는 개인의 성공이나 개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궁극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따라 교회를 운영해야 한다. 결국 교회가 결속력이 있고 하나님의 사명을 힘 있게 감당하게 만들어 주는 구심점이 바로 비전이다. 교회와 목회자가 세운 비전이 건강한 것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는 비전을 성취해 가는 과정과 결과를 보면 알에 된다.

 

VI. 나가는 말

역사에 위기는 있었다. 그러나 잘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고도화된 기술이 하나님을 잊게 한다는 위기감도 주지만, 하나님을 더욱 갈망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세상이 형식화, 물질화, 개념화 되어 갈 때 교회는 더욱더 본질을 확인하고, 회복해 나가야 한다.

세상이 변화해 갈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공허함, 고독함, 소외감을 더 느끼게 된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목양의 본질을 회복할 때, 미래 사회의 불안 속에서 힘들어 하는 영혼들을 회복시킬 수 있으며 미래는 다시금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다. 성경은 이미 이런 시대를 예측하고 불안한 미래를 대비해 주고 있다. 예례미야 29:1은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니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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