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우목사의 지중해에서 본 한국과 유럽 이야기[7]

   
일찍이 사람들은 “오월오심”(五月五心)이라고 불렀다. 어린이날에 갖는 “동심”, 어버이날의 “효심”, 스승의 날의 “존경심”, 성년의 날의 “성심(成心)”, 그리고 가정의 달에 갖는 “애심”을 두고 그렇게 말했다. 5월만큼 마음이 용솟음치고 가슴 뭉클한 계절이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시인 하이네는 5월을 “시끄러운 달”이라고 했다.


비취 가락지를 끼고 싶어하는 5월


1월이 소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의 달”이라면, 4월은 온갖 생명이 약동하는 “부활의 달”이다. 그런가 하면 7월은 “청포도 익어 가는 달”이며, 10월은 시골 아낙네들이 마치 암송아지처럼 마음이 부풀어 ‘오메 단풍 들었네’라며 “이리저리 방방 뛰고픈 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온 대지가 초록과 꽃으로 덮이는 5월은 “실록의 계절”이라 할만하다. 7, 8월에 활짝 핀 꽃과 나뭇잎이 뱃살이 뽈록 튀어나온 “중년 아주머니” 같다면, 6월에 찐한 향기를 날리는 꽃과 나뭇잎은 “갓 결혼한 새댁” 같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에 비해 5월에 갓 피어나는 꽃 봉우리와 잎새들은 천진난만하고 “수줍은 소녀”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5월을 신록의 계절이라 표현하는 것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을 것 같다. 세련된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5월이면 누구나 녹색화폭에 새겨진 그림책을 보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한국 수필의 대가 피천득은 그의 첫 수필 “금아시문선집”에서 생동감 넘치는 5월의 이미지를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 한 살의 청신한 얼굴과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 가락지이다.”라고 표현했다. 이 같은 정서는 유럽 또한 예외가 아니다. 유럽의 왕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5월이 되면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04년 5월에 유럽의 왕가 중 덴마크와 스페인 왕세자도 연이어 결혼식을 올림으로 5월이 결혼의 달임을 과시했다. 유럽의 여성들은 초록빛이 깔리는 오월이 오기를 기다리며 5월의 신부가 되어 비취 가락지를 무척이나 끼고 싶어한다.


프로포즈의 명약, 5월의 장미


대개 유럽 젊은이들은 2월14일, “발렌타인데이(valentine day)”에 초콜릿에 사랑을 가득 담아 연인에게 전한다. 한달 후인 3월14일, “화이트데이(white day)”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콤한 사탕을 전한다. 그리고 프로포즈를 완벽하게 성사시키기 위해 5월14일, “로즈데이(Rose day)”에 장미 한 다발을 준비한다.


장미(薔薇)의 한자 말은 “담에 기대어 자라는 식물”이란 뜻이다. 그러고 보면 여자와 장미는 생리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여자는 장미처럼 남자에게 기대는 본성이 있다. 장미가 “병충해와의 전쟁”이라 할 만큼 병충해에 약하듯, 여자 또한 “유혹과의 전쟁”이라 할 만큼 세상 민심과 물정에 약하다. 색의 마술사라 불리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장미와 여자”란 작품에서 장미와 여자가 아름다움을 뽐내고 싶어하는 속성을 동일하게 묘사했다. 샤갈은 여자의 요염함을 강조하기 위해 장미 위에 여인을 올려놓았지만 결국 장미로 인해 여인의 모습이 퇴색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질투심마저 닮았다는 것이다. 이런 속성 때문에 남성들은 오랜 세월동안 여성에게 프로포즈할 때 장미를 선물해 왔다. 정열의 무희 카르멘이 자신의 요염함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진홍빛 장미였고, 절세의 미인 클레오파트라가 애인인 안토니오를 붙잡기 위해 무지막지하게 뿌린 꽃도 다름 아닌 장미였다.

그뿐 아니라 나폴레옹이 죠세핀을 위해 마루에 깐 꽃잎도 이 귀족적인 장미였다. 5월14일, “로즈데이”는 2월의 발렌타인데이와 3월의 화이트데이를 놓친 연인들에게는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다. 이 때문에 “열렬한 사랑”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장미는 오래 전부터 프로포즈의 성공확률이 가장 높은 명약으로, 사랑을 쟁취하는데 희망적인 선물로 꼽히고 있다.


꽃 중의 꽃, “메이플라워”(Mayflower)


“메이플라워”하면 가장 먼저 1620년 9월16일 영국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향한 “메이플라워호”를 생각하게 된다. 이른바 “ 5월의 꽃”이라 불리는 “메이플라워호”는 총 102명을 태우고 모진 고난의 항해 끝에 같은 해 11월21일 신대륙에 도착했다. 저들은 도착하자마자 선상에서 역사적인 “메이플라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명했다. 우리는 저들의 계약에서 미국에 온 목적과 분명한 신앙고백을 보게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 하라. 하나님의 은총에 따라 대영제국, 프랑스, 아일랜드의 왕이 된 신앙의 옹호자 제임스 1세 폐하의 충성된 국민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기독교 신앙의 진흥, 우리의 왕과 조국의 명예를 위하여 버지니아의 북부 지방에서 최초의 식민지를 창설하고자 항해를 시도하였다...중략...우리는 모두 여기에 대하여 당연한 복종을 바칠 것을 계약한다.”


메이플라워호에 올랐던 사람들 가운데는 국회의원도 있었고, 상원의원도 둘이나 있었다. 장군과  사업가, 의사, 교수들도 많았다. 그들은 당시 사회에 당당한 기득권자들이었지만, 장장 5,440Km나 되는 긴 죽음의 항해를 시도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다. 처음 출발한 사람은 모두 102명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도중에 44명이나 죽었고 나머지 58명만이 신대륙에 도착했다. 다행이 육지에 도착했지만 극심한 추위와 질병, 굶주림으로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추운 겨울동안 움막에서 추위를 피하다 봄이 왔을 때 잡초로 우거진 땅을 손이 부르트도록 개간하여 농사하여 그 해 가을에 정성어린 추수감사예배를 드렸다. 그때 포세이돈 목사는 시편 126편 5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는 말씀을 읽고 딱 두 마디 기도를 올렸다. “102명중에 죽은 자들이여! 이 미국 땅에 위대한 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저희들이 죽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메이플라워호가 신대륙에 도착한 지 310년이 지난, 1931년에 그들의 후손들은 102명의 선조들의 신앙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2층 엠파이어스테이트(Empire State)빌딩을 뉴욕에 세웠다. 그때 그들은 다시 한번 시편 126편을 읽고 전 미국이 “우리 조상들의 신앙을 본받자”라고 하면서 감사예배를 드렸다.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면 5월의 꽃은 역시 장미이다. 그러나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다면 바로 신앙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긴 순례자들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탄 배를 5월의 꽃, “메이플라워”라고 하지 않았던가?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